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둘러싼 새누리당 내부 갈등이 대치 국면에 접어들었다. 유 원내대표가 버티기에 돌입하면서 유 원내대표를 압박하던 친박계가 고민에 빠졌다. 유 원내대표에게 출구를 열어주는 모양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29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2시간 반에 걸쳐 격론을 펼쳤으나 유 원내대표의 거취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유 원내대표는 “아직 정리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버티기’에 돌입한 셈이다.

친박 최고위원들 입장에서는 이미 의원총회에서 결정된 유 원내대표에 대한 재신임을 최고위원회의에서 뒤집기란 정치적 부담이 크다. 비박계 의원 20명은 최고위원회 직전 발표한 성명을 통해 “원내대표는 당헌에 따라 의원총회를 통해 선출되었고, 최근 당ㆍ청 갈등 해소에 대한 약속도 있었다. 이런 민주적 절차를 통해 결정된 것을 의원들의 총의를 묻지 않은 채 최고위원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의원총회에서 거취문제를 결정하기도 쉽지 않다. 친박 의원들은 그간 의원총회를 소집해 불신임을 묻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나, 유 원내대표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막상 의원총회에서 기존 결정이 뒤집힐 것이라 낙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비박계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의원총회 소집을 강하게 요구했던 친박계 김태흠 의원은 30일 KBS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 인터뷰에서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것은 당헌‧당규에 나와 있다. 그런데 의원총회에서 책임을 묻는, 재심을 묻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헌 당규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 정도의 사태라면 표 대결이나 이런 부분보다는 유승민 원내대표가 스스로 결자해지 차원에서 결단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 청와대와 친박계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9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의원총회 소집에 반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30일 국회에서 열린 ‘통일경제교실’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의총을 할 때가 아니다. 의총을 안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의원총회 결과에 따라 자칫 친박과 비박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수도 있다. 김무성 대표가 29일 최고위원회 직후 “어떠한 경우라도 당의 파국은 막아야 한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버티기’에 들어서면서 이번엔 친박계가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이에 따라 친박계의 전략은 사퇴 압박에서 ‘출구 열어주기’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29일 최고위원회의 이후 “경청하고 ‘기회를 달라’ 했으니 지켜봐야한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정치권과 언론에서 ‘명예퇴진’론이 나오고 있다. 유 원내대표가 물러나지 않은 채 다음달 6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재의됐다 새누리당의 집단퇴장으로 자동폐기 수순을 밟은 이후 원내대표직을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연합뉴스는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국회법 개정안이 상정됐다가 자동 폐기 수순을 밟는 것이 확정되면 본회의 발언을 신청해 사퇴를 선언하지 않겠느냐”고 관측했다.

문화일보는 30일 새누리당이 국회법 개정안 재의안에 대해 ‘본회의에 참석하지만 투표에는 불참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과 관련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거취와 관련, ‘퇴로’의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압력에 의해 물러나는 게 아니라 원내사령탑으로서 자신이 야당과 합의 통과시킨 법안이 사문화된 데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퇴진하도록 모양새를 갖춰준다”는 것. 

명예퇴진론은 관측이라기보다 친박계의 희망사항에 가깝다. 문제는 유승민 원내대표가 끝까지 버티기에 돌입할 때다. 버티기에 돌입할 경우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사건건 청와대와 친박에 가로막히면서 ‘식물 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에 맞서면서 ‘자기정치’를 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개혁보수’ 이미지가 필요한 새누리당 비박 의원들이 유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30일 기자들과 오찬 자리에서 “(유 원내대표가 버틸 경우) 국회를 끌고 나가는데 있어 많은 장애와 난관이 있을 것이다. 이를 고려해 ‘어느 시기에 내가 해야 될 임무를 다하고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밝힐 것이라 본다. 일반적인 경우 그렇다”며 “그러나 정치인 유승민이 지금 이 상황을 자기정치의 장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장이라 본다면 또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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