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주장이 제기되자 보수언론이 ‘국민정서’를 이유로 의원 정수 증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반대 목소리가 ‘정치 혐오’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당권재민혁신위원회(혁신위)는 26일 5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혁신안 중 “의원 정수 증대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촉구한다”는 내용이 가장 큰 논란이 됐다. 지역구 의석을 줄이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2 대 1 의석 비율을 적용하면 지역구는 246명, 비례대표는 123명이므로 의석수는 지금보다 69석이 늘어난 369석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가 이어 “국회의원 정수를 390명으로 늘리면서 의원 세비를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의원 정수 확대가 공론화됐다. 

대다수 언론은 의원 정수 증대를 부정적으로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7월 27일 사설 <혁신하랬더니 국회의원 정수 늘리자는 야당>에서 “지금 같은 고비용 저효율 정치상황에서 의원 정수를 늘려봐야 비용은 더 들고 효율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만 되풀이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밝혔다. 보수언론들은 의원 수 확대를 ‘정치 철밥통’ ‘밥그릇 늘리기’로 해석했다.

언론이 의원 정수 증대에 부정적인 근거 중 하나는 ‘국민 정서’다. “국회의원 정수 줄이라는 게 국민 뜻이다”(27일자 문화일보 사설) “유권자 사이에는 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으니 대폭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27일자 동아일보 사설

물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엉뚱한 일에 관심이 많는 정치인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많은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싸움만 하는 놈들’이라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민정서’에 따라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지난 2010년 12월 새해 예산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대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경미 정치발전소 기획실장은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의원 정수 확대를 주장하는 이유는 의회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이유는 의회 기능이 강화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보수언론은 의회 기능이 강화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조선일보는 27일 사설에서 “지금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까지 듣는다. 국가 통합과 발전의 견인차가 아니라 국민을 분열시키는 원인이자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란 비판까지 나온다”며 “국회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맹탕으로 만든 데 이어 국가 경제의 사활이 걸린 노동 개혁마저 흐지부지하려는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이런 국회가 아무런 변화나 반성 없이 의원 숫자만 늘리겠다고 나선다면 국민이 용납하겠나”라고 밝혔다.

   
▲ 7월 27일자 조선일보 31면
 

문화일보도 비슷한 논리를 펼쳤다. 문화일보는 27일자 사설에서 “(국회의원들이) 이 같은 특혜를 받으면서도 야당은 국회선진화법에 기대어 무소불위의 ‘제왕적 야당’ 권한을 향유하고 있다”며 “상임위를 5개월 간 공전시키는가 하면 정부가 요청한 경제활성화 법안도 3년째 뭉개고 있으면서 국정을 건건히 발목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 보수언론은 국회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발목을 잡고 법을 통과시키지 않는 상황에서 의원 정수가 늘어나봤자 의미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국회의원들이 일은 안 하고 매번 싸움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국민정서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다. 국회의원들이 ‘고비용 저효율’이란 말은 세비를 많이 받는 의원들이 그만큼 일은 안 한다(법안 통과 안 시킨다)는 뜻이다. 

이러한 주장은 의회의 기능을 행정부를 도와주는 것 정도로 설정하는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삼권분립’ 원칙에 따르면 의회의 기능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 활성화 법안, 공무원개혁, 노동시장구조개혁에 문제가 있는지 검증하고 통제하는 것이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김경미 실장은 “의원 300명에 보좌진까지 다 합쳐도 3000명 정도다. 이들이 엄청난 숫자에 달하는 행정부 공무원들을 감시하고 견제해야하는 상황”이라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선출된 권력이 견제한다는 원리에서 본다면 현재의 의회 기능은 매우 약하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이어 “평범한 사람들의 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의회의 힘이 강화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 지금도 충분히 사법‧행정‧입법 권력에 가까이갈 수 있는 사람들이(예컨대 대기업 재벌 등 경제권력) 의회기능 약화를 선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수언론은 ‘비용’ 문제까지 걸고 넘어졌다. 동아일보는 31일 기사 <의원 1명 늘리면 연 7억 혈세>에서 “국회의원 1명을 늘리면 보좌진 급여를 포함해 연간 7억 원이 넘는 국민 혈세가 더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보도 이후 다수 매체에서 ‘의원 1명 늘어날수록 7억이 필요하다’는 점을 받아썼다.

   
▲ 7월 31일자 동아일보 1면
 

국회의원이 늘어나면 세비와 보좌진 급여를 포함해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쓸데없이 혈세가 낭비 된다’는 듯이 포장하는 것은 보수언론의 흔한 수법이다. 세월호 인양이 논란이 됐을 때도 보수언론은 ‘비용’을 따졌다.

이런 논리라면 ‘일도 제대로 안 하는’ 의원들 세비도 왕창 깎고 국회의원을 아예 무보수 명예직으로 만들어버리자는 주장도 가능하다. 국회의원에게 세비도 제대로 안 주고 보좌진 급여도 제대로 지원 해주지 않으면 누가 이득을 볼까. 국회에 무보수 명예직을 부담할 수 있는, 돈 많은 사람만 들어오게 될 지도 모른다. 

김경미 실장은 “국회의원을 하면 겸직금지로 다른 일도 못하게 되는데, 그 정도 보장이 없으면 누가 직업으로서 정치인이 되겠다고 나서겠나. 특히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할 수 없다”며 “어떤 의원과 보좌진이 수십조가 드는 부실사업을 감시해서 막아냈다고 치자. 7억으로 수십조를 막아냈다면 효율적인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몇몇 언론은 나아가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는 헌법 제41조 2항을 ‘300명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며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200인 이상’ 규정이 어떤 논리에 의해 ‘300명이 넘으면 안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상한선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200인 이상’은 300인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는 게 헌법학자 다수의 설명”(동아일보
“헌법이 굳이 의원 수를 '200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300명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연합뉴스
“우리 헌법이 의원 정수를 ‘200인 이상’으로 정한 것도 300명은 넘지 말아야 한다는 깊은 뜻이 깔려 있음을 읽어야 한다”(중앙일보)

물론 언론은 잘못을 저지른 국회의원을 비판할 수도 있고 국회의원의 특권을 없애자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국회의원을 늘려서는 안 되거나 줄여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는 없다.

국민정서상 의원 수 확대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민정서 역시 언론이 만든 측면이 강하며, 나아가 의원 수 확대의 밑바탕에는 의회는 행정부를 돕는 데 그쳐야 한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언론이 국민정서에 기대 정치혐오를 부추기면서, 사실상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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