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들이 일하기 불편하고 힘들다면 물량팀에 던져 버린다. 먹이 사슬이다. 위에서 시키면 제일 마지막에 어쩔 수없이 하는 게 물량팀이다. 제일 밑바닥 사람.” 한 조선소 노동자는 물량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도 물량팀 소속이다. 현미향 울산산업재해추방연합 사무국장은 “무한 수탈당하는 노동자”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2일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공동으로 토론회를 열고 조선소 물량팀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울산 산재연합추방운동연합과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등으로 꾸려진 ‘조선업종 물량팀 노동조건실태연구팀’(연구팀)은 지난 4월부터 물량팀 노동자 489명을 대상으로 설문·심층면접 조사를 진행했다. 물량팀 실태가 발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물량’은 작업물량의 준말이다. 조선소에서 물량팀은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빠지는 단기 공사팀을 지칭한다. 팀장을 중심으로 적게는 10여명, 많게는 30여명으로 한 팀이 꾸려지며 모두 비정규직이다. 팀장은 조선소 원청이 아니라 하청업체와 계약한다. 하청업체는 시간 내 마무리 하지 못하는 일 등을 물량팀에게 넘긴다. 다단계 하청이다. 

조선소 물량팀 규모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대부분 사업자등록증이 없고 4대보험을 보장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추측은 가능하다. 금속노조는 “D조선소의 경우 2015년 4월 기준 3만명의 하도급 노동자 중 물량이나 일당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가 1만 3000명이었다”고 밝혔다. 조선소 비정규직의 절반 가량이 물량팀이라는 이야기다. 

이를 전체 조선소 노동자에 대입시켜 본다면 그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2014년 한국조선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3년 9대 조선소의 기능직 하청 노동자는 10만명을 넘어섰다. 기능직 정규직과 비율로 따지면 294.1% 수준이다. 1990년에는 기능직 하청 노동자가 정규직의 21.2% 수준이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2002년부터 하청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 규모를 넘어섰다. 

문제는 물량팀이 처한 노동환경이다. 원청은 힘들고 위험한 업무부터 하청업체에 넘긴다. 이를 넘겨받은 하청업체는 그 중에서도 힘들고 위험한 업무 혹은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를 물량팀에게 넘긴다. 물량팀 노동자는 연구팀에 “5분 대기조라고 보면 된다. 돌발 상황이 벌어지면 투입된다. 시키는 일을 뭐든지 다 해야한다. 무조건 대꾸없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자도 “한 마디로 물량팀이란 한국에 오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하는 업무라고 보면 된다”며 “더럽고 바쁠 때 물량팀을 쓴다. 물량팀 자체가 그걸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이은주 연구팀 연구원은 “실제 초기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물량팀에 많았다”며 “제가 만났던 첫 물량팀 노동자도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물량팀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긴급 업무’이기 때문에 안전 수칙은 제대로 지킬 수 없다.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없다. 한 노동자는 연구팀에 “조회시간에 받는 교육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런 걸 다 지키다가는 정해진 시간 내에 작업을 마무리 하지 못한다. 물량팀의 존재는 말 그대로 ‘5분 대기조’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경우, 노조가 이런 부분을 지적하는데 초단기 계약을 하는 물량팀은 노조도 없다. 

그래서 이들은 더 많이 다치고 죽는다. 한 노동자는 “배관 일을 하는 사람은 원래 전기를 손대서는 되는데 위에서 반강제로 ‘빨리해라, 차단기가 내려져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작업 하라’고 했다. 하지만 차단기가 안 내려져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변전기 분리작업을 하다가 440볼트가 터졌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다. 

 

   
▲ 산업재해 사진전.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금속노조 제공.
 

그러나 그는 산재를 신청하지 못했다. 그는 “산재처리를 못하게 했다. 회사 총무가 차를 갖고 와 병원 직접 데려다줬다”고 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일하다 다친 물량팀 노동자 10명 중 9명(94.3%)가 산재 처리를 받지 못했다. 또 다른 노동자도 “죽지 않는 이상은 공상처리라고 봐야한다”며 “자재차로 몰래 싣고 나간다. 걸리면 난리가 나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산재를 신청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블랙리스트에 오를까봐”(59.5%) “해고될까봐”(31.0%)라고 답했다. 3개월 혹은 6개월로 계약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이 건강권과 고용권을 두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이 이미 정규직으로 취업하기 힘든 40대에서 50대라는 점도 이런 상황을 강제하는 요소 중 하나다. 

물량팀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덕을 보는 건 결국 원청이다. 물량팀은 힘들고 위험한 일을, 정해진 안전 수칙까지 무시해가며, 빠른 시간 내에 해내기 때문이다. 원청이 특히 덕을 보는 건 산재다. 원청은 재해율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데 물량팀 노동자의 산재는 대부분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조선소 내에서 노동자가 다쳐도 없는 일이 된다. 

가령 지난해 현대중공업 재해율(노동자 100명 중 재해자 수)는 0.66으로 조선업 평균 재해율(0.69)보다 낮았다. 덕분에 현대중은 지난 해 1월~8월 산재보험료를 101억여원 감액 받았다. 그러나 하청업체의 재해율까지 포함하면 현대중의 재해율은 0.95까지 높아진다. 연구팀은 “물량팀의 산재까지 통계로 잡힌다면 지금의 재해율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라 지적했다. 

연구팀은 노동부의 지도감독 등을 통해 “물량팀은 궁극적으로는 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물량팀 노동자들도 스스로 이런 인식을 하고 있다. 한 노동자는 “가장 이상적인 것은 원청이 흡수해서 정규직화 하는 것”이라며 “그게 안되면 일단은 노동조합이라도 있어서 불합리 한 것,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자체적으로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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