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자는 그의 오관(五官)에 의하여 그가 전부이고 타인은 무(無)라고 알고 있으며 당연히 나태하고 무지하고 향락적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는 국정을 내팽개친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전제정체의 본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제정체에서 국가는 주권을 독점한 한 개인의 사유물이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오늘의 정치현실은 전제정체와 꼭 닮았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이 분리되어 민주정체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형식에 불과하다. 영혼이 사라진 입법, 사법, 행정은 각각 홀로 존재할 뿐 상호 역할과 기능을 상실했다. 그것은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주장하는 삼권분립의 본질이 아니다. 삼권이 서로를 엄격하게 감시하고 조화롭게 견제함으로써 균형을 이루기는커녕 대통령 한 사람의 오관에만 의존하며 대통령 한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다. 오로지 대통령이 전부이며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최근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국회와 여당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를 보면, 국회와 정당은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기구가 아니라 대통령 개인의 사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모든 권력이 일인의 독재자에게 집중된 전제정체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대통령 박근혜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법원이 아닌 국회가 시행령 등의 법률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게 했다”며 국회가 삼권분립의 원칙을 위배했다고 비난했다. 독선과 자가당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의 말 속에는 정부 입법이 애초의 국회 입법 취지와 다를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대안적 방안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만의 하나, 정부 입장에서 국회 입법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여겨지면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물어야 할 터인데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에 위압적으로 국회를 내리눌렀고 거부권을 행사했다.

박근혜는 “국회는 정부정책이 잘 돼 국민들이 잘 살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한다”며 철없는 학생 꾸짖듯 국회를 나무랐다. 국민이 잘 잘 수 있게 해야 한다는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박근혜의 그 말 속에는, 정부정책은 ‘절대선’이니 국회는 군소리 말고 무조건 따르라는 엄청난 독선이 깔려 있다. 이는 국회더러 정부의 홍위병 노릇이나 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전부이고 그 나머지는 무(無)인 것이다. 정부가 하는 일이 다 옳다면 국회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모두 그렇게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국회가 필요한 것이요, 정부정책이 잘 될 수 있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국회의 존재 이유이고 그것이 권력분립의 본질적 이유이며 그것이 국민을 잘 살 수 있게 하는 길이 아니던가.

자신의 뜻에 반대한다고 해서 자신이 소속된 당의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낙인찍어 끌어내리려는 박근혜의 공작은 정당 사유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당내에서 당의 특별한 직함도 당직도 없는 대통령이 당의 최고위원들을 움직여 당내 의원들의 총의를 묵살하고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겁박하는 작태는 자신이 당의 모든 것이요 여타의 당직자와 당원들은 자신에 종속된 부속품에 지나지 않음을 선포한 것이다. 다수 의석의 집권여당 새누리당은 대한민국의 공당이 아니라 박근혜 개인의 것임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여당 의원들이 자신들 스스로 정한 당론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고 있는 오늘의 정치 세태는 목불인견의 모습이다. 과거 군부독재에서도 정치인들이 이처럼 부끄러움도 모르고 공개적으로 스스로를 부정하는 자기기만의 상황은 보지 못했다. 그러한 후안무치의 정치가 정당의 사유화를 낳고 국가의 사유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 사유화의 모습은 검찰의 행태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일 검찰은 고 성완종 회장이 폭로한 불법선거자금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80여일이 넘는 수사였지만 결과는 ‘태산명동에 서일필’도 부끄러운 허탈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대선자금과 관련된 6명의 친박 정치인들은 불기소 처분하고, 대선자금과 무관한 2명의 비박 정치인들은 불구속 기소했다. 이는 누가 보아도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지만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그 또한 박근혜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충실하게 따른 것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가 무엇을 감추고자함이고, 거기에 숨은 최대의 수혜자가 누구인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이로써 대한민국 검찰은 박근혜 개인의 것이며 그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물론 검찰의 사유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이미 박근혜는 임기 초부터 자신의 부정선거 연루 의혹을 감추기 위해 채동욱 검찰총장을 끌어내렸고 정치적 악재가 터질 때마다 간첩 조작, 공안정국 조성 등 마치 하인 부리듯 검찰을 부려왔고 검찰은 충성을 다했다.

국가의 사유화에서 방송의 사유화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방송의 사유화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 등 오랜 독재정권의 역사에서 두루두루 경험한 만큼 비교적 용이하게 이루어졌다. 자리를 탐하는 언론인들 몇몇을 방송에 투하하면 그들은 알아서 정권의 나팔수 역할에 전력 질주한다. 인사를 통해 반대자들을 축출하고 친위대를 구성해 정권홍보에 매진한다. 박근혜 정권에서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등에서 불거진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방송은 온갖 유치찬란한 꼼수를 다 펼쳤다. 언론인으로서의 비판적 지성과 양심은 사치스런 장식일 뿐, 오로지 권력의 정점에 있는 한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유일한 그들의 관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의 전제정체와 권력의 사유화는 물론 박근혜의 독선과 무지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한 독선과 무지를 쉽게 용인하고 그것이 창궐하게끔 하는 것은 후진적 정치풍토, 비뚤어진 충성심, 타락한 언론, 황금만능, 출세지상주의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깊고 넓게 퍼져있는 오염된 정신과 문화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법치가 세워지고 국정운영이 제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통재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