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제5공화국 시절 저녁 9시를 알리는 시보광고와 함께 시작한 뉴스의 첫 앵커멘트는 “전두환 대통령은”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 정치에 항거하는 국민 여론이 높았음에도 TV 뉴스에선 이 같은 정권 비판 보도를 볼 수 없었다.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고 대통령 비판 보도에 재갈을 물렸던 지상파는 이른바 ‘땡전뉴스’로 전락했다.

언론을 정권의 손아귀에 두겠다는 언론통폐합과 보도지침은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정권에 의한 공영방송의 낙하산 인사는 계속되고 있으며, 청와대의 외압과 보도국 간부의 자발적 충성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디어오늘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땡박뉴스’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1월1일부터 7월10일까지 191일간 지상파 3사(KBS·MBC·SBS) 메인뉴스의 박 대통령 관련 보도를 전수 조사했다. 3사는 보도량과 다루는 주제에서 대동소이한 차이를 보이면서도 각각 중점적으로 끌고 나가는 의제의 보도 횟수와 배치 순서를 달리했다.

SBS는 ‘8뉴스’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리포트와 단신 보도를 162건 내보냈다. 뉴스 세 번째 꼭지까지 박 대통령 관련 보도는 총 56건으로 전체 162건 중 34.6%를 차지했다. SBS는 총 보도 횟수와 중요 뉴스 비율에서 지상파 3사 중 모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같은 기간 KBS의 ‘뉴스9’는 박근혜 대통령 관련 뉴스를 총 155건 보도했다. 하루 평균 0.81건이 지상파를 타고 안방에 전달된 것이다. 이는 대통령의 국내·외 공식 일정과 국가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발표나 입장, 국무회의 및 수석비서관 회의 발언 등을 모두 포함한 통계이다. ‘땡박뉴스’라고 볼 수 있는 세 번째 리포트까지는 39건으로 전체의 31.6%를 차지했다. 

MBC 메인뉴스 ‘뉴스데스크’는 조사 기간 리포트 152건을 대통령 관련 뉴스를 전하는 데 할애했다. 이 가운데 51건(33.5%)은 1~3꼭지에 배치해 강조했다. 대부분 박 대통령의 발언과 동정을 전하는 것에 그쳤다.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을 리포트에서 함께 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지상파 3사의 박근혜 대통령 관련 보도 건수. (조사기간 : 2015.1.1~7.10, 조사대상 : 지상파 3사 메인뉴스)
 

SBS ‘땡박뉴스’ 34.6% 3사 중 1위… MBC 33.5%, KBS 31.6%

SBS가 뉴스 첫 번째 꼭지로 다룬 박 대통령 관련 리포트로는 <180조 풀어 창조경제 실현…경제 활력 충전>(1월15일), <박 대통령 “우리 경제 불쌍…경제활성화 최우선”>(2월23일), <한국-쿠웨이트 정상회담…“제2의 중동붐 기대”>(3월 2일), <한자리에 모인 혁신 리더들…“미래의 문 연다”>(5월20일) 등 경제 관련 이슈가 많았다.

SBS 땡박뉴스 56건을 내용상으로 분류하면 정치(16건), 경제(15건), 인사(11건), 외교(8건), 통일(5건), 메르스(1건) 순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성완종 리스트와 국회법 개정안, 당청 갈등 등의 굵직한 정치 이슈로 대통령에 대한 주요 보도가 자주 등장했으며, 이완구 총리 내정·사퇴 파동과 청와대 개각 등으로 인사 관련 리포트도 많았다. 

박 대통령의 동정 보도 중에서는 전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박 대통령 공약인 창조경제를 활성화할 전국 거점으로 박 대통령은 올해 들어서도 출범식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KBS는 특히 올해 초 ‘집중 진단’ 코너로 관련 기사를 두 꼭지 연속 배치했다가 한 꼭지로 줄였다. 1월27일 광주, 2월24일 충북 센터가 그 혜택을 봤다. ‘집중 진단 ①’에서는 박 대통령이 출범식에서 다양한 관련 제품을 돌아보고 청년 기업인과 상품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이 배치됐다. ‘집중 진단②’에서는 각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전력 분야를 소개하는 형식이다. 

‘집중 진단②’에서 광주의 경우 수소 전지 등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가 중점 산업이고 충북의 경우 스마트 헬스 케어 관련 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모두 5·6번째 리포트로 배치됐다. 

하지만 3월부터는 창조경제혁신센터 관련 리포트가 집중진단 대상에서 빠졌다. 3월 16일 부산, 3월30일 경기도 판교, 4월9일 경남, 5월11일 강원, 5월22일 충남, 6월26일 제주 등으로 각각 1건 보도에 그쳤다.  

   
▲ 올해 상반기 KBS ‘뉴스9’ 중 갈무리
 

MBC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동정을 자세히 보도했다. 전국에 설립된 ‘창조경제혁신센터’ 소식, 해외 순방, 국무 회의 등 그의 업무와 일상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MBC 뉴스에서 특이할 만한 것은 박 대통령의 중동 순방이 있던 시기(3월1일~8일)에는 매일 한 꼭지 이상 할애했다는 점과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세워질 때마다 보도했다는 점이다. 

 <“광주를 수소자동차 메카로”>(1월27일), <“충북을 바이오산업 중심으로”>(2월4일), <유통 혁신 거점 만든다>(3월16일), <“기계·ICT 융합 허브 육성”>(4월9일), <“빅 데이터로 창업 생태게 구축”>(5월11일), <“세계 태양광 산업 허브로 육성”>(5월22일), <“차세대 농수산 벤처 전초기지”>(6월2일), <제주에 ‘한국형 실리콘 비치’ 조성>(6월26일) 등이 그 예다. 

