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으로 실릴 예정이었던 김선우 작가(시인·소설가)의 고정 칼럼이 강원일보의 반대로 실리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선우 작가는 강원일보 측에 칼럼이 그대로 실리지 않으면 필진에서 하차하겠다고 밝혔고, 결국 해당 칼럼과 함께 그 역시 고정필진에서 빠지게 됐다.

전국 9개 지역신문사가 회원인 지방신문협회는 이달부터 자체 필진이 있는 부산일보와 매일신문을 제외한 7개사(강원일보·경남신문·경인일보·광주일보·대전일보·전북일보·제주일보)가 공동 필진을 구성해 매주 목요일 또는 금요일에 고정칼럼을 내보내기로 했다.

김선우 작가를 비롯해 김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와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등 4명의 필진이 매주 돌아가면서 칼럼을 기고했고, 지난주는 강원일보에서 추천한 김 작가의 첫 칼럼이 실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김 작가는 원고를 보낸 후 강원일보 측으로부터 원고를 수정하거나 다른 주제로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건설을 반대하는 주장을 담은 그의 칼럼이 전국적 사안에 대한 주제가 아니고 강원일보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이유에서다.

   
▲ 설악한 소공원과 권금성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박근혜 대통령의 형부 가족이 운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작가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의 향방이 전국 여러 명산의 케이블카 사업에 직결되는 터라 다른 많은 지역에서 이 사안을 주목하고 있는데 이게 어떻게 강원도만의 문제냐고 담당 데스크에게 물었다”며 “이에 데스크가 답변을 못 하자 나는 다른 글은 써 줄 수 없고 이 원고를 그대로 싣지 않으면 하차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작가는 “보통 외부 필자 칼럼의 경우 ‘본사의 의견과 무관하다’고 주석 달아 싣는데 강원일보는 그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가 얼마나 예민한 사안인지, 지역신문들의 여당 동조 여론 만들기와 상명하복 상황이 얼마나 극심한지 단적으로 알게 된 계기였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의 칼럼이 실리지 못하게 된 이유에 대해 강원일보 측 관계자는 “우리 신문에만 싣는다면 도민에게 욕먹고 실을 수는 있지만, 강원일보와 강원도가 오랫동안 추진해온 현안을 가장 중요 현시점에서 전국 주요 신문에 이슈화한다는 것 자체를 감당하기 어려웠다”며 “설악산 케이블카는 강원도의 최대 현안이고 설악산 일대 도민들의 생존이 완전히 망가진 상황에서, 경제적 돌파구를 찾고자 절박하게 요구하는 지역주민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김 작가는 중앙언론에 칼럼도 쓰고 있어 내심 전국적 사안과 현 정부에 대한 비판까지도 기대하며 내가 강력히 추천한 분”이라며 “지금도 죄송스럽고 환경론자로서 그가 가진 신념에 대한 배신감이 컸을 테지만, 우리 신문 논조뿐 아니라 도내 모든 언론의 대응이 똑같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건설을 반대하는 김선우 시인의 칼럼이 빠진 지난 24일자 강원일보 사설.
 

하지만 강원일보가 지나치게 한쪽 여론만 대변하는 결정으로 지역의 여론다양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병남 강원대 언론학 박사는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과 관련해선 여론조사나 경제성 평가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불분명한 기대치만 가지고 추진 중인데, 이런 상황에서 특정 여론을 의식해 필진의 칼럼 방향에까지 관여하는 것은 언론사로서 공정성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이어 “강원일보가 워낙 보수성이 강하고 지역 내에선 사실상 독점적 위치를 누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더구나 일반 기고자 글도 아닌 고정 필진에게 압력을 넣은 것은 월권행위이고, 강원도민에 대한 여론몰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지방신문협회 소속의 한 지역신문 관계자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강원일보의 논조가 어떤 방향인지 모르나 그런 부분을 처음부터 고려해 확실한 필진을 추천했어야 하는데 이는 독자들에게도 결례”라며 “각 사가 고정필진에 대한 사고(社告)까지 내보내 소개한 상탠데 김선우 시인의 글이 빠진 것은 여러 점에서 아쉬운 결정이다”고 말했다.

