부동산팀에 배정되고 처음 한 일은 ‘복덕방 마와리’였다. 우리나라 집값의 지표라는 ‘강남3구’ 부동산 수십 개를 돌고 또 돌았다. 부동산 취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집 한 채 사지도 못할 것 같은 차림새의 젊은 여자를 귀찮은 듯 쫓아내는 복덕방 아저씨가 한둘이 아니었다. 기 싸움에 밀리지 않기 위해 나는 ‘강남 사모님’이 돼야 했다. 부자 시댁 덕 좀 본 부티나는 강남 새댁을 연기하며 투자처를 찾듯 취재했다. 그 덕에 동료들 사이에서 ‘복부인’이란 애칭을 얻기도 했다.

지난 3개월 간 취재한 집들은 매매가 10억~13억원을 호가했다. 전세난에 전셋값도 7억~8억원에 달했다. 주말이면 모델하우스도 들렀다. 나는 강남아파트의 몇억원대 오르내림을 기사로 썼고, ‘브랜드 아파트’ 트렌드도 소개했다. 뼈 빠지게 일하고 저축해도 최소 10년 안엔 절대 내돈 주고 살 수 없는 집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오르지도 못할 나무, ‘남의 집’ 이야기만 주구장창 기사로 썼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복덕방 마와리’ 중, 학교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나 이번에 여기로 이사갈까 하는데, 부동산 기자가 한 번 봐줘”

선배가 보낸 사진 속 방은 특이했다. 굉장히 좁지만 고급스러웠다. 대리석 같은 타일이 바닥에 깔려있고 벽지와 조명도 화려한, 일명 ‘럭셔리 고시원’. 겉은 화려하지만 고시원은 고시원이었다. 방음에 신경썼다지만 여전히 시끄럽고, 창문을 크게 냈다지만 여름이면 냄새가 났다. 다른 곳보다 넓다지만 침대 아래 한 명은 겨우 누울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꼴(?)에 ‘럭셔리’한 만큼 방값은 꽤 비쌌다. 일반 고시원 가격(20만~35만원)의 2배인 55만~70만원. ‘럭셔리 고시원’, 빈곤층의 주거공간에 붙은 어울리지 않은 이름과 가격이다.

   
서울 잠실의 한 상가 부동산 매매업소의 모습.
@연합뉴스
 

직장 3년차 선배는 내게 한숨 섞인 고충을 토로했다. 원룸에 살자니 모아놓은 월세 보증금 2000만원이 없고, 지난 2년처럼 고시원에 살자니 매일 드는 자괴감을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이다. ‘럭셔리 고시원’은 그중 최선책이자 절충안이었다. 사실 내 주위에는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긴긴 취업준비에 쓴 돈이 너무 많아, 이런저런 이유로 1000만원조차 구하지 못하는 이들이 꽤 많다. 고시원은 더 이상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의 공간이 아니었다. 보증금의 부담을 피해 숨어든 2030세대의 터전으로 자리잡았다.

선배의 고민을 계기로 ‘고시원 마와리’를 시작했다. 강남부터 종로, 신촌 등 고시원 집성촌을 중심으로 돌고 또 돌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몸에 맞지 않는 ‘복부인’ 연기가 필요없었다. 가는 곳마다 익숙한 듯 나를 맞아줬으니까. 친절하게 방값이며, 옆집에 누가 사는지, 다른 고시원과 차이점 가령 도어락이 있어 안전하고 상판이 두꺼워 방음도 잘되고 가장 비싼 발코니있는 방은 흡연도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이곳의 수요 대다수는 나와 같은 20~30대 직장인이었다. 최근 전세난이 가속화하자 전세수요 일부가 월세로 옮겨갔다. 이에 월세 가격도 크게 올랐다. 2030세대는 이마저 피해 고시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서울지역에는 고시원이 123개 늘었다.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은, 조금은 나은 삶을 원하는 젊은 세대의 수요로, 늘어난 고시원 대다수가 ‘럭셔리 고시원’이었다.

   
▲ 이승주 뉴시스 산업부 부동산팀 기자
 

‘럭셔리 고시원’ 보도 이후 독자레터도 여러 통 받았다. 기사에 나온 고시원을 소개해달라는 내용이 골자였지만. 일부 타 매체에서 기사가 소개되기도 했다. 아파트 분양, 시세 기사를 수십개 넘게 써도 단 한 번도 받지 못한 피드백이었다.

부동산 기사는 넘쳐난다. 하지만 대다수가 값비싼 ‘브랜드 아파트’, 저금리의 투자처에 집중된다. 과연 2030세대 중 ‘나와는 상관없는’ 저 기사에 관심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내집 마련은커녕, 전세도, 그나마 10평 남짓 원룸도 보증금이 없어 고시원을 택하는 2030이 태반이다. 젊은 세대의 진짜 주거공간을 담는 ‘부동산 뉴스’를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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