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만큼 먹을거리에 연관되어 논란의 중심에 선 대통령도 드물 듯 싶다. 최근에 페북을 통해 한 치킨 업체의 모델 아닌 모델로 등장해서 난데없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업체는 억울한 입장을 표명하다가 오히려 더 쏟아지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물론 치킨 광고의 메시지 자체보다는 사용된 이미지가 문제였다. 치킨 광고의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가 주로 일베 사이트에서 애용 되는 사진이었기 때문에 진의를 의심받았다. 익히 알려져있듯이 노무현 대통령이 이렇게 식품에 관련되어 수난을 당한 사례가 처음이 아니다. 2013년, 대구 소재의 한 유통점에 진열된 스마트 TV에 노무현 대통령과 치킨을 합성한 사진이 등장했다. 이때도 일베와 관련이 있었다. 이는 '일베충을 튀겨달라'는 문장이 들어간 치킨 업체의 트위터 메시지를 보고, 일베회원이 보복적인 차원에서 이미지를 합성해 사용했던 사례였다. 그해 천안에서는 호두과자에 노무현 대통령의 합성 사진이 등장했다. 아예 호두과자 업체가 노무현 대통령과 코알라를 합성한 사진을 포장재로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이 업체는 문제의 포장지를 격하게 비판하는 네티즌들을 무더기로 고소하기에 이르러 더 큰 사회적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희화화를 통한 디지털 공간의 놀잇감쯤으로 등장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 근원은 일베 사이트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진의와 관계없이 억울한 이들 입장에서는 알게 모르게 노무현 대통령이 먹을거리에 유희를 위해 등장하는 일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린 듯 싶다. 하지만, 정책적인 사란이나 공적 담론을 위한 활용이 아니라 개인을 희화화하거나 모욕을 하기 위한 이미지와 용어의 사용은 사회통념으로나 패러디정신으로도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베는 아이돌 가수나 심지어 일반 자영업자들도 일베 용어나 이미지인지 그 여부를 사전에 점검해야할 만큼 인터넷 환경을 오염시켰다. 이러한 면은 정치 사회적인 환경과도 맞물려 있지 않나 짐작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음식을 노무현 대통령과 연결지어재미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무의식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 지난 1일 네네치킨 본사 페이스북 페이지와 경기서부지사 페이지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커다란 치킨을 안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우선 음식이 유희 그리고 재미의 대상이 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싼 것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온통 음식에 빠져 있다. 특히 미디어를 보면 온통 먹방에 이제 쿡방의 범람이라도 해도 전혀 틀리지 않아 보인다. 요리는 예능화 되고 요리사는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외식이나 먹방, 쿡방이든 음식 컨텐츠는 범람 수준이다.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죄악이라는데 이제는 그것을 범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서 현상적으로 분석은 많이 나왔다. 우선 일상성과 실용적 측면이 꼽힌다. 일단 1인 가구의 증가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집밥의 재발견으로 이어졌고, 요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할 수 있는 적극적인 포맷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요리에 대한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있다는 것. 또한 남녀 간의 성별 분업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현상이라고 분석되기도 한다. 즉, 남성들도 이제는 적극 요리에 나서야할 만큼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쿡방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약 때문인지 실제로 남성들을 위한 각종 요리 용품판매가 증가하고 관련 프로그램들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사람들은 요리를 직접 하기 위해 이런 요리 열풍에 참여하고 있는 것일까. 요리가 주로 예능의 대상, 그러니까 유희의 대상이 되는 것은 현실도피의 측면이 더 강하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고 있으면 대한민국은 온통 하루중일 1주일 한 달 내내 1년 365일 오로지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 혈안이 된 사회다. 디지털이나 종이 매체는 물론 종편과 지상파, 케이블 방송을 막론하고 온통 먹는 이야기 밖에 없어보인다. 페북이나 트위터, 블로그, 카톡 같은 SNS에도 먹을 것을 담은 이미지 기호들이 넘쳐난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사회 현실에 대한 담론보다는 오늘 당장 맛볼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을 찾아 부유한다. 이것이 노마드 정신인듯 싶다. 하지만 역시 파랑새는 역시 집에 있었던 것일까. 이제 부유하다 지친 사람들이 주목을 한 것은 바로 일상의 친숙한 메뉴를 얼마나 다채롭게 변화시키는가이다. 바로 그 역할을 할 이들이 쉐프, 요리사들이었다. 그들만이 아니라 의사들도 이제 먹을 거리에 관해서는 방송 엔터테이너가 다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쇼닥터들이다. 쇼닥터들을 전면적으로 등장시켜 먹더라도 몸에 좋은 것을 먹어야 한다는 담론을 지속적으로 확장 강화하고 있는 곳은 종편이다. 건강 보조 식품은 물론 산과 들에서 나는 산야초의 가격까지 좌우하고 있는 종편이다. 심지어 백수오 사태는 이런 쇼닥터들에게서 비롯되었다.

