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를 앞둔 삼성그룹은 포털 메인화면 배너광고를 비롯해 100여 곳이 넘는 언론사에 광고를 내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총력을 쏟고 있다. 주류언론 프레임은 한결같다. ‘국내일류기업 삼성의 경영권승계를 방해하는 해외 투기자본 엘리엇을 물리치자.’ 언론은 연일 표 대결을 부각시키며 합병성사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보도는 일방적으로 삼성에 유리하다. 하지만 일방적 보도는 역으로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의 험난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다급함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7월3일 ISS(기관투자가 서비스)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안을 반대해야 한다며 “합병비율은 0.95(삼성물산):1(제일모직)이 적절하다”고 밝혔을 때 대다수 언론은 “ISS가 엘리엇의 부정확한 정보를 인용했다”는 삼성의 반론을 담기에 바빴다. 중앙일보는 이를 두고 4일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추진이 암초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삼성의 이익이 걸리자 헤지펀드에 관대했던 매일경제가 6일 <한국 대기업 노리는 글로벌 투기자본>이란 기사를 통해 엘리엇을 비판하고 나섰다. 일련의 보도를 관통하는 프레임은 ‘애국’이다. 

합병이 곧 국익이라는 논리가 지면을 덮기 시작했다. 대표적 예가 7일자 이철호 중앙일보 논설실장이 쓴 <투기꾼 엘리엇에 물어뜯기는 한국>이었다. 이철호 실장은 2013년 삼성언론재단으로부터 삼성언론상 논평비평상을 받았다. 합병을 공정하게 하라는 엘리엇의 주장이 “해외 투기자본의 국내 기업 경영권 탈취 시도”로 치환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8일자에서 <한국 대기업, 헤지펀드 막을 막강 방패 없다>는 기사를 냈고, 매경은 9일자에서 <삼성-엘리엇 전면전 속 금감원 ‘강건너 불구경’>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금융당국이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발 벗고 뛰라는 말이었다. 조선일보는 9일자부터 ‘투기자본에 흔들리는 한국’이란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 조선일보 15일자 B2면.
 
   
▲ 중앙일보 7월10일자 사설.
 

‘애국’ 프레임 다음은 ‘국민연금’ 흔들기였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0.15%를 갖고 있어 합병결과를 좌우하는 캐스팅보트로 여겨졌다. 합병찬반 입장은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됐다. 전문위 탄생 이후 합병 의결은 줄곧 전문위원회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전문위는 최근 SK와 SK C&C 합병안에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9일 설문조사를 통해 “엘리엇은 투기성 먹튀펀드라는 응답이 75%였다”고 보도한 뒤 “국민연금이 백기사를 해야 한다는 응답은 54%였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10일자 사설에서 “나라경제 생각하는 국민연금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압박했다. 

결국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을 전문위원회에 넘기지 않고 국민연금 자체 투자위원회에서 편의대로 결정했다.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이와 관련 국민연금 전문위원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9일 국민연금이 전문위원 몇 명을 불러 간담회를 가졌다. 여기서 전문위원들의 합병 반대기류를 확인하고 10일 (국민연금이) 일방적으로 합병찬성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의 이례적 결정에는 삼성그룹의 전 방위 로비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언론은 합병찬성 사실에만 주목했다. 매일경제는 10일자 기사에서 <삼성합병은 국가적 중대 사안 판단…자체 결정 ‘용단’>이란 제목을 뽑았다.

주류언론은 이후 ‘합병무산’의 가능성에 대해 겁을 주기 시작했다. 중앙일보는 13일자에서 “삼성물산 합병 무산 땐 주가 하락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삼성물산은 13일 일제히 신문광고를 내고 “합병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고 밝혔다. 언론 또한 신문광고와 유사한 기사를 쏟아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15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국민연금이 스스로 정한 규칙마저 위배하면서 의결권행사 방향을 단독 처리하는 자본시장 환경이야말로 국부 창출을 저해하고 헤지펀드의 공격을 자초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지만 소수의견에 불과했다.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가운데)와 그의 가족들. ⓒ연합뉴스
 

기자들도 일련의 삼성보도에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보수중앙일간지의 한 기자는 “순환출자를 통해 대기업을 지배하는 취약한 지분구조에 문제가 있다. 최소한 이번 사건은 엘리엇과 삼성 양비론으로 보도해야 한다”고 말한 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일방보도”라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삼성이 기자들에게 이런 방향으로 써달라며 직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큰 광고주여서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오래전부터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경영권승계 절차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지금껏 낸 상속세는 16억 원에 불과하다. 이건희 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태 편법증여사건으로 2007년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 탈세범에게 세상은 관대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회장이 사망하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천문학적 상속세를 내야 한다. 이건희 일가가 42%의 지분을 갖고 있는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 1:0.35 비율로 합병하면 이재용은 삼성물산을 움직일 수 있다. 삼성전자에 대한 영향력도 높일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합병이 중요한 이유다. 

주류언론은 ‘국내기업과 해외 투기자본의 대결’ 프레임을 줄곧 꺼내고 있다. 엘리엇이 투기자본이라는 비판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경영권승계를 노리는 재벌총수의 ‘횡포’에 맞서 소액주주들이 반발하는 프레임으로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삼성물산에서 엘리엇 지분은 7.12%에 불과하다. 엘리엇은 단지 외국인투자자를 대표하는 격의 주주인 셈인데, 반발하는 이유도 시장주의자 관점에서 타당해 보인다. 논란의 중심은 합병비율이다. 1:0.35 비율은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 이 비율은 자본 시장법에 따른 시가총액(주가)기준이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6월12일 기준 삼성물산의 자산 가치는 12조원인데 제일모직은 4000억원 수준이다. 자산 가치 기준으로 환산하면 합병 비율은 1:2.85로 뒤바뀐다. 합병비율에 따라 지분가치는 최대 8배 가까이 차이가 날 수 있다. 이 문제는 삼성의 편이냐, 엘리엇의 편이냐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합병비율이 타당한지를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삼성의 지배구조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도 필요하다. 그러나 언론에는 이런 질문이 빠져있다. 

   
▲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연합뉴스
 

역설적으로 임시 주총을 앞둔 언론의 일방적 보도는 위기에 몰린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을 드러낸다. 삼성물산 지분에서 엘리엇을 제외한 외국계지분은 26.78%다. 이들에 대한 ‘포섭’이 쉽지 않다. 삼성은 합병승인을 위해 과반 출석의 3분의2 이상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이 상황이 쉽지 않기 때문에 광고와 언론을 통해 연일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삼성은 소액주주를 일일이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인 소액주주들도 합병 반대 입장인 이들이 제법 많다. 삼성그룹은 주주총회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논란의 본질은 이재용 부회장의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거저’ 먹으려했던 욕망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언론이 말하지 않는 이 ‘욕망’에 주목해야 한다.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는 시사인 기고글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삼성을 국민 모두를 위한 공익적 기업그룹으로 전환시킬 방안을 고심해보자”고 제안했다. 예컨대 경영권 상속 관련 주식에 상속세를 감면해주고 기업에 고용증대와 투자 증대를 요구하는 식이다. 17일 주총 결과와 상관없이 삼성그룹은 이번 기회에 지배구조의 취약함을 드러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언론이라면, ‘삼성 대변인’ 노릇을 멈추고 원칙과 상식에 맞게 보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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