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맥가이버’(MacGyver)는 1980년대 중반 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방영된 미 ABC의 대표적인 TV 시리즈물이지만, 그 주인공은 참 별났다. 주인공 맥가이버(리처드 딘 앤더슨)는 첩보원이지만 다른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요원 캐릭터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일단 그는 총을 쏘지 않았다. 아니 총을 무서워했다. 다른 이들을 저격하는 것뿐만 아니라 첩보원은 스스로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데 총을 못쏘고 더구나 무서워하기까지 하다니 황당했다. 어찌 그것이 생존을 위해 가당키나 할까. 영화 ‘스파이’(2015)에 등장하는 CIA 내근 수사 요원 수잔 쿠퍼(멜리사 맥카시)같은 캐릭터라면 모를까. 그러나 총이 없었던 맥가이버는 그 이상의 활약을 했다. 항상 위기상황에 처해서도 특별한 방법으로 모면하거나 탈출한다. 더구나 멋지게 해결까지 한다. 주인공이기 때문에 총알이 항상 피해가고 악당이 주절거리다가 스스로 파멸을 부르기라도 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맥가이버는 기지를 발휘하여 멋지게 극복해낸다. 그것도 한 두 번이지 7년 동안 어떻게 매번 벗어날 수 있을까. 매번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한다. 그의 무기는 총이나 칼이 아니라 바로 물리학이나 화학적 지식이었다. 단순히 지식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 적용하는데 뛰어났다. 실전 무술에 버금가는 서바이벌 케미스트리와 피직스였다.

신기하게도 매번 그가 처한 상황에서는 주변에 항상 특정한 재료와 준비물들이 있다. 그가 발견해내는 것으로 나오지만 말이다. 하지만, 실제현실에서 그렇게 되는지 알 수는 없다. 영화에서 관객들이 바라는 것은 실제에서 그렇게 실현되는가가 아니라 영화적 현실에서 그럴듯한 것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이제 볼수 없지만,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는 수많은 맥가이버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이제 드라마가 아니라 예능프로그램에 주로 등장한다. 그들이 다루는 소재는 물리학적 화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재료들이 아니다. 맥가이버가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이 주로 폭발이나 타격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런 유형의 맥거이버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먹을거리다. 그들을 말하자면 ‘푸드 맥가이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특정 식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조리하도록 요구된다. 여기에는 대체적으로 두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의료 맥가이버들이다. ‘닥터테이너’나 ‘쇼닥터’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들은 멋들어지고 단호하게 말하므로 쇼퍼포먼스같다. 사실 맥가이버는 쇼잉 퍼포먼스를 하는 캐릭터다. 의료인들은 특정 질병이나 증상에 좋다는 재료를 소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음식 처방을 내리거나 실제로 만들어 보이기도 한다. 위험상황은 최고조다. 그들의 처방을 부각하기 위해서 앞서 공포감이나 불안심리가 잔뜩 조장된다. 이에 예방하거나 극복하기 위해 의료 맥가이버들이 내리는 레시피를 보면 좋지 않은 음식은 없으며, 낫지 않을 병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주변에 있는 사소한 재료들을 가지고 충분히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질병과 바이러스의 위험에 노출된 이들이 그러한 맥가이버의 지침을 따른다면 충분히 언제나 탈출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복잡하고 화려한 성분 이름과 해외 연구결과 수치들이 장식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성분이 우리는 뭔지 모른다. 그들이 알려주는 대로 얼마나 언제까지 섭취를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요즘 부각되고 있는 이들은 쉐프 맥가이버들이다. 이들은 맥가이버처럼 물리학적 화학적 지식을 가졌거나 의사들처럼 의료적인 지식을 강조하지만 않지만, 순식간에 시청자들에게 필요할 것 같은 음식을 선보인다. 일단 닥터들처럼 이론지향적이지도 않다. 실제로 그들이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더구나 매우 일상적이고 간단한 재료, 아니 조악한 것들을 가지고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재료와 그것을 활용한 미션 주제일 것 같지만 번번이 그것을 극복해내는 그들에게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그들의 화려하고 때로는 현란한 손놀림은 맥가이버의 현신이라고 불릴만하다. 그들은 상황에 맞는 요리들을 즉흥적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맥가이버의 순발력을 이길만하다.

   
▲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이런 푸드 맥가이버들이 제시하는 방법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감과 충만함이 가득해진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을 실제 일상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푸드 맥가이버들은 그 세계 안에서만 존재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책임은 이를 보는 사람에게 전가된다. 저렇게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데 못한다면 말이 안될 듯 하다. 그래서 필요한 조리도구나 재료도 사기 일쑤이다. 하지만 생활인들은 일을 해야 하며 직장이나 학교에 가야하고, 각종 모임이나 애경사를 쫓아 다녀야 한다.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함께 생활을 해야 하고 누군가와 맺는 관계 속에서 음식을 위치시켜야 한다. 하지만, 푸드 맥가이버들의 세상은 짜인 구조, 분리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런 구조에서나 그들의 조리는 가능하다. 드라마 ‘맥가이버’가 첩보원이라는 가상 상황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푸드 맥가이버들이 알려주는 처방이나 레시피는 모방의 욕구를 불러일으키지만, 그들의 일상의 삶은 그것을 허용하기 녹록치 않고 다만 인식적 해방을 이뤄주기는 한다. 친환경 웰빙 음식을 찾아 먹지 않아도, 적절한 정크 푸드와 화학조미료와 소스를 살려 맛나게 먹으면 된다는 심리적 위안 기제에서 더 드러난다. 그것이 백종원의 인기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인이기도 했다.

   
▲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우리 일상에 대한 진단이 없는 선에서 간단 간편한 레시피는 실용성이 더 없다. 예컨대 1주일 동안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지 파악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이런 저런 요리를 제시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또한 각자 상황을 진단하지 않는 상황에서 평균적인 레시피는 한계가 많다. 어쩌면 그것은 1인 미디어가 해야 될 영역인지 모른다. 그들은 주치의 개념의 맥가이버가 아닐까 싶다. 의료적이든 음식차원에서든 말이다. 그러나 뚝딱뚝딱 쉽게 만들어내는 순발력 보다는 느려도 좋으니 제대로 된 방안을 개개인에게 맞춤식으로 제공하는 푸드 맥가이버이기를 바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요기를 위한 쇼잉에 불과하다. 쇼는 볼 때는 즐겁지만 뒤돌아서면 황망하므로 다시 그 앞으로 가고 싶어질 뿐이다.

드라마 ‘맥가이버’ 시리즈가 유행할 때, 맥가이버 칼이라는 것이 있었다. 세상모든 일을 작은 칼 하나만 있으면 다 해결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 많으며 실제로 쓸 일도 별로 없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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