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환자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후 삼성서울병원이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고 보도한 SBS가 해당 리포트를 수정한 것으로 드러나 삼성 외압 논란이 커지고 있다.

SBS는 지난 3일 ‘8시뉴스’에서 <삼성, 치료 책임진다더니…결국 다른 병원에>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내보내며 지난달 2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환자분들은 저희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영상으로 시작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응급실을 포함한 진료환경을 개선하고 부족했던 음압 병실도 충분히 갖춰서 환자 분들께서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SBS는 리포트 앵커멘트를 통해 “‘끝까지 환자를 책임지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3일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약속한 대목이다. 하지만 열흘 만에 이 약속은 번복됐다”면서 “치료 중인 확진 환자 15명 가운데 12명을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별도의 음압 병상이 없는 데다 방호복까지 입은 의료진 감염이 잇따르자 결국 백기를 들고 만 셈”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날 8시뉴스가 끝난 뒤 신동욱 앵커의 해당 부분이 완전히 재편집됐다. SBS는 앵커멘트를 재녹화한 뒤 SBS뉴스 홈페이지를 비롯해 포털뉴스에도 수정된 리포트를 다시 올린 것이다. 

현재 해당 리포트의 앵커멘트는 “삼성 서울병원이 치료 중인 메르스 환자 10여 명을 다른 병원으로 옮겼거나 옮기기로 했습니다. 시설 부족에 의료진 감염이 잇따르자 결국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로 수정돼 있다.

   
▲ 지난 3일 SBS ‘8시뉴스’ 갈무리. 현재 해당 영상은 편집된 상태다.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이는 방문신 SBS 보도국장의 지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와 SBS 기자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방 국장은 해당 리포트가 나간 다음 날인 4일 오후 남주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 수정과 관련한 사항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때는 3일 밤 이미 SBS 뉴스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에서 리포트가 수정된 뒤였다.

이에 대해 SBS 내부에서 ‘삼성 측의 외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자 기자협회는 5일 밤 긴급 운영위원회를 열어 앵커멘트가 바뀌게 된 경위와 삼성 측의 요구나 압력이 없었는지 등에 대해 보도국장의 입장을 묻기로 결정했다.

이와 별도로 SBS노조 차원에서도 오는 10일 오후 보도본부장과 국장, 담당 부장이 참석하는 보도 편성위원회를 열어 △방송제작 책임자가 공정성·공익의 이유 없이 임의로 리포트를 수정한 부분과 △방송 실무자(담당 기자 등)에게 상의나 통보를 하지 않은 점에 대해 방송편성규약 위반 여부를 따져 물을 방침이다. 

SBS노조 관계자는 “명백한 기사 오류와 사실관계 잘못이라든지, 공익을 위배하는 심대한 경우를 제외하고 앵커멘트를 재편집한 사례는 없는 걸로 확인됐다”며 “결국 보도국 간부에게 삼성 쪽의 외압 요구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기자협회와 SBS노조 측에 따르면 방문신 국장은 삼성 측의 요구나 압력을 받은 바는 전혀 없으며, 다만 앵커멘트가 이재용 부회장의 책임을 직접 묻는 형식으로 상황을 요약된 것은 ‘과잉’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그는 “오너 공격 기사가 갖는 대외적 상징성을 고려해 오너에 대한 비판은 오너의 잘못과 비리이거나 언론사와 기업이 대립할 때 마지막 무기로 쓰는 것이 우리 언론 현실”이라며 “해당 앵커멘트는 삼성병원 비판이라는 우리의 순수한 의도와는 무관하게 구성과 형식이 주는 이미지적 요소 때문에 언론계나 업계의 제3자들이 ‘SBS가 이 부회장을 직접 겨냥한 의도가 뭘까?’라는 억측 또는 잘못된 메시지로 전파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같은 보도국장의 해명에도 기자협회는 6일 운영위원회를 다시 열어 내용 수정을 지시한 경위와 기사 적정성에 대한 판단 등의 해명을 내부 게시판을 통해 재차 요구했다.

이에 방 국장은 기자협회 측에 해명할 수 있는 간담회를 열자고 요청했고, 협회가 이를 받아들여 9일 오후 보도국장과 기자협회 운영위원들의 간담회에서 국장의 답변을 듣고 협회의 대응과 입장을 정하기로 했다.

한편 삼성그룹 측은 해당 보도 내용과 리포트가 수정된 부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해당 사항은 우리가 답변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방송 담당자는 아직 관련 리포트를 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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