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해킹 프로그램 감청의혹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이지만 진상규명은 요원해 보인다. 국정원과 정부여당은 ‘꼬리자르기’를 할 우려가 있다. 야당이 진상을 규명할지는 미지수다. 지상파방송은 관련 내용을 소극적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조중동과 종편은 왜곡보도를 하고 있다.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국가를 상대로 고발을 하게 된 이유다.

진보네트워크센터와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7일 ‘국가정보원의 국민해킹에 대한 국민고발단’ 모집을 시작했다. 고발단은 전·현직 국정원장과 국정원 실무자, 나나테크 대표 등을 통신비밀보호법 및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할 계획이다.

민간인 사찰 논란은 민주화 이후에도 몇 차례 불거졌지만 국민들이 직접 고발운동을 벌이는 경우는 처음이다. 이종회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과거에는 정보기관이 목표로 한 특정인을 사찰했지만, 지금 국정원은 무차별적으로 국민들을 대상으로 사찰을 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이종회 대표는 “누구나 손쉽게 사찰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국민 스스로 문제를 밝혀내는 주체가 돼야 한다. 기자회견문이 아닌 호소문을 내고 국민들에게 참여를 제안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운용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국민감시’를 넘어선 ‘국민통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한택근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은 “모바일에 해킹프로그램을 심으면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 일반 도청과 비교할 정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종회 대표는 “RCS(Remote Control System)는 이름처럼 원격통제를 할 수 있다. 정보를 무단으로 전송하고 복제하는 게 가능하다는 건 사실상의 국민통제가 가능하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국정원은 스스로를 국내 정치에 개입해 공작을 일삼았던 국가안전기획부나 중앙정보부와는 다르다고 항변하지만 독재정권 시절보다 더욱 위험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회 대표는 “마음만 먹으면 국민을 통제할 수 있는 국정원은 독재시절보다 진화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정치’와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도 시민사회단체가 국민고발단을 모집하게 된 배경이다. 박주민 변호사는 “국정원은 지속적으로 해명을 했지만 근거를 대지 않으면서 ‘믿어달라’고만 했다. 검찰은 언제든 자발적으로 수사에 나설 수 있었는데도 수동적으로 대응했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를 꾸리고 대응을 하고 있지만 초기에 본격적으로 수사를 촉구하지는 않았다. 박주민 변호사는 “개인적인 견해로는 야당도 이번 사안에 정치적으로 접근했다고 본다”면서 “사안이 검찰로 넘어가면 야당이 할 일이 없어지니 초기부터 수사압박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언론은 사안을 감추거나 외면하는 데 급급했다. 특히 방송은 JTBC를 제외하고는 사안을 ‘늦게’ 보도했고 ‘적게’ 다뤘다. 지상파3사가 해당 사안을 보도하기 시작한 14일, 이미 JTBC는 11건이나 관련 보도를 쏟아낸 뒤였다. 박주민 변호사는 “초기에 깜짝 놀랄 정도로 지상파가 침묵했다”면서 “400GB짜리 파일이 공개된 상태에서 오랜 기간 보도를 하지 않은 건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국민고발’을 국정원 개혁 추진운동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국정원 개혁방향에 관해 박주민 변호사는 “진짜 민주주의가 이뤄지려면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통제가 원활해야 한다”면서 “폭주하고 있는 국정원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주민 변호사는 “국정원이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도록 하고 권한을 줄여야 한다. 선진국처럼 국내파트와 해외파트로 업무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1차 고발단 모집은 29일 자정에 마감할 계획이다. 고발단은 30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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