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17일 오전 10시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에 있는 ‘장준하공원’에서 39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생시에 그를 존경하고 따르던 사람들은 ‘돌베개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화와 통일을 반드시 이루자고 다짐했다. 추모식이 중반에 이르렀을 때 사회자가 “정의화 국회의장님께서 다른 일정 때문에 지금 도착하셨습니다”라고 알렸다. 제단 앞에 선 정의화는 ‘추모사’를 시작했다.

“저는 젊은 시절부터 민주주의를 위해 용감하게 투쟁하시는 장 선생님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추모객들은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집권 새누리당 출신인 현직 국회의장이 박근혜 정권이 ‘금기’로 여기는 장준하라는 인물에 대한 찬사를 직설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그의 말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저는 신경외과학을 전공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시신 감식에 관해서는 유명한 법의학자들 못지않게 경험을 쌓아 왔습니다. 저보다 더 많은 두개골 외상 환자를 치료한 의사는 없다고 자부합니다. 2011년 8월 폭우 때문에 무덤에서 밖으로 나온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의 사진을 보는 순간 타살이라고 단정했습니다.”

정의화가 ‘장준하 의문사’는 타살일 가능성이 크다고 처음으로 주장한 것은 2012년 9월이었다. 그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부터 국민 한 사람도 억울한 죽음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장 선생의 두개골이 신경외과 전문의인 내게 타살이라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법의학자의 유골 검사 결과 새로운 증거가 나왔으니 정부는 의지를 가지고 재규명 조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고인 같이 독립유공자이며 민주헌법을 위해 민주화운동 하던 중 의문사한 분의 사인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부와 살아 있는 우리의 의무 아닐까?”

39주년 추모식에는 기자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누가 제보했는지 <미디어오늘> 인터넷판 8월21일자 머리에 “정의화, 장준하 선생 유골 이장 전 ‘타살’임을 알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랐다. 5월30일에 국회의장으로 취임한 사람이 미처 석 달도 되기 전에 그런 폭탄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매체에 보도되었으면 다른 언론이 체면 가리지 않고 확인 보도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어떤 신문이나 방송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 1974년 1월 개헌 청원 서명운동으로 긴급조치 1, 2호를 위한했다는 이유로 선 백기완(왼쪽), 장준하. 사진=장준하기념사업회
 

오는 8월17일은 장준하가 경기도 포천시 약사봉에서 ‘실족사’(경찰 발표) 한지 40년이 되는 날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으로 이어진 역대 정권은 유족과 기념사업회가 끈질기게 요구한  ‘장준하 의문사 진상 밝히기’를 외면했다. 김대중 정부 시기인 2000년 1월15일에 제정된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같은 해 10월 17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가 대통령 산하기구로 출범했다. 1기 의문사위는 2002년 9월16일까지 조사한 사건들 가운데 ‘장준하 의문사’ 등 30건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3년 7월에 발족한 2기 의문사위는 장준하가 실족사한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를 발견하고도 수사권이 없어서 ‘타살’이라는 결론을 공식적으로 내리지 못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2012년 8월1일, 파주시 광탄면 나사렛천주교 공동묘지에 묻힌 장준하의 유골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에 조성된 ‘장준하공원’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검시를 한 결과, 머리 뒤쪽에 지름 6cm 정도의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8월16일,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유골 사진을 공개하면서 검시를 맡은 서울대 의대 교수 이윤성의 소견서(‘뒷머리 함몰에 의한 사망’)를 제시했다. 유족과 야권은 “장준하 선생이 타살되었음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가 나타났으니 정부가 사건의 진상을 가려내고 1975년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견해를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도 박근혜도 묵묵부답이었다.

박근혜는 2007년 6월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아버지 시대의 불행한 일로 희생과 고초를 겪으신 분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항상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뒤 7월11일 장준하의 부인 김희숙이 사는 서울 일원동의 아파트를 ‘깜짝 방문’했다. 박근혜는 그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장 선생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애국심이 뜨거우셨고, 민주주의 열정을 갖고 계셨던 분이다.” “저의 아버지는 반대 입장에 계셨고 방법은 달랐지만 두 분 개인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셨다고 믿고 있다.” “장준하 선생이 바란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확립인 만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당시 박근혜는 이명박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를 향해서라도 못할 약속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가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차지하고 드러내는 행태는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회를 향해 ‘헌정쿠데타’나 다름없는 월권행위를 서슴지 않는가 하면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마치 자신의 사당(私黨)인 듯이 강압적인 요구와 협박을 가하고 있다.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을 비롯한 고위 당직자들은 여야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박근혜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배신’이라고 비난을 퍼붓자 납작 엎드려서 국회에서 재의를 포기하겠다고 항복선언을 해버렸다.

   
▲ 2012년 8월 17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에서 열린 '장준하 공원 제막식 및 제37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 ‘비극적 희극’이 펼쳐지는 가운데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의 대의에 따라 가장 단호하게 박근혜의 강압에 대처한 사람은 국회의장 정의화였다. 새누리당의 ‘친박’과 최고위원 다수는 의원총회에서 선출된 원내대표 유승민을 향해 박근혜를 ‘배신’한 것을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강요했다. 정의화는 그런 ‘정치적 테러’에 일절 반응하지 않은 채 자기의 직분에 충실했다. 그는 6월30일 “다음달 6일 재의결 대상이 된 국회법 개정안을 우선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헌법 제53조 제4항은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면 국회는 재의에 부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헌법에 규정된 절차를 밟는 것이 헌법을 수호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며, 국회의장의 의무”라고 설명했다.

정의화는 지난해 장준하 39주기 추모식에서 이렇게 약속했다. “현재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상정된 ‘장준하 사건’ 등 진실규명과 정의 실현을 위한 과거사청산 특별법’ 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가 2016년 4월 말에 국회의장 임기를 마치기 전에 뜻있는 의원들과 힘을 모아 특별법을 제정함으로써, 1949년의 ‘백범 김구 암살’ 이래 권력에 의한 최악의 ‘타살’로 희생된 것이 분명한 장준하의 넋을 기리고 스러져 가는 민주주의를 되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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