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내국인 사찰이 없었다"는 해명을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가 민간보안전문가로 위촉해 자문을 해주고 있는 권석철 큐브피아 대표는 "당을 떠나 의혹적인 것이 워낙 많고 정말 진실이 어떤 건지 궁금해 참여했는데 학생이 선생님 앞에서 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국정원의 말바꾸기를 지적했다. 지난 14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한 이병호 국정원장은 '내국인 사찰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원장은 27일 국회 정보위에서 임씨가 삭제한 자료는 대테러 관련 자료 10건, 실험실패건 10건, 국내 실험용 31건이라고 밝혔다. 실험이라는 단서가 달긴 했지만 이미 국내의 대상자에게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했음음 암시한다. 

권 대표는 "내국인은 없었다고 해놓고 왜 국내 실험용으로 프로그램을 운용하나 웃긴 일이다. 계속 말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SK텔레콤 3개의 IP가 국정원이 악성 프로그램을 심어놓은 휴대전화 IP주소"라는 새정치민주연합 의혹 제기에 대해 이탈리아 해킹팀의 대상이 되는 스마트폰과 접속한 시간이 일치한다며 국정원 소유의 번호라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권 대표는 검증할 수 없어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국정원 소유라고 한다면 휴대전화가 있을 것이고 그 시점에 폰이 존재했다는 것을 통신사 고유 넘버링을 통해 확인하면 금방 해명될 일인데 의혹을 하나도 해소하지 못하면서 아니라고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권 대표는 "로그 파일이 지워지고 백업이 남아있으면 복원에 일주일이 걸린다. 백업 파일 없으면 근태이고 관리를 못하는 것인데 그것 역시 말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믿으라고 하면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자신이 도둑놈이 아니라고 믿어달라는데 재판에서 그걸 믿어주느냐. 증거 채택주의 아니냐. 뭐가 있어야지 믿어줄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권 대표는 국정원의 해명을 가장 손쉽게 검증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했다. 로그 파일을 공개하면 좋지만 서버에 자료가 들어가 있는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만약 해킹 대상이 외국인이라고 한다면 안보 각서를 쓰고 비공개 결정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권 대표는 이 같은 최소한의 조치가 없을 경우 "말 못할 내용을 숨기는 것처럼 느낄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국정원이 더 이상 추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이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작업은 이탈리아 해킹팀의 이메일 내용을 분석한 ‘퍼즐 맞추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권 대표는 "현재 이메일 400기가 분량 중 60%를 파악했다. 나름대로 방향성을 잡고 찾아낸 자료가 있는데 연결고리가 부족하다"며 "하지만 국정원이 발표한 내용 중 거짓말 하나만 찾아내도 국정원의 신뢰는 떨어지고 다시 원점부터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애초 자살한 직원 임씨가 '기술자'라고 밝혔는데 정보업무의 원리상 작업을 지시한 인물이 있고 정보를 분석한 뒤 가공한 별도의 정보산물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국가안보국 국장을 역임했던 윌리엄 이 오돔이 쓴 '국가정보기관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을 보면 정보 업무의 원리가 상세히 설명돼 있다.

정보업무의 기능은 수집관리, 수집, 분석 및 생산, 배포로 구분돼 있다.

뉴스 제작을 예롤 들면 뉴스 편집자가 이슈를 선정해 취재할지 결정하는 것처럼 수집관리자는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편집자가 기자에게 취재를 지시하는 것처럼 수집관리자는 수집관에서 정보를 수집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수집관은 수집관리자에게 수집한 첩보를 보고하고 수집관리자는 이 정보를 분석관에 넘긴다. 분석관은 이 정보를 분석해 정보산물을 만들게 된다. 생산된 정보는 처음 정보를 요청한 사용자와 정보를 필요로 하는 또다른 사용자에게 공급되고 사용자는 수집관리자에게 만족 여부를 표명한 뒤 새로운 요구사항을 전달해 피드백이 이뤄진다. 

국정원이 밝힌대로라면 자살한 임씨는 정보업무 기능 중 수집관에 해당하는 업무를 맡았는데수집관리자와 분석관, 그리고 생산된 정보산물을 보고 받은 사용자가 따로 있다는 말이 된다.  

국정원은 수집관인 임씨가 자료를 삭제한 것에 대해 초점을 맞춰 내국인 사찰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수집관인 임씨가 생산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정보산물이 별도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정보산물이 보고서 형태로 남아있을 수 있다. 수집관리자가 수집관인 임씨에게 어떤 용도로 정보를 쓸지 지시하는 내용도 흔적이 남아있을 수 있다. 

윌리엄 이 오돔은 "수집관리에 대한 우선적인 책임은 정보분석 및 생산을 담당하는 참모부서에 있다"며 "정보 소요가 결정되는 곳이 분석 및 생산 부서이기 때문에 수집관리는 정보사용자의 지휘책임하에 놓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집관리자가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해석하여 수집관에게 필요한 사항을 전달해야 한다"며 "또한 관리자는 수집관이 최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할 책임이 있다. 기술적 수집관리는 고도로 복잡하고 특수한 활동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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