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3일 청와대 소관 상임위인 국회 운영위 전체 회의에 출석했다. 청와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운영위원장)와 마주해 관심을 모았다. 회의가 끝난 후 두 사람이 7분간 독대를 했다고 한다.

회의석상에서는 야당 의원들의 비판이 매서웠다. 강동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비서실장이 청와대 3인방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 대통령과 독대도 못하고 있다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이 실장은 이를 부인하며 “(대통령과) 언제든 독대할 수 있고 무슨 보고든 드릴 수 있다”며 “아직까지 3인방이란 말이 나오는데 저로서는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정윤회 문건 보도를 통해 전면에 등장했던 이재만·안봉근·정호성 비서관 등 3인방이 이날 다시 입길에 오르내린 것이다.

   
▲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
 

일부 언론은 넉 달여 전 이 실장이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박근혜 정권의 ‘불통’을 ‘소통’으로 바꿔줄 인사라고 높게 평가했다. 조선, 중앙, 동아가 그들이다. 이들 언론은 4일 이 실장의 역할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가 당‧청 관계 회복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힘을 실어주는 뉘앙스가 짙다. 

   
▲ 조선일보 7월 4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사설 <이병기 실장 자리 던질 각오로 黨‧靑 회복 역할해야>를 통해 “당·청 간 문제는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과 비서실장 간에 정확한 의사소통이 되는 것이냐는 의문도 제기될 수밖에 없다”며 “이날 야당이 이 실장에게 ‘대통령 독대는 하느냐’ ‘왕따 아니냐’고 물은 것은 최근 국회와 관가 등에 퍼져 있는 얘기를 옮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은 “이 실장이 넉 달여 전 국정원장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 이 정권의 소통 부족 문제를 해결해줄 적임자라고 평가받았다”면서도 “그런 기대는 퇴색한 느낌이다. 이 실장은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당·청 관계 회복과 국정 안정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기 바란다”고 했다. 

   
▲ 중앙일보 4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사설 <이병기 실장이 꽉 막힌 당‧청 물꼬 트길>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닫혀버린 고위급 당정 채널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다”며 “평소 대화와 화합을 중시해 온 이병기 비서실장이 중재역에 적임이란 게 새누리당 안팎의 평가”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이 실장은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참모”라며 “대통령의 생각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위치인 만큼 새누리당의 입장과 당사자들의 생각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당·청 간 대화가 단절된 지금 이 실장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청와대 비서실장다운 비서실장을 보고 싶다”고 소망했다.

   
▲ 동아일보 4일자 사설.
 

동아일보도 사설 <“대통령 독대” 장담한 이병기 실장, 당청대화 진언하라>를 통해 “국회에서 ‘대통령과 언제든 독대가 가능하다’ ‘대통령에게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한다’고 장담한 이 실장이 꽉 막힌 당청 관계를 풀지 못한다면 누가 할 수 있을지 답답하다”며 “오죽하면 박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여론조사 지지율뿐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라고 한탄했다. 

동아는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임 의사를 거두지 않는 상황에서 유 원내대표가 계속 버티고, 박 대통령과 친박(친박근혜) 세력이 유 원내대표를 거부하는 일이 계속될 경우 양측 모두 패배하는 파국이 닥칠 가능성이 있다”면서 “국정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대통령과 여당이 서로 완승을 노리고 자존심 대결을 펴는 것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의 신의를 저버린 정치’”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실장은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의 모양새 있는 일보 후퇴를 진언해 국정 정상화에 힘을 보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수언론이 한목소리로 이 실장의 ‘역할론’을 강조했다는 점은, 그가 청와대 인사 가운데 당‧청의 엉킨 실타래를 풀 적임자라는 것을 확인하게끔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청와대 안에서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 실장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칼럼이 있다. 이태희 한겨레 정치부 정치팀장의 4일자 칼럼이다.

이 팀장은 “대통령이 면담보고 대신 서면보고를 선호하고, 본관 집무실 대신 관저에서 업무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며 “관저는 대통령 혼자 사는 집으로, 제2부속실 직원들만 오가는 곳이다. 이렇게 되면, 본관에서 근무하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조차도 수시로 대통령을 면담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 한겨레 토요판 4일자 2면.
 

그는 “이병기 실장과 가까운 인사로부터 ‘성완종 리스트 초기에 브이아이피(VIP·대통령)에게 성완종과의 관계를 모두 보고드려서 오해를 받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이 실장과 대통령의 관계가 편하게 만나는 사이는 아닌 것 같다는 분위기를 전해 들은 적도 있다”며 “올해 초의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에서 드러난 바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이른바 ‘3인방’을 제외하고는 비선 라인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목소리도 박근혜 대통령에 닿지 않는다면,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일까. 오직 3인방뿐인가. 대통령이 누구와 대면하는지,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지 국민은 궁금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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