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윤계상 인터뷰, 오후 1시 류승범 인터뷰, 오후 2시 ‘소수의견’ 시사회, 5시 감독 인터뷰…’ 6월의 어느날,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일정이 빼곡하다. 핸드폰 속 일정표를 보니 6월 한 달은 여백을 찾기 힘들 정도로 일정들로 가득차있다. ‘이걸 다 언제 소화하나’ 싶어 한숨을 쉬고 있는데 다른 기자에게 카톡이 날아온다. “선배, 내일 영화 시사가 하루에 네 개 있는 거 맞아요? 제가 잘못 체크한 거 아니죠?” 숨쉴 틈조차 주지 않는 ‘영화 성수기’가 시작됐다. 

농사와 장사에도 한철이 있듯 기사에도 한철이 있다. 영화기자에게는 극장가에 관객이 몰리는 6~8월, 12~2월이 성수기다. 이 시기에는 방학과 휴가 시즌이 맞물려 극장가를 찾는 관객이 비수기에 비해 2~3배 가량 증가한다. 대형 배급사들이 한 해 승부수를 띄울 간판 영화들을 비롯해 덩치 큰 영화들이 주로 이 시기에 개봉한다. 올해는 6월말 배급사 NEW의 <연평해전>을 시작으로 7월엔 CJ엔터테인먼트의 <손님>, 쇼박스의 <암살>,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의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매해 6월 중순부터 영화 홍보 전쟁이 시작된다. 

모든 영화 홍보는 개봉 2주 전 시기에 집중된다. 보통 2주 전 언론시사회가 홍보의 첫 단계다. 이날을 시작으로 평소에는 얼굴을 보기 힘든 인기배우들과 감독이 인터뷰에 나선다. 배우들은 3~4일의 시간 동안 70~80개의 매체와 인터뷰를 소화해야 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잠깐 밥 먹을 때를 빼고 수십 명의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한다. 기자들과 배우들이 만나 술을 마시며 취재를 하는 ‘미디어데이’ 행사가 열리기도 하는데, 이때는 영화 외에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며 배우들이 화제성 기사거리를 제공한다. 배우와 감독이 바쁘면, 당연히 기자도 바쁘다. 연예매체 기자들은 스타들의 화제성 발언부터 개봉영화 리뷰까지 빠짐없이 다 챙긴다. 밥 먹을 틈도 없이 일한다. 하루에 기본 4~5개의 인터뷰 기사를 소화하면서 2~3편의 영화를 보는 나날이 계속된다.

기자도, 배우도, 홍보 담당자도 모두가 녹초가 되는 2주. 모든 영화는 왜 이렇게까지 개봉 전 2주에 ‘집착’하는 것일까. 현재 영화 배급 시스템에서는 개봉 전 2주가 사실상 영화의 흥망을 결정짓는다. 극장에서 개봉 첫 주에 영화 스크린을 배정하는 데에는 개봉 전 ‘예매율’과 ‘화제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예매율이 높으면 첫 주에 많은 스크린을 배정받게 되는데, 극장에 간 관객은 자연스레 시간대가 많은 영화를 보게 된다. 첫 주 관객수가 많아야지만 다음주의 스크린수가 유지되거나 더 늘어난다. ‘높은 예매율 -> 첫 주 많은 스크린 배정 -> 관객수 유지 -> 스크린수 확대’의 과정에 실패하면 영화는 급격하게 ‘쪽박’의 길로 내달린다. 첫 주에 어느 정도 성적을 내지 못하면 그 다음 주에 바로 스크린수가 반토막나는 건 예삿일이다. 결국 개봉 2주 전 어떻게든 눈에 띄지 않으면 선택의 기회조차 없이 망하는 길로 가게 되니, 모든 영화가 어떻게든 눈에 띄기 위해 극한의 홍보를 하는 것이다.

‘극한 홍보’의 원인에는 멀티플렉스 극장의 독과점 문제가 있다. CJ, 롯데 등 멀티플렉스 3사가 전체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이들은 될 만한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준다. 첫 주부터 대박을 치는 흥행 영화 한 두 편이 나오면 같이 개봉한 대다수의 영화는 고사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대기업 배급체인을 규제해서 한 영화에 배정하는 스크린수를 전체 스크린수의 30~40%로 제한하자는 주장은 10년 전부터 나왔다. 규제 법안 발의도 시도됐으나 무산됐다. 영화 시장을 선점하고 있고 현재 방식으로 이윤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대기업 극장 체인들을 규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 이혜인 경항신문 기자
 

상황이 나아질리 없으니 자기 영화를 스크린에 걸어달라는 선처를 멀티플렉스 극장에 요구하는 것 대신 홍보를 통해 각자도생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홍보’가 공정하게 경쟁해 볼 수 있는 마지노선이 된 것이다. 영화를 잘 만드는 것 만큼 좋은 이벤트와 배우들의 화려한 입담이 중요해졌다. 기사거리가 쏟아지니 기자들이 기사거리를 마다할 리는 없다. 기자들은 한쪽에서는 스크린 독과점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지만 한쪽에서는 영화 개봉 전 쏟아지는 화려한 이벤트들을 쫓는다. 극한 홍보와 성수기의 고통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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