‘환경 문맹자’ 돈 놀음에 망가지는 천혜 ‘강산’

강원일보에 실리지 못한 칼럼… “왜 우리만 거꾸로 가는 것인가”

 

강원일보에 실리지 못했던 김선우 시인의 칼럼을 필자의 허락을 얻어 미디어오늘에 전재합니다. 김 작가는 최근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하는 내용의 칼럼을 강원일보가 실어줄 수 없다는 데 항의해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필진에서 하차했습니다. - 편집자 주

 

현재 강원도 양양군이 제출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계획에 대한 환경부의 심의절차가 진행 중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이미 2012년, 2013년 두 차례나 부결된 바 있다. 환경부 가이드라인에 부합하지 않고 경제성과 환경성·공익성·기술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올해는 돌변해 사업이 급진전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말 “평창올림픽에 맞춰 케이블카를 추진하라”고 직접 지시한 뒤, 환경부 등 정부부처가 ‘명령 받들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설악산에 지금 운행 중인 권금성 케이블카는 환경의식이 무지했던 독재정권 때 설치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치자. 세계적으로 케이블카는 환경유해성 때문에 더 설치되지 않는 추세인데 왜 유독 우리만 거꾸로 가는 것일까. 선진국에선 더 이상 댐을 짓지 않는 것은 물론 오래 전 지어진 댐들을 철거해 자연하천으로 돌려놓는 추세건만, 우리만 유독 ‘4대강사업’으로 전국의 강들을 댐으로 막아버린 폐해가 지금 낱낱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강들을 죄다 ‘녹조라떼’로 만들어버린 이전 정부의 ‘死대강사업’과 마찬가지 맥락의 ‘삽질’이 바로 전국의 이름난 산들에 설치하려는 케이블카 사업이다.  

케이블카 사업 배후에는 대기업의 요구를 수용한 현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이 있다. 전국 산지 70%에 각종 호텔, 리조트, 골프장 건설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정부부처 발표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여기에 지자체의 전시행정이 결부되면서 설악산, 지리산 등 전국의 명산들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한번 망가뜨린 자연생태의 회복을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그나마 온전한 회복이 가능하지도 않다. 권력을 쥔 ‘환경 문맹자’들이 자본에 휘둘려 전국의 강과 산을 파헤쳐 병들게 한 후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당장 이익이 될 것처럼 보이는 눈앞의 돈에 홀려 한반도의 가장 빼어난 보물들인 강산을 죄다 파괴하고 도대체 후대에게 무엇을 물려주려는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관광산업’은 황폐한 자연 위에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본래의 생명력을 지닌 산, 강, 바다야말로 21세기 관광산업의 핵심이다. 지역경제 운운하며 지자체가 앞장서 케이블카를 추진하지만, 천혜의 명산을 훼손하며 설치한 케이블카가 관광객 유치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라. 관광을 통한 지역경제의 활성화 방안은 지방도시 전체의 문화서비스산업 기반조성과 함께 제고되어야 하는 것이다.

훼손되지 않은 건강한 자연을 찾아 방문한 사람들이 그 도시에 체류하면서 다양한 문화 경험을 할 수 있고 쾌적한 서비스를 받으며 도시의 특색에 매료될 때 다시 찾고 싶은 관광지가 되는 것이지, 손쉽게 케이블카 타고 정상을 ‘관광’한 후 도시를 빠져나가면 케이블카 사업주의 금고를 불릴 뿐 지역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게다가 현재 전국에서 운행되는 수많은 케이블카 중 흑자를 내는 곳은 두세 곳에 불과할 뿐 대부분은 적자 누적의 애물단지들이다. 사업자들은 장사해보다가 수지 안 맞으면 떠나면 그만이지만, 결국 망가진 자연과 흉측한 기계 폐기물은 고스란히 지자체의 부담으로 남는 것이다. 생태계의 마지막 보루가 국립공원이다. 게다가 설악산 같은 다시없을 비경을 품은 명산이 그처럼 일회용으로 소비되고 버려져도 정녕 괜찮은가.

본래의 설악과 장장 3.5킬로미터 케이블카로 혈맥을 다 끊어낸 설악은 결코 같은 설악이 아니다.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의 서식지인 설악산에서 산양을 비롯한 뭇 생명들이 쫓겨날 때 인간의 삶도 보장받지 못한다. 우리는 후손에게 본래의 자연을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백년도 못사는 게 인간이다. 대체 무슨 자격으로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이 땅의 자연을 이토록 함부로 훼손한단 말인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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