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사찰을 벌였다. 사찰 사실이 밝혀지자 해당 하드디스크 자료를 삭제하며 증거를 은폐했다. 이명박 정부 때 벌어진 민간인 사찰사건이다. 당시 국무총리실 윤리지원관실에서 재직하던 장진수 전 주무관(41)이 증거은폐 사실을 폭로하며 대규모 민간인 사찰이 수면 위로 올랐다. 검찰수사 결과 1건에 불과했던 민간인 사찰은 그의 폭로 이후 시작된 2차수사에서 총 500여건으로 밝혀졌다.

최근 불거진 국정원 해킹프로그램 감청 의혹은 장 전 주무관에게 낯설지 않다. 공무원이 국민을 사찰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점, 관련 자료의 삭제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들어 언론에 보도된 ‘이레이징’ ‘디가우징’같은 생소한 용어들도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로 일찌감치 알려진 바 있다. 장 전 주무관을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공무원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국정원 임모 과장이 DELETE키로 자료를 삭제했다는 국정원의 발표를 믿을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완전삭제’ 가르친 국정원이 DELETE키로 삭제했다고?”

“특수프로그램을 통한 완전삭제(이레이징)의 개념을 국정원이 가르쳐줬다. 그런데 국정원이, 그것도 전문가가 DELETE키로 파일을 삭제했다는 건 터무니없는 소리다.” 장 전 주무관의 말이다. 그는 국정원으로부터 직접 ‘완전삭제’ 교육을 받은 적 있다. “국정원 직원이 2007년과 2008년, 국무총리실 직원들을 상대로 교육을 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서 실시된 교육은 한승수 총리도 배석한 상태에서 대규모로 실시했다.”

   
▲ 장진수 전 주무관. 사진=금준경 기자.
 

강사로 나선 국정원 과장은 “파일을 단순히 DELETE키로 삭제하면 안 되고 국정원에서 제공하는 특수프로그램으로 삭제를 해야 한다”고 교육했다고 한다. 장 전 주무관은 “웃기려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국정원 과장에 따르면, 한번은 선거관리위원회에 갔는데 당시 폐기된 하드디스크를 수거해 보니 선거 관련 개인정보들이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면서 “당시 교육받은 사람들은 중요한 파일은 완전삭제를 하지 않으면 쉽게 복구된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국정원 지침 1. 이레이징 2. 디가우징 3. 망치로 깨라

파일 완전삭제를 위한 ‘국정원 지침’도 있었다. 장 전 주무관은 그 지침의 이름을 ‘정보불용처리지침’으로 기억한다. “‘첫째, 이레이징. 둘째, 디가우징. 셋째, 망치로 깨라’였다. 2006년 참여정부 때 만들어진 지침이다. 이레이징 프로그램은 국정원이 제공한다. 총리실은 이명박 정부 들어 2008~2009년부터 디가우징 기계들을 보유하기 시작했다. 재판 과정에서 듣기로는 다른 부처들도 디가우징 장비를 갖고 있다고 했다.” 디가우징은 자기장을 이용해 하드디스크를 훼손하는 것을 뜻한다.

디가우징은 장비만 있으면 매우 간단히 할 수 있다. 장 전 주무관은 민간인 사찰 증거은폐 당시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하라는 지시를 받고 경기도 수원의 한 보안업체에 찾아가 디가우징을 했다. “시간은 10초 정도 걸렸다. 가격은 하드디스크당 2만원이 나왔다. 무척 간단했다. 파일이 제대로 삭제가 됐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디가우징 장비는 멀리 있지도 않았다. 장 전 주무관이 디가우징을 하고 나서 총리실 정보담당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한다. “총리실에도 디가우징 장비가 있는데 왜 거기까지 가서 했냐는 내용이었다. 장비가 총리실에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부부처마다 디가우징 장비가 있었다. 국정원에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스스로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힌 임모 과장이 이렇게 간단한 디가우징을 하지 않은 점을 납득하기 힘들다.”

장 전 주무관이 당시 방문했던 보안업체에는 ‘국정원허가업체’라는 문구가 쓰여진 액자가 있었다. 그는 “국정원이 허가를 해준다는 점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보안업체가 국정원의 눈치를 보느라 기자들 취재에 잘 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장 전 주무관은 “디가우징 같은 업무를 하려면 국정원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이들 업체가 국정원의 눈치를 본다는 말은 신빙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상관이 파일삭제 지시했을지도”

