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해킹감청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나자 불법감청이 이루어졌다는 우려와 함께 시민사회의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진보연대는 14일 오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날 있을 국회 정보위가 이 사태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 국정원은 해킹프로그램 사용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 14일 오후 국회앞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국정원을 향해 해킹프로그램 사용을 즉각 중지하고, 국회 정보위에 대해서는 국정원의 불법 사찰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통신비밀보호법 제10조의2(국가기관 감청설비의 신고)에 따르면 정보수사기관이 감청설비를 도입할 때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항을 국회 정보위원회에 통보해야 한다. 다른 국가기관의 경우에는 미래창조과학부장관에게 신고하도록 돼있지만 국정원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국정원이 이번 사건을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는지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변 박주민 변호사는 “국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국회 정보위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규정을 지켰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며 “감청설비가 기계 장치에 한정된다고 할 수 있지만 ‘기타설비’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충분히 포섭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구입한 해킹프로그램(RCS·리모트컨트롤시스템)을 어디에 사용했는지도 밝혀야 할 사안이다. 박 변호사는 “국정원이 대북용 내지 국외용이라고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정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국내에서 많이 쓰는 카카오톡을 해킹하려던 시도,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이 업그레이드 될 때마다 해킹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 요청을 한 점, 서울대 공대 동창회 명부로 해킹을 하려던 시도 등을 예로 들며 “국정원이 해킹프로그램을 국내에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는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변호사는 “이와 같은 것이 사실이라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채 불법적으로 도·감청을 한 것이며, 해킹 타겟을 찾는데 전화번호나 이메일을 사용했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 이탈리아 스파이웨어 판매 업체 '해킹팀'의 홍보화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정치개입과 연관해보면 위법 소지는 더 있다. 박 변호사는 “2012년 1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정치개입이 열을 올린 시점과 맞물려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했는데 이는 국내 정치인 사찰이나 여론 조작을 위해 사용했을 수도 있다”며 “그렇다면 국가정보원법과 공직선거법 등을 위반했을 소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 구입을 대행한 나나테크도 위법 소지가 있다. 박 변호사는 “나나테크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사의 설비를 납품하는 업체라 개인정보 사용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반드시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나나테크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소지가 있으며, 국정원의 불법 사실이 밝혀진다면 이를 방조한 죄를 지게 될 여지가 있다. 

국정원이 구입한 해킹프로그램은 단순한 감청 프로그램을 넘어선다는 주장도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이호중 상임이사는 “감청프로그램이라면 영장을 받아 합법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 해킹프로그램은 PC나 스마트폰에 저장돼 있는 정보를 전원만 켜져 있으면 언제든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감청 영장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진보네트워크 장여경 활동가도 “국정원이 해킹프로그램을 통해 하고 싶어한 것은 감청이 아니”라며 “나나테크를 통해 우회 구입한 것을 보면 국정원도 박주민 변호사가 지적한 불법적인 요소를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14일 오후 2시부터 국정원으로부터 이번 사건에 대해 질문한다. 이호중 상임이사는 “국회 정보위는 국정원에 대해 통제를 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라며 “이런 불법적인 행태가 언제 어떻게 이뤄졌는지 실상에 대해 정확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초 국회는 국정원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르면 국정원은 정치활동을 할 수 없고, 국회는 정보위원회를 전임 상임위로 바꿔 국정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참여연대 박근용 협동사무처장은 “국회에서 국정원 개혁에 합의한지 1년반이 지났는데 국회가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며 이번일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국정원을 감독하고 관리할 것인지 논쟁할 기회“라고 말했다. 

이호중 상임이사는 대통령의 책임도 있다고 봤다. 이 상임이사는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이와 같은 비밀프로그램으로 위법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직속 명령자인 대통령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대통령은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를 가지기 때문에 이런 중대한 사태에 대해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