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기자는 MBC로 옮기더니 언론자유의 투사가 돼 있더라고.” 언젠가 조선일보 기자에게 들은 말이다. 언론사는 조직문화가 중요하다. 노동조합이 없거나 어용노조인 언론사에 가면 권력관계에 순응하며 불만을 삭히지만, 노동조합이 강한 언론사에 가면 그만큼 언론노동자의 목소리를 낸다. 보수일간지 출신 기자들이 지상파로 이직한 뒤 ‘변신’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는 이유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노동조합이 건강했던 한 방송사에서 종합편성채널로 이직한 기자가 있다. 이 기자는 친노조 성향이 아니었지만 이직 후 노동조합을 그리워했다. 격주로 주 6일 근무를 하고, 출근시간은 있지만 퇴근시간은 없는 노동환경에 불만이 많지만 표출할 공간이 없다. 개인적으로 표출했다가는 회사에 찍힌다. 그는 “지지 않는 하나의 태양(사주)아래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종합편성채널 기자는 보도에 불만이 많다. “기사 깜도 안 되는 자극적인 아이템만 올라온다. 오로지 시청률만 생각하는 간부들 때문이다. 아무리 제대로 된 아이템을 발제해도 모두 킬이다. 빨리 이직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 종합편성채널은 특히 북한보도에 문제가 많다. 검증되지 않은 탈북자 주장을 날 것 그대로 전하거나, 뉴스가치 없는 가십성 이슈로 장년층을 사로잡는 식이다.

   
▲ TV조선의 보도화면 갈무리. 종편의 북한 관련 보도는 내부 견제 없이 보도되며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 탈북녀를 투입한 TV조선 <남남북녀>, KBS <미녀들의 수다>에 탈북녀를 투입한 채널A <이제 만나러갑니다>, tvN <삼시세끼>에 탈북녀를 투입한 채널A <잘 살아보세>와 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최근엔 탈북자와 스타의 2박3일 동거를 담은 MBN <남심북심 한솥밥>이 등장했다. 탈북자를 이용한 프로그램편성에도 불만은 있지만 공론화 할 순 없다.

종편채널의 한 기자는 “말도 안 되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톤 다운’밖에 없다”고 했다.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이다. MBN의 경우 보도채널시절 세워진 전국언론노조 지부가 있지만 사실상 와해상태다. 채널A와 TV조선에는 노동조합이 없다. JTBC 기자들은 중앙일보 노동조합 소속으로, 방송사 자체적인 노조는 따로 없다. 

만약 종합편성채널에 노동조합이 있다면 어떨까. 공정보도위원회가 열리고, 가십성 북한 보도를 공개 비판할 수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품위유지위반 또는 공정성 위반으로 법정 제재를 받으면 이를 근거로 경영진을 비판하는 성명을 낼 수도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시사·보도편성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이 나오면 이를 근거로 사측의 편성을 비판할 수도 있다. 

   
▲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판결후 헌법재판소 앞에서 방송준비중인 TV조선 종편기자의 모습. ⓒ이치열 기자
 

언론자유의 적은 누구인가. 누구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주, 누구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꼽을지 모르겠다. 또는 언론인으로서 의식이 결여된 기자들을 탓할 수도 있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언론자유의 적은 내부에 있다. ‘자발적 복종’ 말고는 다른 길이 없는 뉴스룸의 조직문화다. 뉴스룸의 조직문화를 바꿔낼 수 있는 주체는 내부의 노동자들밖에 없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유일한 무기다. 조중동 기자들이 오늘날 타사에 비해 높은 임금과 복지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사내 노동조합의 역할 때문이다. 종편채널 기자들은 지나친 보도편성비율로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매일매일 견뎌내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란 장치가 제 역할을 못하며 기자들도 어려움에 처하고, 보도는 보도대로 공론장을 왜곡하며 사회적 폐해를 낳고 있다.

종편채널의 보도 및 편성이 달라지기 위해선 내부에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밖에서 시민단체들이 아무리 외쳐봤자 달라지지 않는다. 종편의 재허가 취소는 정권이 바뀌어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조선일보 기자의 말을 복기해봐야 한다. MBC로 회사를 옮긴 기자가 언론자유 투사가 되었다는, 그 말을 기억해야 한다.

   
▲ 2013년 12월 27일 철도노조파업 당시 민주노총 취재에 나선 종편 채널A 취재진의 모습. ⓒ이치열 기자
 

언론노동자들은 정치적 관점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노동조건에 대해선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저널리즘에 대한 문제의식에 있어서도 교집합이 있다. 조중동 기자들 중에는 한겨레에 지원했다 떨어진 기자도 있고, 오마이뉴스 인턴 출신 기자도 있고 노사모 출신 기자도 있다. 당연하게도 학생운동권 출신 기자도 있다. 사주를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는 기자들은 훨씬 많다. 다만 비판의식을 표출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타사에 비해 높은 임금으로 만족하거나, 기자라는 지위를 이용한 예컨대 출입처에서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룸살롱 접대를 받으며 권력을 만끽하는 또 다른 ‘갑질’로 조직 내에서의 불만을 해소한다. 이 경험이 반복되다보면 비판의식은 사라진다.

조중동과 종합편성채널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민주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시급한 과제는 이들 보수언론에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13~2014년 언론노조위원장을 역임한 강성남 위원장은 조중동 기자들의 언론노조 가입을 환영한다고 했으나 조직화가 이뤄지진 않았다. 언론노조는 이미 조중동과 한 배를 탔던 1990년대 언론노동조합연맹의 경험도 있다. 

보수세력 및 자본권력과 한 통속이란 이유로 조중동 종편을 배제할 거라면, 오늘날 KBS·MBC·SBS의 논조가 조중동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 사주가 있기 때문에 조직화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미 SBS에서 건실한 노동조합이 탄생한 전례가 있다. 더욱이 JTBC의 최근 보도는 종편채널에서 건강한 노동조합이 탄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채널A에선 지난 5월 세월호 폭력집회 사진 조작 논란이 불거졌을 때 기자들이 성명을 내고 자사 보도와 노동환경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노동조합 조직은 불가능하지 않다. 보수성향의 신문사와 종편채널 노동자까지 포용해야 언론노조도 지금보다 강력한 조직을 운영할 수 있고, 한국 언론의 고질적 문제인 이념편향성과 진영논리도 견제해 나갈 수 있다. 단지 정권교체로 조중동 종편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순진한 발상’부터 우선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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