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맞서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를 잘 보여준 대표적 케이스가 채동욱 전검찰총장이다. 혼외자식 문제로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는 과정은 충격적이었다. 법정신에 투철하겠다던 검찰총장이 원세훈 전국정원장 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자 그를 손보기로 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조선일보의 ‘혼외자식’ 특종은 수사기관이 아니면 입수할 수 없는 내밀한 사적정보를 담고 있어 권력기관과의 유착 의혹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결과는 채 전총장이 비참할 정도로 버림받아 한국사회에서는 다시 얼굴을 들기 힘들 정도의 반신불수가 됐다는 점이다.

제2의 채동욱 길을 재촉하는 친박의원들의 ‘유승민 원내대표 죽이기’압박은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마저 돌아서서 친박의원들과 함께 유 원내대표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김 대표는 7월7일 긴급 최고위원회의 직후 브리핑을 열어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의 미래와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위한 ‘원내대표 사퇴 권고 결의안 채택’을 위한 의총을 소집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결의안 채택 방식과 관련해 “결의안 문장을 (미리) 만들어 내일 의총에서 발표를 하고 의원들 동의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결의안 제목이 기가 막힌다.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위한 원내대표 사퇴 권고 결의안’이다.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위해 원내대표를 사퇴시키겠다는 것이다. 박정권 성공과 원내대표 사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가. 원내대표를 사퇴시켜 박근혜 정권을 성공시키겠다면 아무도 반대할 사람이 없다.

박근혜 정권성공과 원내대표 사퇴라는 이해할 수 없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무슨 의원총회를 하겠다는 것인지... 지금 국회와 청와대는 상식이하의 저열한 감정대립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새누리당 투톱 체제를 이끌어오며 함께 호흡을 맞춘 동료 원내대표를 하루아침에 돌변하여 박근혜 정권 성공을 위해 이런 식으로 쫒아내는 것이 합당한가?

   
▲ 채동욱 전 검찰총장(왼쪽)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오른쪽). ⓒ 연합뉴스
 

문제의 시작은 박 대통령이 6월25일 국무회의에서 원내대표를 정조준하여 ‘배신’운운하며 부적절한 방식으로 정제되지않은 감정을 표출한데서 비롯됐다. 대통령과 당원내대표가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그런 차이를 국무회의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감정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것은 소통에 실패하고 있다는 단적인 예다.

여야 합의를 거친 법안이지만 대통령이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거부권’을 행사하면 된 것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법안은 폐기수순으로 갔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않아 공적인 법안 논의에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며 원내총무 찍어내기식 발언은 과도한 것이다.

언론은 박대통령 발언의 타당성과 논리성, 그 형식의 적절성을 따지는대신 유 원내대표가 언제 사퇴하느냐에 대부분 초점을 맞췄다. 언제부터 국민이 그렇게 당의 원내대표 사퇴여부에 관심을 가졌던가. 모든 뉴스가 유 원내대표 사퇴여부에 초점을 맞췄다. 시한도 7월6일까지다 혹은 하루 더 연기했다는 식으로 사퇴에만 집중했다. 그게 왜 무슨 이유로 사퇴해야 하는지 여부는 뒷전이다.

여야 합의로 만든 법안이 거부권으로 폐기된다고 해서 원내대표가 물러나야 하는가. 대통령 말한마디면 의원들이 선출한 원내대표도 바로 그만둬야 하는가. 책임을 묻는다면 당대표가 더 큰 책임이 있다. 또한 함께 서명한 의원들도 원내대표에게만 돌을 던질 수 없는 입장이다.

더구나 이 사건직후 의원들은 의총을 통해 이미 유 원내대표에 대해 재신임 사인을 보냈다. 그를 불신임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왜 오직 유 원내대표가 그만 둬야 하는가. 그를 이런식으로 그만두게 하면 과연 박근혜 정권은 성공할까.

임기가 보장된 멀쩡한 검찰총장을 언론 플레이로 패대기를 치더니 이제 집권당 원내대표를 거친 방식으로 인격살인하고 있다. 원내대표를 물어뜯고 있는 ‘친박의원’들의 충성이 과연 내년 공천권을 보장하는지는 두고봐야 한다.

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만든 ‘새누리당의 미래와 박근혜 정권 성공을 위한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권고 결의안’은 코메디에 불과하다. 그런 식으로 유 원내대표를 사퇴시키는 것은 박정권의 성공이 아닌 실패를 의미한다. 당정청 소통의 실패로 정당정치를 후퇴시킨 사례로 회자될 것이다. 대통령의 감성정치가 곳곳에 상처와 혈흔을 남기고 있다.

국민은 세월호에 충격받고 메르스에 놀라고 있는데, 대통령도 언론도 당원내대표 사퇴하나 안하나, 언제하나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가 그만 두면 누가 무엇 때문에 ‘만세’를 부를 것인가. 그것이 국민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박정권의 성공과 무슨 관계가 있나. 답답한 대한민국의 현실은 오늘도 계속 되고 있지만 내일의 희망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