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아직도 전 이길 확률 40%로 보고 있거든요.”

언론노조 MBC본부 대리인 신인수 변호사(법무법인 소헌)는 몇 달 전 MBC 재판 결과를 묻는 질문에 어두운 낯빛으로 말했다. 그가 평상시 비관적 전망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기에 ‘40’은 MBC본부 패소를 예견하는 숫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2012년 MBC 파업 3대 재판(해고무효소송, 업무방해 등 형사소송, 손해배상소송) 1·2심 결과는 6대0. MBC본부 ‘완승’이었다. “공정방송 의무는 방송사 노사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법원 판결은 수년째 언론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30일 만난 신 변호사 목소리는 예전과 달리 가벼웠다. 파업 재판 항소심이 마무리된 데 소회를 물었다. 그는 “MBC 구성원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며 “사측은 간부들이 돌아가며 증인으로 나섰지만, MBC 구성원들이 증인으로 나서면 불이익을 당할까 섭외가 조심스러웠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 신인수 변호사가 지난달 30일 그의 서초동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신 변호사는 판결의 의미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공정방송은 언론인의 근로조건’이라는 한 문장을 주목하는데 사실에 기초한 판단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며 “원고나 피고 당사자의 주장으로 판단하기보다 MBC에서 실제 공정방송 훼손이 있었는지 여러 쟁점을 사실에 기초해 재판부가 판단한 것 같다. 증거재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MBC는 두 민사 재판(해고무효소송, 손해배상소송)에 대해 상고를 결정했다. 2012년 파업이 정당한 것이었는지 대법원 판단을 구하겠다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상고는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청구권이기 때문에 MBC가 상고를 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면서도 “파업으로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극소수 경영진뿐이다. 방송을 통해 돈을 번 사람들(MBC 구성원)과 돈을 낸 사람들(시청자) 모두 파업 정당성을 인정하는데, 경영진들만 공적 재산을 낭비하면서 재판을 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시민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극소수 경영진이 각자 사재를 털어서 소송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신 변호사는 언론 노동자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한 언론인은 “사측의 부당한 징계 철퇴가 내려쳐질 때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고통스러웠지만, 신변이 맡으면 이길 거라는 확신과 믿음은 큰 힘이 됐다”며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지난 2012년 KBS, MBC, YTN 등 주요 방송사가 총파업을 강행했다. 이후 방송사 노사간 송사가 잇따랐다. 신 변호사는 파업과 관련한 소송을 도맡아 모두 승소하는 저력을 보였다. 그럼에도 공은 구성원과 시민들에게 돌렸다.

“MBC 파업 재판 등의 결과는 변호사 한 개인의 성과물이 아니다. 파업으로 구속 위기에 처했던 언론인들과 혹독한 징계 속에서도 꼿꼿하게 버텨주었던 구성원들, 이들과 함께 연대했던 시민들이 일궈낸 성과다. 단지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대변하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5월 7일 1심과 동일하게 언론노조 MBC본부 파업 집행부의 업무방해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2012년 당시 집행부 5인이 승소에 웃음을 보이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장재훈 전 정책교섭국장, 김민식 전 편성제작부위원장, 정영하 전 MBC본부장, 이용마 전 홍보국장, 강지웅 전 사무처장. (사진=김도연)
 

그는 1997년 IMF 시기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서기호 전 서울북부지법 판사(현 정의당 의원)가 연수원 29기 동기다. 신 변호사 역시 판사(서울중앙지방법원) 출신이다. 판사, 로펌 변호사를 거친 엘리트 법조인이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 변호사가 된 까닭이 궁금했다.

“(연세대학교) 91학번이다. 1991년 4월 명지대 학생 강경대가 사망했다. 집회에 나가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지는 못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쳤다. 책임져야 할 위치에서 학생운동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때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에 부채 의식이 남아있는 것 같다. 속죄 차원, 그런 차원에서 노동자들을 변호하고 좋은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신 변호사는 “처음에 민주노총 법률원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으로부터 ‘정치하려고 가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웃음)”며 “판사가 로펌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민주노총에 가는 건 이상한 건가. 이력을 특이하게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노동에 대한 편향적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그가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주로 맡은 사건은 전교조 및 언론 노동자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과거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혐의로 검찰이 교사들을 대거 기소한 건, 전교조 법외노조 건, 2012년 언론사 총파업 건 등에서 신 변호사는 탄압받는 노동자들을 대변해 왔다. “노동은 가장 소중하면서도 비루한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신념이 담겨져 있는 듯했다. 

그는 재판부 앞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보다 경영권을 우선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보수적인 재판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재판정에서 노심초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신 변호사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것일 뿐”이라면서도 재판부에 대한 믿음을 전했다.

“변론을 다소 외람되게 한다고 해도 재판부가 귀담아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당사자들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호소하면 판사들이 이를 판단 대상으로 삼아 공정한 판결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이러한 믿음과 기대를 기초로 변론한다. 또 한국의 노동 환경과 법리적 판단이 후진적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해마다 국제노동기구(ILO)와 OECD가 지적하는 사안 아닌가. 전 세계에서 평화로운 파업을 처벌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웃음).”

최근 MBC 판결과 관련한 국회 토론회에서도 신 변호사는 노동자에게만 가해지는 ‘업무방해죄’의 부당성을 비판했다. 노동자는 노무를 제공할 의무가, 사용자는 임금과 자본(작업장 등)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노동자가 노무 제공 의무를 불이행할 때만 업무방해죄로 처벌한다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동일한 논리에서 사용자의 임금 미지급, 정리해고, 공장 해외이전 역시 업무 방해죄로 처벌해야 헌법상 평등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이와 관련해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재가 어떻게 판단할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 신인수 변호사가 지난달 30일 그의 서초동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법과 판결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려는 시도가 일상화하고 있다. 대화와 협상보다 법원 판단이 우선해 소통이 단절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YTN 해직 사태다. 대법원이 해직기자 6명 가운데 3명 복직만 인정한 결과, 나머지 해직 기자 3명 복직에 대해서 사측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판결문 한 줄이 사회의 진보를 구현할 수 있는 걸까.

신 변호사는 “노사 대화, 그것이 결렬됐을 땐 쟁의행위 등을 통한 자치 교섭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제3자인 법원이나 국가는 최후수단으로서 기능해야 한다”며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노사가 자치적으로 교섭할 수 있는 틀이 무너졌다. 도리어 정부는 공정한 중재자 자리를 일탈해 노동조합을 탄압하곤 한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법이나 판결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법이나 판결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사회 개혁이나 진보를 판결에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와 MBC 구성원들이 재판을 통해 확인한, ‘공정방송은 언론 종사자의 근로조건’이라는 한 문장은 퇴보한 언론 자유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다. 

“파업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싸움에 동참했던 구성원들이 힘을 얻고 다시 공정방송을 만들 수 있다. 언론 자유는 종사자들이 누리는 자유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소중한 기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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