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혀 VS 혀’ 논란이 일었다. 제목은 물론이고 ‘맛 보는, 거짓말 하는, 사랑하는 혀’ 라는 모티브와 ‘혀를 요리해서 먹는 결말’이 같은 두 소설이 나온 것. 문제를 제기한 이는 신인작가 주이란씨였다. 그는 자신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이, 조경란씨의 소설로 출간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경란씨는 예심 심사위원이었다. 이에 대해 조씨는 “그런 작품을 읽어본 기억은 없다”고 말했고 출판사인 문학동네는 침묵했다.

하지만 신인작가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프레시안에 “저는 ‘영혼’을 도둑 맞았습니다”라는 글을 기고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소설가 김곰치씨와 당시 실천문학사 대표였던 김영현씨 등이 문학계의 자성을 요구하고 나섰고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더 놀라운 것은 주류 신문과 문단의 무반응”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 일은 유야무야 마무리 됐다. 이후 조씨는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주씨는 미국으로 떠났다. 30일 주씨를 전화로 인터뷰 했다.  

- 조경란 작가의 ‘혀’ 출간은 어떻게 알게 됐나
“조경란 작가가 ‘혀’를 출간했다는 신문 기사를 봤다. 너무 놀랐다. 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이랑 제목이 같았다. 당시 조경란 작가가 심사위원이었다. 서점으로 달려갔다. 서점에 갔더니 책 표지에 혀의 3가지 용도가 적혀있었다. 맛 보는, 사랑하는, 거짓말하는 혀. 그건 제가 제 소설에서 소제목으로 달았던 혀의 3가지 용도였다. 억울하고 놀라웠다.”

- 어떤 부분에서 표절을 확신했나
“두 가지 근거가 있다. 먼저 내용이다. 맛보고 거짓말하고 사랑하는 3가지 용도의 혀. 특히 사랑하는 혀 부분에서는 구강성교를 강조하는 것. 그리고 사람의 혀를 요리해서 먹게 된다는 결말.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일치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조경란씨가 제가 이 소설을 제출한 신춘문예의 심사위원이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 소설은 조경란 작가의 기존 작품과는 완전히 다르다. 출판사인 문학동네도 이 작품을 보고 “이거 조경란 소설 맞아?”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에 조경란 작가가 낸 책을 보면 혀와는 다른, 다시 특유의 조경란 스타일로 돌아왔다.“

 

   
▲ 지난 2008년 표절논란에 휩싸인 주이란 작가의 단편집 혀(왼쪽)와 조경란 작가의 장편 혀(오른쪽)
 

- 문학동네는 최근 MBC 시사매거진2580 취재진에게 “주이란이 ‘혀’를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2005년에 초고를 자필로 썼다. 2005년 말에 컴퓨터 파일로 입력하고 저장했다. 당시 날짜가 입력된 파일이 있다. 그리고 2006년 12월에 동아일보에 이 소설을 우편등기로 보냈다. 이런 자료들을 모아서 저작권 위원회에 제출 했다. 저작권위원회가 조경란 작가와 문학동네에 출석을 요구했는데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출판사 직원이 왔다. 자료를 딱 두 장 가져왔더라. 의견서 한 장과 1998년 계약서라고 했다. 그런데 ‘혀’의 계약서라는 걸 입증할만한 자료가 못된다. 저작권위에서도 (이 자료들에 대해) ‘성의가 없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 공개대응 전에는 어떤 과정이 있었나
“출판사와 문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출판사를 찾아다니면서 ‘이 일을 알려야한다. 책을 출간해서 이게 표절인지 아닌지 독자에게 물어보자’고 했다. 출판사 몇 곳에 갔지만 거절당했다. 시비에 연루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혹은 주이란씨는 등단을 아직 안 했기 때문에 출판 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동아일보와 껄끄러운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출판사도 있었다.”

- 공개대응을 만류하는 사람은 없었나 
“유명한 소설가를 만났다. 그는 ‘알려서 좋을 게 없다. 글쓰기 힘들어질거다. 이런 부분은 잊어버리고 열심히 글만 쓰는 게 좋은 거다’ 식의 조언을 했다. 그 작가는 문학동네 강태형 대표를 형이라고 부르고 조경란 작가한테는 ‘경란이’라고 말했다. 굉장히 끈끈한 관계라는 게 느껴졌다. 저에게는 등단부터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관계있는 계간지로 등단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했다. 그 작가에 대해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모습이 완전히 깨졌다. 그래도 그 작가가 조경란 작가에게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적 있나’라고 물어봐주고 확인해주었던 점은 고마웠다. 

