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저균 100㎏을 대도시 상공에서 살포하면 100-300만 명을 죽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1메가톤급 수소폭탄에 맞먹는 살상 규모인 셈이다. 지난 5월 28일 미국 국방부 발표를 통해 살아있는 탄저균 표본이 평택에 위치한 오산 공군기지에 배송됐고, 지속적인 실험과 훈련이 진행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메르스 여파로 탄저균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탄저균 불법 반입·실험 규탄 시민사회대책회의’(대책회의)는 그동안 탄저균 실험의 진상규명을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 12일 ‘한미 생물방어 협력과 주한미군으로의 탄저균 샘플 배달사고 관련 사실관계 파악 및 대책마련을 위한 한미 합동실무단’을 구성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지난 5월 27일 확인된 탄저균 샘플 배달사고에 초점을 둔다. 대책회의는 15일 오후 외교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탄저균 불법 반입과 실험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해당 배달사고 뿐 아니라 조사를 확대해야 하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불평등한 한미 소파(SOFA)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탄저균 불법 반입·실험 규탄 시민사회대책회의’가 15일 오후 외교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주한미군은 탄저균 훈련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책회의는 이미 2013년 한미군당국이 공동으로 생물방어훈련을 실시했고, 같은해 한미 생물무기 감시포털을 구축하는 등 이전부터 생화학무기 실험이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권정호 변호사는 “오산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에 조사를 국한할 게 아니라 주피터 프로그램에 따라 일어난 것에 대한 모든 내역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피터(JUPITR) 프로그램은 ‘합동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 위협인식(Joint USFK Portal and Integrated Threat Recognition)’의 머리글자를 따 만든 말로 생화학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병원균이나 독성을 초기에 탐지하고 관계기관에 정보를 공유해 주한미군의 전투력을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프로그램이다. 

주피터 프로그램에 따르면 평택 오산공군기지 뿐 아니라 평택 험프리 미군기지, 용산미군기지, 군산미군기지에도 생화학 실험실이 있다. 또한 주한미군은 이번 실험이 ‘통상적인 실험’이라고 밝혔고, 북한의 생화학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이라는 입장이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조승현 평화군축팀장은 “적국이 생화학무기로 공격을 한다고 해서 거기 에 생화학 무기로 맞대응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국제법상 탄저균은 대량살상무기로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서 금지하고 있는 물질이다. 또한 주한미군의 탄저균 반입은 국내에 사전신고가 없었기 때문에 국내법인 ‘생화학무기금지법’과 ‘감염예방법’ 위반 소지도 있다. 

대책회의는 이런 불법 실험에 대한 조사를 국방부 책임 하에 두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주한미군의 훈련 사항이기 때문에 한미 합동실무단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과 주한미군 기획참모부장이 맡았다. 

이에 권정호 변호사는 “이 사건은 생물무기금지협약을 위반했으니 주무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감염병과 관련됐으니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주도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미 2사단. 시민사회단체들은 주한미군 2사단 23화학대대에가 훈련한 영평 로드리게스 훈련장 등에서 생화학무기에 대한 훈련실태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진=민중의소리 제공
 

합동조사단에는 전체 20여명 중 민간 전문가가 2명(법률전문가, 미생물전문가) 포함돼 있다. 평통사 조승현 팀장은 “단 두 명은 사실상 정부의 들러리 밖에 될 수 없다”며 “민간 전문가와 주민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1년 캠프 캐롤에 고엽제가 매립돼 있다는 의혹이 나왔을 때 한미 공동조사단에는 지역 주민대표들과 시민사회단체도 참여한 바 있다.   

대책회의는 근본적으로 한미소파 협정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권정호 변호사는 “독일 소파에서 규정하는 것처럼 국내법상 반입이 금지된 물품과 관련해서는 국내법 규정을 적용해야한다”고 말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국회 국방위에서 주한미군의 물품 반입 부분을 담은 소파 9조에 대해 개정보다는 권고사항을 보완하겠다고만 밝혔다. 

독일 소파 54조 4항은 “독일법이 수입을 금지하는 물질에 대해 독일 정부의 승인 아래 ‘공공보건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미군이 반입할 수 있고, 독일 정부와 주독미군 지휘부는 정부 승인을 얻어야 할 물질의 목록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한미간 소파 제9조 5호는 미군의 공적 사용 물품에 대해서 ‘미군에 탁송된 군사화물’의 경우에는 세관검사를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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