국정원 임모 과장이 파일을 삭제한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스스로 유서에서 ‘항변’했으나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장 전 주무관은 “상관이 파일을 삭제하라고 시켰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면서 “이명박 정부 때 IT분야에 무지했던 사람들도 부하직원인 내게 삭제를 시킨 전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증거인멸죄’는 파일을 삭제한 당사자가 지게 된다. 장 전 주무관의 ‘윗선’은 장 전 주무관에게 직접 민간인사찰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의 이레이징과 디가우징을 지시했다. 장 전 주무관은 그게 민간인 사찰 자료인지 몰랐다. 그럼에도 그는 ‘증거인멸죄’로 처벌받았다. 그에게 지시한 이들은 증거인멸죄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인터뷰 직전 임모 과장이 삭제한 자료는 51건이며, 그 중 대테러 관련 자료가 10건, 국내 실험용 31건, 실험 실패 자료가 10건이라는 국정원 발표가 보도됐다. 장 전 주무관은 “이명박 정부 당시 민간인 사찰 때는 검찰이 수사를 한 결과 사찰이 1건으로 밝혀졌는데, 재수사를 해보니 사찰은 총 500건에 달했다. 제3자가 조사해도 이정도인데, 국정원이 셀프로 조사한 결과를 믿기 힘들다”고 말했다.

장 전 주무관은 “국정원이 DELETE키로 삭제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점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말 DELETE 삭제를 했다면 복구는 굉장히 쉽다. 일반인도 할 수 있다. 그랬다면 국정원 입장에서는 바로 복구를 해 자료를 공개할 수 있었다. 굳이 DELETE키로 삭제했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파일을 복구하면 어떻게 삭제했는지 알 수 있었겠지만 바로 복구할 수 있는 파일을 굳이 포렌식 하는 건 번거롭다. 임모 과장이 DELETE키로 파일을 삭제하는 모습을 누가 목격했거나 임모 과장이 직접 제3자에게 이를 알렸을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 장 전 주무관은 “무엇보다 불과 51건, 그것도 문제 없는 파일을 삭제해놓고선 그걸 묻으려고 목숨까지 버렸다는 건 앞뒤가 안 맞다”고 말했다.

   
▲ 장진수 전 주무관. 사진=금준경 기자.
 

“조직에 대한 충성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 아니다”

똑같이 하드디스크 자료를 삭제했지만 임모 과장은 ‘자살’을 택했다. 반면 장 전 주무관은 공익신고를 했다. 장 전 주무관은 “임모 과장의 죽음은 비극적인 죽음이다. 명복을 빈다. 하지만 국정원 조직에 대한 충성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 아니다. 공무원 조직은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공무원의 역할을 오인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살을 할 정도의 상황이라면, 그런 각오를 했다면 차라리 공익신고를 하고 국민의 판단에 맡겼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쉽다”고 덧붙였다.

공무원 공익신고자를 유난히 찾기 힘들다. 장 전 주무관은 “공무원은 국민의 안전,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들을 다룬다. 그 어떤 분야보다 공익신고자가 많아야 할 곳이 바로 공직사회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장 전 주무관은 이렇게 덧붙였다. “권력을 거스르면 살기 어렵다라는 인식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힘겹게 공익신고를 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사회는 공익신고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로부터 공익신고를 한 이들을 보호하는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기업은 공익신고자 보호조치를 소홀히 할 경우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정부기관과 지자체는 ‘예외’다. 장 전 주무관도 이 점을 지적했다. “공직사회가 사각지대에 놓였다. 고발해봐야 권력을 잃고, 법적 보호 못 받는다. 공무원사회에서 권력을 고발해서 잘 된 사례도 없다. 그러니 공익신고가 줄어들고 있다. 사회에 부정적인 일이다. 물론 재판으로 다툴 수 있겠지만, 막연하다. 나처럼 패배할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런데 혼자서 거대한 권력을 상대하기 벅차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다

 KT의 공익신고자였던 이해관 통신공공성시민포럼 대표는 슬로우뉴스와 인터뷰에서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다”는 말을 한 적 있다. 장 전 주무관 역시 그 말을 알고 있었다. “공익신고 직후에는 하루에 한번씩 인터뷰를 했다. 사회의 큰 관심사였다. 그때도 힘들었지만 사람들이 주목해줬다. 힘내라는 메시지도 보내줬다. 용기가 생기고 보람이 느껴졌다.”

장 전 주무관은 증거인멸을 이유로 기소됐고,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다. 형이 확정되면서 공무원에서 파면됐다. “평생의 직장에서 쫓겨나게 됐다. 대부분의 공익신고자가 이렇게 된다. 부당해고 재판 끝에 복직하는 경우도 있지만 징계를 내리거나 왕따를 시켜 못 버틴다. 생계가 어려워진다. 직장이 끊긴다는 건 인맥이 다 끊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 사회적 관심까지 줄어든다. 그 즈음이 되면 대단히 힘들다. 그래서 고통이 길다고 표현한 것 같다. 고통이 길지 않은 세상이 됐으면 한다.”

다시 같은 상황으로 돌아가도 공익신고를 할 것이냐고 물었다. 장 전 주무관은 “후회하지 않는다. 같은 상황이 와도 다시 폭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갈등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분명 큰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민단체를 비롯해 고마운 분들이 많이 계시니 마냥 후회스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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