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한국일보 ‘삼성전자 백혈병 보상’ 사설, 고치고 고치고
한국일보 ‘삼성전자 백혈병 보상’ 사설, 고치고 고치고
추가 취재 후 180도 다른 내용으로 대체…삼성전자 “권고안 거부 뜻 밝힌 적 없다”

지난 23일 삼성전자가 1000억 원을 기부해 공익법인을 설립, 백혈병 등 삼성 반도체·LCD 직업병 피해자한테 보상한다는 조정권고안과 관련해 “삼성전자는 이번 권고안을 거부했다”고 밝힌 한국일보 사설이 당초의 논조와 바뀐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일보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의 권고안 내용에 대해 원래 <삼성전자 백혈병문제 조정, 산재 해결 전범 될 만>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권고안은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의 인과관계가 명쾌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삼성전자에 도의적 책임을 부담시킨 것”이라며 “산업안전 문제 해결방식의 한 전범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국일보는 “삼성전자는 ‘몇 가지 고민되는 대목은 있다’면서도 큰 틀에서 권고안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라며 “지난해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제3의 중재기구에서 보상 기준과 대상 등을 정하면 그에 따르겠다’고 말하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다”고도 설명했다.

이 사설의 첫 등록시간은 이날 오후 6시17분이며 최초 수정 시간은 8시23분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후 10시11분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라는 제목으로 다시 등록된 사설과, 11시29분 수정된 <막판 매듭 못 푼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 조정> 사설은 원래 내용과 180도 바뀐 버전이 새로 올라왔다.

   
▲ 지난 23일 한국일보 홈페이지에 올라온 수정 전 사설.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가 다시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로 시작하는 수정된 사설에서는 “삼성전자는 세부 사항에서 감당할 수 없는 내용들 때문에 이번 권고안을 거부했다”며 “세부 항목에서 양측의 입장 차가 너무 커서 최종타결까지 가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고 조정위 권고안에 대한 평가를 번복했다.

그러면서 한국일보는 △퇴직 후 잠복기 최장 14년 보장을 받아들일 경우 산업계 전반에 미칠 파장이 너무 크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근간을 흔들 가능성이 있다 △공익법인에 삼성전자 사업장 내부 시스템 점검 권한 부여는 심각한 경영권 침해라는 삼성전자의 입장을 전했다.

2007년 3월 기흥공장 반도체라인에서 일하던 황유미(당시 23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뒤 세상에 알려진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이제서야 해결의 가닥을 잡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한국일보가 “여전히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것이 안타깝다”고 논조를 바꾼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사설을 쓴 조재우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방판에서는 그렇게(원래 사설대로) 썼다가 편집국에서 ‘삼성전자는 자기들이 합의한 바 없다는 식으로 얘기한다’는 전화를 받고 밤에 들어와서 사설을 다시 썼다”며 “내가 삼성전자 쪽에 다시 추가로 취재해서 물어보니 삼성은 조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조 논설위원은 “오늘 다른 언론에서 재계 관계자나 전문가들이 조정위의 권고안을 논란으로 다루고 법적 문제가 있다는 주장들 모두 내가 어제 삼성 쪽에서 들은 얘기와 똑같다”며 “타협은 한 것처럼 보이고 싶은데 불만은 많아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조 위원이 미디어오늘과 통화 후 오후 3시41분 수정된 사설에서는 “삼성전자는 이번 권고안을 거부했다”는 부분이 “삼성전자는 이번 권고안에 대해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로 재차 바뀌었다. 

   
▲ 한국일보 24일자 사설.
 

조 위원의 사설과 함께 24일자 경제면 1단으로 실린 기사 역시 “삼성전자 측은 이번 조정안에 대해 ‘일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 있어 고민’이라며 ‘가족의 아픔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는 온라인판과는 달리, “공익법인이 삼성전자의 재발방지 정책을 감독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경영간섭으로 보일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로 바뀌었다.

이 기사를 쓴 조태성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 조정안에서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게 삼성이어서 나는 삼성의 진짜 본심이 무엇인지 추가로 계속 물어봤다”며 “삼성 측 여러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조정안에 대해 내부적으로 입장이 갈렸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의견이 많아, 이런 내용을 편집국에 보고하자 지면 기사를 고치고 사설에도 반영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한국일보 사설을 통해 “60세에 은퇴할 경우 74세까지 보장을 하라는 것인데, 70대 남성의 3분의 1이 암환자로 조사되는 상황에서 이런 보상안을 받아들일 경우 삼성전자는 물론, 산업계 전반에 미칠 파장이 너무 크다”고 밝혔지만, 이는 지나친 억측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삼성반도체와 LCD 공장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20~30대에 백혈병 등 암으로 세상을 떠났거나 투병 중이고, 60세 이상 중 암에 걸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반면 삼성 측은 조정위의 권고안에 대해 거부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어제 권고안이 나오고 10일 안에 우리가 답변해야 해서 좀 더 시간 가지고 검토할 것”이라며 “면밀히 잘 검토해야 하는 부분이어서 성급한 결론을 낼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도 “우리가 거부했다고 밝힌 적이 없는데 한국일보 사설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나는 한국일보의 연락을 받은 적이 없고 공식 입장발표 후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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