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 추진과 관련해 정치권을 비롯한 언론·시민단체들의 반대와 우려에도 여전히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9일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에선 인터넷 명예훼손 글을 피해 당사자의 신청이 없어도 제3자의 신청이나 자체 인지만으로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통신심의규정 개정안이 입안예고 보고사항으로 올라와 논란이 됐다. (관련기사 : “명예훼손 글 제3자 삭제, 법적 근거 없다”)

이후 국회 토론회 등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법적 근거 부족과 표현의 자유 침해 등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나왔지만, 박효종 위원장은 심의규정이 상위법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충돌하므로 개정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참여연대와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시민언론연합 등 9개 언론·시민단체들은 지난 3일 박 위원장에게 심의규정 개정의 정치적 의도와 청와대 개입 의혹 등 해명을 요구하는 면담 진행과 함께 공개 질의서를 전달했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이들은 이날 박 위원장과 심의위 사무국 관계자들을 만나 “형법 및 정보통신망법의 반의사불벌죄 등은 형사소추 개념이라 행정법 영역인 통신심의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며 “많은 법률가들은 상위법과의 충돌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한 △심의규정 개정의 필요성과 취지 △현재 발생하는 권리구제의 공백이나 사회적 폐해 여부 △특정 공인에 대한 비판적인 글들을 선제적으로 단속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혹 △조사권이 없는 심의위가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할 방법 및 행정력의 과도한 낭비 초래에 대한 대응책 △심의규정 개정에 앞서 의견 수렴을 위한 공론화 절차 진행 계획 등 박 위원장에게 공식질의서를 전달했다. 

손지원 고려대 인터넷투명성보고팀 연구원(변호사) 등 이날 면담 참석자들에 따르면 박 위원장은 이들과 면담 자리에서 “상위법인 정보통신망법과 모순되는 내용이 없게 하는 것이 이번 심의규정 개정안의 가장 근본적 목적”이라며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 후 합의제 기구인 심의위의 정신을 살려 규정 개정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야당과 일부 심의위원,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여야 6대 3 구성의 심의위 전체회의에서 다수결로 처리하지 말아달라는 참석자들의 요구에는 답변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시민단체들은 “작년부터 심의위에서 심의규정 개정이 논의됐지만 위원들 사이에서도 개정의 필요성이 충분치 않고 부작용이 예상되는 점 등을 이유로 합의에 이르지 못해 일단락됐음에도 박 위원장이 재차 이 문제를 제기해 개정을 강력히 관철하려 하고 있다”면서 “이번 개정 시도가 위원장의 정치적 의도 또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투영된 것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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