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지난달 24일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의 망명설’을 보도한 후 안팎의 비난에 시달리다 결국 반론을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KBS 보도국 간부들이 이승만기념사업회 측을 직접 만나 해명했다. 친일 논란이 인 이인호 KBS 이사장은 관련 보도 경위를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KBS는 지난 3일 <뉴스9> 12번째 리포트로 <이승만 기념사업회, ‘일 망명 정부 요청설’ 부인>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김민지 앵커는 “지난달 24일 KBS가 보도한 이승만 정부의 일본 망명 정부 요청설과 관련해 이승만 대통령 기념사업회 측은 정부 공식 기록이 아니라며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며 “KBS는 앞서 충분한 반론 기회를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KBS는 리포트에서 전쟁 발발 이틀만이라고 할 근거인 6월 27일이라는 날짜는 문서 내용에 없으며 이승만 정부가 난민 수용을 요청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승만기념사업회 측 반박을 그대로 내보냈다. 

   
▲ KBS <뉴스9>는 지난 3일 이승만 전 대통령 측의 반론을 담은 <이승만 기념사업회, ‘일 망명 정부 요청설’ 부인> 리포트에서 자사 단독 리포트에 유감을 표명했다.
 

 

앞서 KBS는 지난달 24일 방송된 <뉴스9>의 <이승만 정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 망명 타진> 리포트를 보도했다. 당시 리포트는 한국전쟁 발발 이틀 후인 1950년 6월 27일 이승만 정부가 일본 정부에 6만명 망명 의사를 타진했고 일본이 한국인 피난 캠프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KBS는 그 근거로 일본 야마구치현의 문서를 공개했다. KBS는 반론 보도를 한 지난 3일 이 기사를 홈페이지 뉴스 보도 목록에서 삭제했다. 

단독 보도와 반론 보도 사이, KBS 내에 무슨 일이? 
KBS는 지난달 24일 단독 보도 후 KBS 안팎의 각종 보수단체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보수 성향의 KBS공영노동조합은 25일 성명을 내고 “KBS가 국가정체성을 부인하고 국기를 흔드는 세력으로 등장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일자 칼럼 ‘태평로’에서 KBS 기사가 단독이 아니고 공개한 문서에 대한 검증도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KBS 기사에 대해 사과 및 정정을 요청하는 보수 우익 단체들의 기자회견과 1인 시위 등도 이어졌다. 

이승만기념사업회 측도 이에 대한 성명을 냈다. KBS 보도본부 관계자들은 이승만기념사업회 측의 이인수 상임이사와 박진 회장 등 관계자를 만나 해당 보도에 대해 해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 KBS는 지난달 24일 보도한 <이승만 정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 망명 타진> 리포트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며느리 조혜자 여사를 비롯한 복수의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KBS 보도본부 관계자 3명이 기념사업회 이사진을 만났다”며 “(KBS 해명과 반론 보도에) 이인수 박사가 아주 만족한 것은 아니지만 (KBS 보도가)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인호 이사장, 보도 관련 이사회 소집
이인호 KBS 이사장은 이 사안으로 이사회를 소집하고 나서 논란이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이인호 이사장은 8일 임시 이사회를 소집하고 ‘이승만 보도’ 관련한 안건을 상정해 보도 경위 보고 등을 받겠다고 나섰다. 

소수 야당 이사들이 반대 뜻을 피력하고 있지만 이인호 이사장은 이사회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위원장 권오현, KBS본부)는 6일 ‘누구를 위한 굴욕적 반론보도인가’라는 성명을 통해 “KBS 사측은 언론중재나 소송 등의 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수단체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내용의 반론 보도를 들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 이인호 KBS 이사장.
ⓒ노컷뉴스
 

 

KBS본부는 해당 보도의 일부 오류를 인정하더라도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과도한 사과였다는 입장이다. KBS본부는 “통상적인 반론 보도였다면 27일 날짜 표기 오류에 대한 수정과 우리 보도의 한계에 대한 기념사업회 측 입장을 단신으로 전하는 정도면 됐을 내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유감 표명과 이승만 전 대통령 미화 내용까지 담아 당초 보도와 같은 분량과 형식의 리포트로 반론보도를 내주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굴욕적 반론 보도가 나갔다”고 지적했다. 

KBS본부는 이런 배경에 대해 “조대현 사장이 연임을 염두에 두고 뉴라이트 학자 출신인 이인호 이사장과 보수진영에 굴복한 결과”라며 “조대현 사장과 강선규 보도본부장을 비롯한 사측이 공영방송을 수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능력조차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KBS본부는 또 이사회의 안건 상정 움직임과 관련해 “방송법에 보장된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며 “이인호 이사장의 부당한 방송 개입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인호 이사장의 이사회 소집은 방송사의 편성권, 보도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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