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와 관련해 조정위원회가 제시한 조정안에 대해 ‘위법성’ 등을 제기하며 흠집 내기에 앞장섰던 언론들이, 삼성전자가 조정안을 절반만 수용한 것에 대해서는 마치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일 직업병 문제와 관련한 조정위 조정안을 끝내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애초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와 관련해 조정위가 제시한 것은 기부와 독립적인 공익법인 설립, 크게 두 축이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기부는 하되 공익법인은 설립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기부하겠다고 밝힌 금액은 조정안과 같은 1000억원이다. 

삼성전자는 법인 설립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법인을 설립하고 보상을 실시하려면 또다시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기금을 조성하면 신속하게 보상을 집행할 수 있다. 상설기구와 상근인력 운영 등 보상 이외의 목적에 재원의 30%를 쓰는 것보다는 고통을 겪은 분들께 가급적 많은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 4일 서울경제 13면 기사
 
   
▲ 4일 한국경제 11면 기사
 

사실상 조정안을 거부한 셈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기부’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 위해 기금 1000억 조성”(조선일보),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협력사까지 보상”(한국경제), 삼성 반도체질병 보상 ‘8년 갈등’ 실타래 푼다(머니투데이), 삼성전자 기금 1000억 마련…백혈병 보상 타결 청신호(서울경제) 등이다. 

1000억원을 강조하는 보도는 문제의 본질을 잊게 하고 마치 문제가 곧 해결될 것처럼 보이게 한다. 직업병 피해노동자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이것만이 본질처럼 여겨져서는 안 된다. 그간 삼성전자와 반올림, 가족대책위는 보상뿐 아니라 사과, 재발방지대책에 대해 동시에 논의해왔다. 시민사회 역시 보상에만 초점에 맞춰지는 것을 경계해왔다.

공익법인 설립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 있다. 공익법인은 객관적인 보상 기준을 마련할 뿐 아니라 재발방지 대책을 만들고 이를 실행하게 된다. 이 법인 이사회는 외부 인사들로 꾸려지며 이들은 삼성전자를 감시하는 옴부즈맨 3인도 정하게 된다. 옴부즈맨 3인은 재해관리 시스템 등을 점검하게 되며 삼성전자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제출받고 검토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시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법인 설립을 거부하면서, 애초 법인이 하려던 업무를 ‘자체적으로’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보상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상위원회를 꾸리고 재발방지대책 관련해서는 외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종합진단팀을 꾸리겠다는 것이다. 종합진단팀은 고용노동부가 위촉한 반도체 보건관리 모니터링위원회 위원 4~5명, 국내외 전문가 2~3명, 노동자 대표 1~2명으로 구성된다. 

 

   
▲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 사진=반올림 공식 페이스북
 

반올림과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등은 “삼성의 이러한 입장과 태도는 이전 입장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조정위가 출범하기 전까지 삼성은 ‘삼성이 정한 기준에 따른 보상’과 ‘삼성이 자체적으로 알아서 하는 재발방지대책’을 고집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보상과 재발방지대책의 수행을 삼성에게 맡겨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기부하고, 나머지는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직업병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호들갑 떠는 언론 보도와는 달리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범위는 오히려 줄었다. 조정안은 2011년 이전 최소 1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들을 모두 대상으로 했으나 삼성전자는 이번 보상 대상자를 1996년 이후 퇴직자로 한정했다. 조정안이 보상 대상 질병으로 꼽았던 12개 항목 중에 유산과 불임 역시 빠졌으며 잠복기 역시 조정안 14년에서 10년으로 축소됐다. 

이에 대해 반올림은 “삼성전자는 보상대상의 범위에 관해서도 조정안에서 제안한 기준을 상당부분 거부했으며 결과적으로 많은 수의 피해자가 보상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반올림에 제보된 직업병 피해노동자의 수는 200명이 넘지만 직접 교섭에 참석하고 있는 피해노동자는 가족대책위 소속 6명, 반올림 소속 2명 등 8명뿐이다. 

언론의 이같은 삼성전자 편향적인 보도는 조정안이 발표됐을 때도 비슷했다. 당시 언론들은 조정안을 두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근간을 흔들 가능성이 있다” “잠복기 최장 14년까지 보장은 너무 길다” “사업장 내부 시스템 점검 권한 부여는 경영권 침해” 라는 등의 보도를 쏟아냈다. 하지만 이런 보도는 권고안의 주요 내용이 오히려 삼성전자 측에서 먼저 제안한 것이거나, 이미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조치도 있어서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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