음식과 쿡방 열풍에는 두 가지 대중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우선 통제감과 소유욕의 충족심리이다 본래 먹는다는 것은 소유의 의미를 갖는다. 많은 욕망 충족 가운데 스스로 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음식을 먹는 것이다. 식인종 중에 전쟁에서 이긴 부족을 먹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복 소유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가족이 사망했을 때 이뤄지는 식인 행위도 자신의 몸에 하나로 만들기 위한 행동이다. 스트레스 받을 때 무엇인가 먹는 것도 이에 관련한다. 일이 안 풀리고 해결이 안될 때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단지 당을 흡수해서 기분전환이 되도록 하는 점도 있지만, 심리적 성취감과도 관련이 있다. 뿌듯한 포만감도 이에 속한다. 일종의 음식을 통한 대리만족 기제가 작동한다. 요컨대, 음식을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바로 자기 성취감의 소유욕에서 비롯한다. 많은 미디어들은 이런 자기 성취적인 소유욕을 무감각하게 확장 강화시킨다. 특히 미디어 음식을 보는 관점의 기본 방향은 오로지 맛있는 것을 내입에 넣으면 족할 뿐이다. 다른 이들과의 관계성보다는 혼자 스스로의 공간에서 즐기면 된다.

   
▲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백종원 편. ⓒ MBC 홈페이지
 

다음으로 현실주의의 소비주의가 쾌락주의와 결합한 산물이 바로 외식 열풍 그리고 먹방이나 쿡방 열풍이라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이를 나타내는 것이 카르페디엠이라는 금언이 상품소비주의와 맞물린 예이다. 현실상품소비주의는 미래보다는 현실을 즐기고 빚을 내서라도 즐겁고 재미있는 것, 그리고 맛있는 것을 누리라고 말한다. 이를 기업의 마케팅에서는 무겁거나 심각한 것은 배제하고 가볍고 쿨하게 사는 것이 멋진 인생이라고 말한다. 작지만 아무리 비싸도 먹고 마는 작은 사치는 현실 쾌락주의 전형적인 예이다. 쿡방 열풍은 이런 가벼워진 소비 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일단 21세기 만큼 자신이 가볍고 얕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시대도 없었다. '지대넓얕'의 인기가 이를 말해준다. 조리 식품이나 요리는 간편하고 쉽고 맛있으면 그만이다. 이를 부각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크게 끌고 있는 이가 백종원이다. 그는 설탕을 넣을 때는 푹푹 많이 넣고, 화학조미료도 당당히 강조한다.

이렇게 음식 자체를 넘어 쉐프 자체가 주목을 받고 그들이 내미는 음식 레시피가 화제가 되는데, 과연 사람들은 요리하기에 정말 관심이 있을까. 마이클 폴란은 그의 책 '요리를 욕망하다'에서 미국인들이 음식 프로그램을 많이 보지만 정작 요리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미디어 컨텐츠로 소비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미 요리를 하기도 전에 충분히 요리에 피로해진다고 말한다. 이는 미디어 속 쿡방이 이미지로 욕망되고 소비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먹방이나 쿡방 그것은 현실도피적인 성격이 강하다. 미국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며 더욱 심각하다. 과거 군사 정권에서는 영화, 섹스, 스포츠에 대중적 시선이 모아졌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은 요리와 음식에 빠졌다. 정치 사회 담론과 참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많은 미디어들은 이런 측면 보다 음식으로 손쉽게 매체 주목도를 올리면서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 특히 미디어는 당연히 맛있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적극 소비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진리라고 보여준다. 다른 가치들이 존재하며 무분별한 음식 소유가 낳는 문제들은 배제해버린다. 불투명한 미래 전망과 치열한 경쟁, 사회경제적 모순의 숲에서 맛있는 요리와 음식을 대하고 있으면, 그것들이 잊혀질 듯 싶다. 물론 이는 중독이다. 공론장에서는 이런 음식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우선이고, 다른 실제 중요하지만 진지한 화두는 배제된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예컨대, 페북에서 가장 많이 좋아요를 누르는 이미지는 진중한 담론 보다는 음식 사진이다. 그것도 자신이 현재 먹고 있는 음식이다. 음식에 대해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센스 있고 의식있는 사람의  덕목이 되어 버렸다.

방송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요리 관련 교육기관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를 높였지만 그렇다고 일반 쉐프들의 열악한 처우와 조건이 나아질리 없다. 더구나 비예능인과 일반인의 예능인화는 언제나 아이템에 따라 돌고도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속에 있다. 그들의 현실 모순은 그대로 둔채 곧 다른 대상을 찾아 이동할 뿐이다. 그들은 쉐프들은 조만간 결국 요리의 공간으로 돌아갈수 밖에 없는 데 말이다. 화려해 보이는 그들의 현실도 물론이며 요리를 통해 현실을 탈출하려는 이들도 마찬가지 구조 속에 있다. 요리를 할 시간은 늘어날 수 없는 경제 구조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구조는 개인적인 의지와 분투만으로 확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은 쿡방이 화려하게 붐을 일으켜도 이런 사회경제적인 모순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요리하는 남자는 허구적이며, 갈등의 요인이 가능성을 이미 배태하고 있다. 예컨대 차줌마, 즉 차승원은 연예인이었다. 어디 먹방을 즐겨보던 이들이 미디어에 나온 곳을 얼마나 쫓아다녔을까.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는 대부분 가기 먼 곳에 있다. 쿡방이 그려내는 세상은 ‘언제인가 읽을 거야’ 라면서 잔뜩 쟁여두기만 하는 책 호사주의가의 서재와 닮았다. 결코 그는 책을 읽지 않듯이 쿡방의 요리들도 사람들의 삶 속에서 안착하지 못할 것이다. 먹방 혹은 쿡방이든 일상 삶이 아니라 미디어에서 시작하고, 계속 지배하고 있는 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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