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배출한 스포츠 선수 중에 최고의 상품(?)은 누구일까? 상품이라는 말에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결국 선수가 스포츠에 있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자산(property)이기 때문에 비즈니스적으로는 지나치지 않은 표현이다. 아무튼 ‘갈색폭격기’ 차범근(호칭 생략, 이하 같음), ‘농구천재’ 허재,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피겨퀸’ 김연아, ‘캡틴’ 박지성 등등이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이들 말고도 당대 대한민국 스포츠를 대표한 선수들은 여럿 있다.  

이들은 국민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그로 인한 명예만큼 부(富)도 남부럽지 않게 쌓았다. 그 명예와 부는 이들의 스포츠에 대한 열정과 노력에 따른 당연한 보상이다. 그러나 이들은 어릴 때부터 그리 여유있는 경제적 환경에서 선수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적지 않은 어린 학생선수들은 재능은 있지만 가정 형편상 잠깐이라도 해외 유능한 지도자의 코칭을 받지 못하거나 해외 훈련을 받지 못하여 그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유망주 선수에 대하여 그 훈련에 드는 비용 또는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자가 나타난다면 선수 측에겐 구세주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지원이 아무 조건 없는 후원이라고 한다면 괜찮겠지만 일종의 투자(investment)라고 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투자자는 그 반대급부로 선수의 마케팅 권리를 일정기간 독점하고 마케팅에 관한 결정권을 보유하고자 할 것이다. 그래도 합리적인 수익 배분의 조건 등 부당하지 않은 내용이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선수가 이른바 ‘스타’가 되어 광고, 스폰서십 등으로 얻은 상당한 수익을 합리적 약정 비율로 선수 측과 투자자가 나눠 갖는다면 어쩌면 ‘상생’의 모델이 될 것이다.

   
▲ 카를로스 테베즈
 

선수 제3자 소유 금지제도(TPO Rule), EPL은 2008년부터, FIFA는 올해부터 시행

그러나 세상과 시장은 어디 그런가. 스포츠 비즈니스맨들은 재능있는 중남미나 아프리카의 유망주에 대하여 투자를 하는데, 이재(理財)에 능한 대부분은 선수를 전속으로 하고 선수의 마케팅 전권을 행사하며 선수의 의견은 절대 고려하지 않는 등 투자 회수 및 수익 창출에 매진한다. 특히 국제 이적이 활발한 축구계에선 아프리카, 중남미 선수들에 대한 이러한 투자 비즈니스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투자자들은 국제 이적에 있어서 구단과의 협상을 도맡아 하고 선수 마케팅 수익을 독점하기도 한다. 심하게 말하면 현대판 ‘노예제’와 같은 모습이다. 아르헨티나 축구대표 선수 ‘테베즈’와 ‘’마르세라노‘가 2006년 8월 브라질 ‘Corinthians’에서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West Ham United’로 이적할 때 West Ham United가 이적 계약을 선수들의 소유권을 보유한 회사와 체결하고 이적료를 이들에게 지급하고, 공개해야 하는 이적료를 공개하지 않아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래서 유럽 축구계에서는 이런 이른바 ‘선수 제3자 소유’(Third Party Ownership, TPO)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이를 규제할 제도 마련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고민의 결과가 TPO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룰(TPO Rule)을 만든 것이다. EPL이 2008년 8월 2008-09시즌부터 TPO Rule을 시행하였고, 국제축구연맹(FIFA)은 작년에 준비하여 올 해 5월 1일부로 TPO Rule을 시행하고 있다. TPO Rule은 이전 구단의 선수 이적에 대한 간섭 내지 영향력도 배제하고 있다. TPO Rule을 도입하는 국가축구협회가 늘어나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프로축구에서는 선수를 사고 팔아 이적료를 벌거나 마진을 챙기려는 이른바 ‘선수 장사’가 지금보다 어려울 것이다.

국내도 선수 투자 관련 비즈니스와 인권의 갈등 조정하는 제도 마련해야

TPO Rule에 대해선 유럽에서도 그 찬반 논란이 뜨겁다. TPO가 선수인권과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것을 부인할 순 없지만 그 긍정적 효과 또한 부정할 수 없고 스포츠비즈니스의 본질을 모르는 지나친 규제라고 보는 의견도 강하다. 자칫하면 실제 케이스가 법적 분쟁으로 발전되어 유럽사법재판소나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의 결정으로 TPO Rule의 위법성 여부가 판가름 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스포츠선수 관련 마케팅 시장이 크지 않아 실제 투자자가 선수에게 투자하고 선수의 마케팅 수익에서 투자 및 이익을 회수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보기 어렵지만, 프로야구, 프로축구 선수들의 국제 이적의 빈도가 늘어나고 있고 선수 마케팅 시장이 확대되는 사정을 보면 향후 위와 같은 TPO 비즈니스의 등장은 충분히 예견된다. 김연아, 박태환, 박지성, 박세리 급의 선수가 아니라도 어느 정도 상품성 있는 선수라면 비즈니스적으로도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는 대상이 될 것이다.

다만 TPO 비즈니스의 문제 내지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고 TPO에 관한 법률관계는 법적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스포츠의 특성과 스포츠비즈니스의 속성상 선수에 대한 모든 투자를 무조건 금지하는 것도 지나친 것 같고, 그렇다고 이를 방관만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우리도 적절한 규율 방안을 미리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FIFA TPO Rule 시행에 따라 대한축구협회(KFA)와 프로축구연맹(K리그)도 조속히 관련 규정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필자는 운동선수 출신의 변호사이다. 개인적‧직업적으로 스포츠‧엔터테인먼트‧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우리 스포츠‧엔터테인먼트‧문화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제도적 발전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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