KBS, 유승민 찍어내기에 “朴 존재감 보여줬다” 호평

SBS 뉴스에서도 국가 현안에 대한 박 대통령과 청와대 공식 발표에 대한 리포트(21건) 다음으로 대통령의 국내·외 공식 행사 참석 등 동정 보도(19건)가 많았다. 대통령의 직접 발언을 내보낸 리포트도 38건이나 됐으며 청와대 홍보수석이나 대변인 등 관계자를 통한 입장 표명은 11건으로 나왔다. 

1~3번째 꼭지 순서에는 주로 배치되지 않았지만 유독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보도 중 하나는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전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에 대한 리포트다. SBS는 모두 10차례에 거쳐 박 대통령의 지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 참석 등을 다루며 정부의 신성장 동력 마련 기대에 힘을 실어줬다.

물론 청와대발 국책 홍보성 기사만 나왔던 것은 아니다. SBS는 박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은 지난 2월25일엔 대통령의 경제혁신과 통일기반 마련을 위한 각오를 첫 번째 꼭지로 다루면서도 △지지도 반토막 △깜깜이 인사 △갈 길 먼 경제 활성화 등 박근혜 정부 2년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중동과 중남미 등 순방을 나갈 때마다 매일같이 동정을 전하고, 심지어 지난 4월20일 세월호 1주기 추모 기간에는 페루 방문 중 K팝 팬클럽 회원들과의 만남 소식까지 전하는 등 대통령 동정 보도의 중요성과 적절성에 의문을 남겼다. 

   
▲ 올해 상반기 SBS ‘8뉴스’ 중 갈무리
 

20초 안팎의 단신성 동정보도가 별도 꼭지로 구성되는 경우도 있었다. KBS는 박 대통령이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국장에 참석한다는 내용을 3월23일 19번째 꼭지로 보도했고 한미 정상회담 예고 리포트는 5월11일 13번째에 내보냈다. 이 리포트는 각각 25초, 23초로 ‘뉴스9’의 간추린 뉴스와 비견될 정도로 짧은 단신성이었으나 모두 독립적으로 배치됐다. 

KBS는 박 대통령과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보도에도 각별했다. 박 대통령이 4월1일 광주에서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준비 상황을 보고받았다는 소식은 앵커 멘트로 소개된 단 두 줄(23초)짜리 단신이었으나 4번째에 배치돼 비중 있게 처리됐다. 

유니버시아드 개막식이 있던 7월3일에는 <뉴스9> 도중 현장 생중계를 연결했다. 91초 간 연결된 현장에서는 클로드 루이 갈리앙 FISU 회장의 개회사 막바지에 연결돼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개막 선언 이후 곧바로 연결이 중단됐다. KBS는 유니버시아드 대회 주관방송사였다. 같은 시간대 KBS2에서 개막식을 생중계(17시20분~22시)하고 있었음에도 박 대통령의 개막 선언 부분을 중복 보도했다. 

정치 관련 기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비평 기사는 없었다. 최근 여권을 뒤흔든 ‘유승민 사퇴’ 정국에서 KBS는 박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비박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말 한마디로 여권의 판도를 뒤흔드는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라며 “여권 전반에 대한 장악력 높일 것”이라고 전망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당시 ‘청와대 국회 지점’이라는 비난했던 조간 신문의 평가와는 대척점을 이루는 호평이었다. 

MBC, 박 대통령을 ‘심판자’ 자리에

박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를 떠올리는 듯한 중요 행보나 발언을 했을 때도 SBS는 해설성 리포트보다는 건조하게 내용만 전하는 데에 치중했다.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을 파독 광부, 간호사와 함께 관람하면서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하거나 스승의날 학교를 찾아 현 정부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가늠하는 교사들의 역사관에 대해 언급했을 때도 SBS는 ‘문화 콘텐츠가 사회 통합에 도움을 준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애국심’이라는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전달할 뿐이었다. 

SBS는 또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의 총체적 무능을 드러낸 ‘메르스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이 부각된 상황에서도 대통령의 대책 마련 지시와 관련한 중요 리포트는 1건밖에 없었다. 오히려 지난달 5일에는 시민 1500여 명이 메르스 위험에 노출됐다고 발표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전날 밤 회견을 비판하는 대통령의 발언을 제목으로 한 리포트를 내보내기도 했다.
 

   
▲ 올해 상반기 MBC ‘뉴스데스크’ 중 갈무리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MBC는 5일 리포트 <“확산 방지 최선… 믿음 가져달라”>에서 “박 대통령은 최초환자 발생 이후 국제기준에 따라 대응했지만 결과적으로 초동 대응에 허점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이 모든 역량을 동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며 청와대의 입장만을 전했다.     

5일 뒤인 10일 MBC는 톱뉴스로 박 대통령의 방미 일정이 연기됐다고 보도했다. 이때에도 방미 일정을 강행하려는 청와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셌지만, MBC는 리포트 <방미 일정 연기…“국민 안전 먼저”>를 통해 “미국 방문 일정을 축소해 북핵 등 중요 사안들을 협의해야 한다는 일부 의견도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아직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메르스 사태 수습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밝혔다”고 전했다. 

유승민 대표와 관련한 보도에서 MBC는 박 대통령을 ‘심판자’ 자리에 올려놓았다.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은 유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라며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고 밝혔다. MBC는 두 번째 꼭지 <“삼권분립 위배…위헌 소지 크다”>를 통해 “정부의 시행령 수정을 강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은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해 위헌의 소지가 크다는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입장을 전했다. 이어지는 리포트에서 거부권에 반대하는 야당의 입장 등을 담았지만, 하나의 리포트가 청와대 입장으로 채워지는 방식은 조사기간 동안 일률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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