(조경란 작가는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가 나중에 “시기를 착각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출판사 문학동네는 “물론 조경란 씨의 대답은 틀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간단하게 확인해볼 수 있는 그런 사실을 두고 조경란 씨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누구든 어떤 시기를 잘못 기억하고 있는 일은 왕왕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 그래서 직접 출간하게 된 건가. 출간 후 반응은 어땠나
“내가 왜 나서야 하나 그런 고민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 한번은 나서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경란씨가 작가고 강태형씨는 문학동네 대표이기 전에 시인이기도 하다. 표절을 인정할거라고 조금이나마 기대를 했다. 그래서 직접 출간을 하게 됐다. 

출간 후 독자와 몇몇 비평가들은 표절이 맞다고 말했다. 표절은 독자가 판단을 내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후 한 영화사는 제 소설이 원작임을 인정해서 저와 계약을 맺었다. 조경란 작가가 자기 글을 표절했지만 공개적으로 항의하지 못했다는 제보 전화도 받았다. 그 분은 자신이 나서야 할 때가 되면 나서겠다고도 말했다.“

 

   
▲ 지난 28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2580 <표절이 감춰진 이유>. 사진=방송화면 캡쳐
 

- 문학계 반응은 어땠나
“대다수가 침묵했다. 놀라울 정도였다. 프레시안이나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KBS 정도만 ‘표절 논란이 있다’고 보도했지 조중동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표절 논란이 있는 작가에게 동인문학상을 주었다. 이후에도 조경란 작가는 문학동네와 창작과 비평사 같은 출판사에서 계속 작품을 발표했고 문예지는 조경란 작가에게 작품을 청탁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 당사자인 조경란 작가나 문학동네와는 이후 어떻게 됐나
“조경란 작가가 저작권위원회에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볼 일은 없었다. 한창 사건이 있을 때 조경란 작가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조경란 작가의 명성을 이용해 홍보하려는 전략,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려는 행동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 표절논란 이후에 등단했다는 소식이나 작품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문단에 들어가는 걸 그만둔건가
“그 사건이 굉장히 큰 상처였다.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기존의 작가들이 작가 지망생들의 글을 심사하고 인정하고 합격시키고 마치 작위를 수여하듯이 이뤄지는 등단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글로 독자를 만나는 게 작가라고 본다. 문학은 우리들만의 소유, 우리만이 작품을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하다.”

- 미국으로 간 것도 그 사건과 관련이 있나
“표절 논란이 분명히 일었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아무런 말도 안 하는데 책은 계속 나왔다. 그런 걸 지켜보는 게 너무 괴로웠다. 나와서 사니까 안 보게 되어 좋고 조용하게 집중할 수 있다. 여기 와서는 글을 그래도 조금씩 쓰고 있다.”

 

   
▲ 지난 28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2580 <표절이 감춰진 이유>. 사진=방송화면 캡쳐
 

- 이번 표절논란과 관련해 신경숙 작가의 경향신문 인터뷰를 읽어봤나
“신경숙 작가 표절은 이전부터 논란이 되어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번엔 독자들이 알게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파장이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혀’ 논란처럼 넘어갔을 것이다. 신경숙 작가의 인터뷰와 창작과 비평사의 해명은 독자들의 힘에 의해서 한 발 물러선 걸로 보였다. 결코 자의로 표절임을 인정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한 사과마저 깔끔하지 않았다. 꼬리 자르기 식이었다. 이번 작품 하나로만 넘어가려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하지만 신경숙 작가는 표절 논란이 불거진 작품이 하나가 아니다. 논란 됐던 수많은 작품에 대해 해명이든 뭐든 해야 한다.”

- 이번 일을 계기로 뭔가 해결될 수 있을까. 아니면 좀 떠들다 말 것 같은가
“조금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2008년 보다는 한 발 나갔다. 독자들의 힘에 밀려서 나갔지만 일단은 표절을 인정했다. 결국 이들이 겁내는 건 독자들이다. 표절 논란을 한 책은 독자들로부터 외면 받아야 한다. 그러면 제어된다고 본다.”

- 현택수 원장이 신경숙 작가를 고발했다. 고발당사자인 이응준 작가는 검찰고발에 반대했다. 문학의 일은 문학내에서 해결되야한다는 논리, 어떻게보나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이 일자 한국작가회의는 ‘표절 여부는 논외로 하고, 귀중한 작가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문학동네도 마찬가지다. 문학동네는 신경숙이나 조경란의 표절 논란의 중심에 있던 출판사인데 이번에 마치 자기들이 해결사인 것 마냥 좌담회를 열어서 욕을 먹었다. 반성해야 할 주체가 이렇게 하는 것만 봐도 한국문학은 자정 능력이 없다. 수차례 표절 논란이 있었지만 늘 침묵으로 일관했고 스스로 문을 닫아버렸다. 이건 지난 경험에서 아는 거다. 젊고 의식있는 작가들에게는 희망이 있지만 나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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