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원내대표가 결국 사퇴했다. 그러나 ‘법과 원칙, 정의’를 언급하며 자신을 둘러싼 대통령과 청와대의 찍어내기에 대해 ‘한 방’ 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와 친박계의 사퇴 압박에 버티던 유승민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사퇴 권고’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유 원내대표는 의원총회가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권고안을 박수로 추인한 이후인 1시 25분 경 국회 정론관에서 “새누리당 의원총회 뜻을 받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형식은 사과였다. 유 원내대표는 “무엇보다 국민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우리 새누리당이 희망을 드리지 못하고 저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혼란으로 큰 실망을 드린 점, 누구보다 나의 책임이 크다.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 원내대표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자신의 거취를 둘러싼 압박에 대한 반박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 원내대표는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내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라며 “나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7일 국회에서 자신의 거취 논의를 위해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에서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공화국’ ‘헌법 1조’를 언급한 것은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의 찍어내기와 이에 동조한 친박계 의원들의 압박에 물러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총의가 담긴 의원총회에서 사퇴를 권고하기로 한 이후에 비로소 사퇴를 결정한  유승민 원내대표의 행보와도 일치한다. 

유 원내대표는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고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지난 2주간 저의 미련한 고집이 법과 원칙, 정의를 구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저는 그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다”며 그간 사퇴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했다. 자신에 대한 비정상적인 사퇴 압박이 법과 원칙, 정의에 반하는 것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내 ‘개혁보수’의 상징과도 같다. 따라서 유 원내대표를 둘러싼 이번 갈등을 새누리당의 변화를 주장하는 ‘개혁보수’ 세력에 대한 박 대통령과 친박의 견제로 보는 해석도 있었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2월 당의 변화와 혁신 그리고 총선 승리를 약속드리고 원내대표가 되었으나 저의 부족함으로 그 약속 아직 지키지 못했다. 지난 4월 국회연설에서 고통받은 국민의 편에 서서 개혁을 하겠다, 내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던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다”며 “그러나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주장을 당내에서 계속 펼치겠다는 뜻을 피력한 셈이다. 

다음은 유 원내대표의 사퇴의 변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저는 오늘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뜻을 받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납니다.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된 나날을 살아가시는 국민 여러분께 저희 새누리당이 희망을 드리지 못하고, 저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혼란으로 큰 실망을 드린 점은 누구보다 저의 책임이 큽니다. 참으로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늘 아침 여의도에 오는 길에, 지난 16년간 매일 스스로에게 묻던 질문을 또 했습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열린 가슴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저는 정치를 해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오늘이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2주간 저의 미련한 고집이 법과 원칙, 정의를 구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저는 그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습니다.

거듭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 여러분의 용서와 이해를 구합니다.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난 2월 당의 변화와 혁신, 그리고 총선 승리를 약속드리고 원내대표가 되었으나, 저의 부족함으로 그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지난 4월 국회연설에서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 제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던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습니다. 

저와 꿈을 같이 꾸고 뜻을 같이 해주신 국민들, 당원 동지들, 그리고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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