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의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세월호’ 사고와 ‘메르스’ 사태 등과 관련한 정부의 대처가 미흡했던 건 사실이다. 그로 인해 적지 않은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서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정부 당국자들의 잘못이 있다면 그 최종적 책임은 행정부의 수반인 박근혜 대통령이 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박근혜 대통령이 어느 역대 대통령보다 평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책이 있는데, 바로 ‘스포츠 정상화’이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의식에 얽매여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고 자정의 의지와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는 스포츠계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던 사례는 이전 정부에선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스포츠계 개혁의 한 방편은 불법과 부조리에 대한 조사와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책임 추궁일 것이다. 스포츠계 일부에선 정부의 ‘스포츠 4대악 합동수사반’ 등 수사기관의 스포츠계 전반에 대한 수사와 사법처리가 지나친 것이라고 하지만,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최근 발표한 유도계 수사결과만 하더라도 그렇다. 수사결과이므로 사실 여부는 나중에 법원 재판을 통해서 밝혀지겠지만 경제적 이익 취득과 관련한 전국체전 선수 불법 파견, 승부조작, 공금 횡령 등이 수년에 걸쳐 이뤄진 혐의는 그 자체로도 심각하다. 더구나 혐의자 중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사실로 드러난 대한유도회의 전(前) 회장이 공식적인 행사 자리에서 산하단체장을 복종하지 않는다며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하고 맥주잔을 그의 얼굴에 던진 사건은 ‘술을 깨게 할 정도’이다. 우리 스포츠단체가 어떤 시스템 하에서 굴러가고 있는지를 잘 알려주는 사건이다.

   
▲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비리‧부조리에 취한 스포츠계에 숙취해소제가 필요하다

위와 같은 파벌‧패권주의와 비리‧부조리에 ‘취한’ 우리 스포츠계를 정신 차리게 하려면 ‘숙취 해소제’가 필요하다. 숙취 해소를 위한 첫 단계는 스포츠계 개혁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었다. 관련 당국의 스포츠계 전반에 대한 기획(?) 수사로 인해 일반인이 알지 못했던 추악한 스포츠계 부정비리가 드러났고 그로 인해 올바른 스포츠계와 국민이 스포츠계를 개혁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젠 드러내놓고 스포츠계 개혁을 거부하거나 딴죽을 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포츠계 개혁의 다음 단계는 스포츠계 불법과 비리를 근절하고 불법비리가 발생하더라도 이에 대하여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스포츠계 구조와 시스템 개혁의 한 방편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통합체육회 출범이다. 지금의 아마스포츠를 관장하는 대한체육회와 그 하부구조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새롭게 출발하는 통합체육회와 하부 구조의 시스템을 새로운 규정과 제도로 재정립해야 한다. 통합체육회 출범이 단순히 기능적‧구조적으로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통합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더하여 통합체육회와 그 하부구조의 행정과 회계를 감시․감독하고 부정비리와 인권침해 등의 사항에 대해서 조직 논리와 이해를 초월하여 판단할 수 있는 기구‧조직이 필요하다. 이왕이면 그러한 기구‧조직은 통합체육회 등 스포츠계와 분리되고 그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대한체육회 및 그 가맹단체 내부엔 심판 부정‧횡령 등의 불법과 부조리, (성)폭력 문제를 다룰 조직과 규정이 있었으나 조직 논리와 파벌‧패권주의, 문제해결에 대한 소극적 자세 등으로 문제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스포츠 공정‧분쟁 조정 기구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이에리사 의원(새누리당)이 2013. 9. 30. 대표발의한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있다. 현행 선수위원회, 선수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익센터 등의 체육기구가 공정하고 투명한 스포츠 환경 조성을 위한 일부 기능을 하고 있으나, 그 기능과 권한이 한정되어 있어 조직적, 체계적인 총괄 역할과 조율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므로 스포츠 승부 조작, 심판 오심, 선수 폭력, 성폭력 및 인권침해 등 스포츠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반윤리적 행위에 관한 총괄 업무를 수행하는 한국스포츠공정위원회를 설립하자는 것이다. 한국스포츠공정위원회의 주요 업무는 폭력 및 성폭력, 인권침해, 승부조작 등 스포츠 분야의 비리 제보 및 청구에 관한 조사와 그 결과에 따른 제재 및 형사고발, 체육단체 제재에 관한 청구 재심의, 스포츠 공정 인증프로그램의 운영, 스포츠 분쟁에 관한 조정 및 중재 등이다.

위 법안의 취지가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구조직으로 하여금 스포츠계 비정상의 문제를 바로 잡자는 것이다. 그 취지에 동감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스포츠행정 선진 국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독립적인 스포츠 공정‧분쟁 중재 관련 기구조직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스포츠 정상화를 말씀하실 때 내심으론 정부도 그러한 기구조직을 설립할 것으로 기대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스포츠계 정상화에 대해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그 본질을 이해하고 그러한 기구조직 설립이 비용 대비 현저한 국가적 편익을 가져올 것임을 인식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들리는 바에 따르면, 청와대의 입장이 기구조직 설립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기관 기능조정’ 정책과 어긋난다고 보는 것인지 스포츠 공정‧분쟁 중재 기구의 설립 방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는 대신 별도로 만들 TF팀 형식의 조직으로 그러한 업무를 담당토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종 결정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스포츠 정상화’가 빈 말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필/자/소/개>
필자는 운동선수 출신의 변호사이다. 개인적‧직업적으로 스포츠‧엔터테인먼트‧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우리 스포츠‧엔터테인먼트‧문화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제도적 발전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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