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범이때 울고불고 한 번만 살려달라고 했던 사람이 지금은 안면 싹 바꾸고 더 악랄해졌어요. 사장이 그만두지 않으면 끝없는 반복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은 굽힐 사람이 아니니까 제가 그런거지요.”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수리기사 정우형씨의 말이다. 그는 지난 5월 28일 오전 6시께 천안센터 계단 입구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그가 발견된 자리에 구토의 흔적이 있었다. 

“제초제를 마셨어요. 너무 화가나니까. 구토가 계속 나왔어요. 정신이 몽롱했어요. 죽으려고 했는데.” 그는 유서에 “이런 일만 없으면 나는 살고싶다”고 썼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7일 오전 천안센터 조회시간, 관리자들이 변경된 취업규칙을 내밀었다. 기존 취업규칙 1개가 삭제됐고 15개 항목이 추가된 것이었다.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사업장 노동자가 준수해야 할 규율과 임금, 근로시간 등에 대해 정한 규칙을 말한다. 

문제는 추가된 항목들이다. 정씨는 “사실상 노조원들 나가라는 거지요”라며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추가된 항목에 따르면 ‘고객에게 3회 이상 불친절로 인해 고객의 클레임 제기로 회사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경우’ ‘근거없는 허위사실을 유포시켜 회사 및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회사의 영업비밀을 누설시키고 회사내부문건을 외부로 폭로한 경우’ 등 모두 해고가 가능하다. 

 

   
▲ 지난 2013년 12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기사 고 최종범씨의 노제에서 동료들이 만장을 들고 있다. 사진= 이하늬 기자.
 

지금까지 노조는 사측의 폭언이나 ‘노조 와해 문건’ 등을 폭로해왔는데 변경된 취업규칙대로라면 폭로한 노동자는 해고된다. 천안분회도 최근 관리자들 사이에서 오간 메시지 내용을 폭로한 바 있다. 이아무개 팀장이 심아무개 인사노무팀장에게 “심 팀장님 생일 선물로 노조 탈퇴서 하나 드려야 하는데…최대한 빨리 생일 선물 드릴게요”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심 팀장은 “ㅋㅋㅋ감사”라고 답장했다. 

천안센터의 노조 무력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3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종범(33)씨도 천안센터 수리기사였다. 그가 죽고 나서야 사장이 최씨에게 한 막말이 공개됐다. “임마 새끼야. 네가 (고객을) 지져불든지 칼로 찔러서 꼭꼭 조사서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 벌든지 그렇게 하던지 해야지, 왜 말이 나오게 해가꼬 얘들이(관리자) 가서 빌게 만드냐 이거야. 종범아. 그렇잖아. 죽이려고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리든지 해야지.”

4분가량 이어지는 통화에서 사장은 끊임없이 욕을 했다. 고객 불만이 접수돼 관리자들이 사과를 해야 했다는 이유다. 고객은 최씨가 수리도중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며 불만을 접수했다. 이어 사장은 최씨에게 “(니가 고객과) 맞다이 까든지, 무릎 끓고 빌든지 둘 중에 하나 선택해”라고 못 박았다. 최씨는 저녁 식사 중에 사장의 전화를 받았다. 아내는 그가 전화를 끊은 다음 혼자말로 “너무 비참하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종범이가 죽은 다음 사장은 노조탄압 안 하겠다고 했고 노동자들 처우개선도 해주겠다고 했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수시로 경고장을 남발하고 생활 형편 어려운 조합원들 회유했어요.” 정씨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 이런 과정을 통해 1년만에 42명이던 조합원 수는 17명으로 줄었다. 그는 “사장이 그만두거나 조합이 없어지거나 해야 이 죽음의 행렬이 끝난다”라며 “사장이 그만둘 때까지 1인 시위든 뭐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가 제초제를 마신지 2달이 넘었다. 회사는 취업규칙 변경 시도를 멈췄지만 정씨는 아직도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천안센터 사장은 2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몸이 안 좋은 사람을 강제로 일을 시키게 되면 강제 근로로 고소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당사자에게 ‘일 할 수 있는 건강상태이며 문제가 생겨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요구한 것인데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일을 하고 싶으면 합의서를 쓰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센터 사장은 “정씨가 일을 하지 않고 있지만 회사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시간은 계산해서 기본급은 지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씨의 기본급은 13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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