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된 뒤 선배들에게 '기자란 이런 거야'라면서 듣는 수많은 '기자론'이 있다. 그 중에 하나.

"기자들은 나뭇잎 하나 떨어지면 '가을이 왔구나' 하고, 교수들은 나뭇잎 다 떨어지면 '가을이 갔구나' 한다."

세상의 변화에 기자들은 민감하고 교수들은 둔하다는 말이다. 동시에 기자들은 작은 일에도 호들갑을 떨며 기사를 쓰지만 교수들은 신중하게 검증한 다음에 이론을 내놓는다는 의미가 동시에 담긴 말이기도 하다. 한국의 언론인들은 세상의 변화에 민감할지언정, 자기 자신의 변화에는 둔감했다.

2009년 11월.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했다. 삼성은 갤럭시를 내놨다. 사람들은 아이폰과 갤럭시로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모바일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회사에 제안해 '모바일발전특별위원회'라는 걸 꾸렸다. 급하게 모바일용 화면을 만들고 어플리케이션도 만들었다. 만들기는 했는데 조악했다. 기사는 시간 순에 따라 업데이트가 됐고, 메인 페이지처럼 기사의 경중을 가릴 편집도 불가능했다. 당시 홈페이지 구축 및 관리는 외주를 주고 있었는데, 외주업체는 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편집국에서는 웹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될 리 없었다.

아이폰과 함께 '트위터'도 함께 들어왔다. 트위터의 전파력이 강력해지면서 언론사도 트위터에 신경을 써야 했다. 트위터 담당 기자를 정해 발행된 기사들을 트위터에 유통 시키는 역할을 맡겼다. 조금 지나니 '페이스북'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예 'SNS 편집자'를 채용해 전담케 했다. 기사면에 트위터, 페이스북 '공유'와 '좋아요' 단추도 달았다.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을 하면서도 뭔가 허전했다. 애는 쓰는데 정작 '수익'이 빠져 있었다. 코딱지만한 모바일에는 광고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고 광고 시장 자체도 크지 않았다. 사실 웹페이지 트래픽이 모바일로 분산이 되면 손해를 보는 구조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기사를 유통시키면 트래픽을 늘리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유입되는 트래픽은 대부분 모바일 트래픽이다. 즉자적인 손익계산서만 따지자면 투입되는 자원에 비해 수익이 별로라는 얘기다. '뉴미디어'라는 새로운 흐름에 열심히 따라가기는 하는데 매번 남는 게 없는 장사만 하고 있는 셈이다.

주로 진보 성향의 신문사들이 '뉴미디어'에 아등바등하고 있을 때 '조중동'은 다른 길을 걸었다. 아직 현재진행형인 사안이지만 결과만 두고 따지면 그들의 전략이 유효했다. 2000년대 초반, 종이신문기자들은 사실 인터넷 뉴스를 무시하는 경향이 컸다. 그냥 백화점 길가 주변에 차려진 구멍가게 취급을 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뉴스 시장이 포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 거대 신문사들도 포털이라는 새로운 아울렛에 입점한 가게에 지나지 않게 됐다.

그렇게 "신문은 사양산업이다"라며 신문사 기자들이 근심과 자괴감에 빠진 채 무한 경쟁에 내몰려 허덕이기 시작할 때도 방송 기자들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다. 그러다 2009년 미디어법 날치기와 함께 '종편'이 출범하니 그 때서야 방송 기자들은 '방송의 공공성'을 외치며 위기 의식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사실 '공공성'의 문제도 문제이지만 '시장의 변화'에 둔감했다. 미래에 도래할 시장과 권력이 집요하게 추진하는 큰 그림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미디어 전문가들은 종편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편이었다. 방송 광고 시장은 신문 광고 시장만큼 '폭망' 수준은 아니어도 성장세가 꺾이고 있었고, 방송 자체가 이미 '올드 미디어'인데 신문사들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방송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사실 조중동이 자기 돈 갖고 사업을 시작한 것도 아니지만) 진보 진영에서는 "10년에 걸쳐 천천히 망할 거, 한 번에 크게 망할테니 그냥 내버려 두자"라는 조롱도 있었다. 종편 출범 초기의 어설픔과 촌스러움을 생각하면 이런 전망이 어느 정도 들어 맞을 줄 알았다.

종편이 전파, 아니 전선을 타기 시작한지 5년 남짓 지난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여전히 죽 쑤고 있는 채널도 있지만 JTBC는 일부 인기 프로그램의 광고 단가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싸다는 MBC의 무한도전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MBN은 종이신문과의 '시너지'를 극대화 하면서 매출을 올리고 있다. '뉴미디어' 전도사들은 "요즘 시대에 누가 TV보느냐"고 했지만 종일 종편 틀어 놓는 가정이 늘고 있다. 조중동은 자기 독자층, 그러니까 '요즘 시대에도 TV 보는 세대'라는 시장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신문사의 주요 인력들을 방송에 재배치했고, 지상파에서 펄펄 날던 '장이'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했다. 매해 종편의 시청률과 광고 매출은 늘어나고 있고, 정권에 의해 힘이 쏙 빠진 지상파의 시청률과 광고 매출은 매해 줄어들고 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종편은 머지 않아 지상파를 추월해 시장의 주도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른바 '뉴미디어' 담론의 한계는 여기에 있다. 아예 판을 뒤엎을 힘이 없으면 시장을 제대로 읽기라도 해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우리나라 언론사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뉴미디어 담론과 전략의 대부분이 'made in USA'이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은 미디어 시장의 판 자체가 다르다. 구글이 지배하는 미국과 네이버-다음이 지배하는 한국은 독자들의 미디어 접근 경로가 다르다. 게다가 미국에서 <허핑턴포스트>와 <버즈피드> 등이 대박을 터뜨렸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스타트업'의 성공사례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직수입(허핑턴포스트코리아)하거나 똑같이 베낀 미디어(인사이트, 피키캐스트 등)들이 어느 정도 성과는 거두고 있다. 다만 미국 사례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스타트업 미디어들의 가이드북은 될지언정 기존 거대 신문사들의 참고 사례는 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이 언급되지만 이 역시 시장 자체가 다르다. 영어 사용 인구 6억 명의 시장을 가진 이들 언론사에게 인터넷은 시장의 비약적인 확대를 의미하지만 진보/보수 성향이 명확하고 한글 사용자 시장 확대라고 해봐야 해외 동포(북한 빼고) 정도 뿐인 우니라나 미디어 환경에서 시장 확장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인터넷-미디어 환경이 처음부터 지리멸렬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트위터, 페이스북의 원조는 한국 아닌가. '아이러브스쿨', '싸이월드'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한국이 먼저 시작했다. 허핑턴포스트에 앞서 한국에는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 있었다. 요즘은 페이스북이 뉴스를 사들여 페이스북 안에서 공급하겠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일이 아니다. 혁신의 첫걸음은 주변의 상황의 변화,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자산 등 자신의 상황부터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처한 시장과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 하고 남의 사례를 공부하고 따라가는 데 급급하다.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하니 시장을 주도하지 못한 채 고작 눈에 보이는 트래픽 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 언론들은 떨어지는 낙옆 보면서 "아, 가을이 가고 있는데 어쩌지"하면서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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