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식 경제 성장은 21세기 한국경제에서 가능한가? 박정희와 박근혜는 친서민인가? 박근혜는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인가? 경제 발전·선진국·평화 통일에 박근혜는 적격인가?

네가지 물음은 정치인 박근혜가 대통령을 꿈 꿀때, 더구나 일부 진보지식인 사이에서도 박근혜의 능력을 평가하는 발언들이 솔솔 나올 때 던진 물음이다. 4년 전 출간한 책을 통해 나는 네 물음에 왜 부정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는지를 최대한 담담하게 밝혔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영남의 민중들과 만나고 싶어서였다.

가식없이 말하거니와 책을 쓰며 전망이 틀리기를 소망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집권한 뒤 예측대로 국정을 맡는다면, 영남의 민중은 물론 국민 대다수의 삶아 더 피폐해지고 국가적 재앙이 찾아올 게 투명했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를 부르대고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며 김종인을 참모로 둘 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했다.

색바랜 과거를 껴내드는 까닭은 박근혜와 지지자들에게 기억을 되살려주기 위해서다. 박근혜가 경제 민주화를 공약한 사실을 망각한 언행이 곰비임비 이어져 더 그렇다.   

박근혜는 최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정치가 정도로 가지 않고, 오로지 선거에서만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있다며 “이제 우리 정치는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이다. 하지만 절정은 아직 아니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선거 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에서 극치를 이룬다.

   
▲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핵심개혁과제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허탈과 분노를 토로하려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도대체 박근혜는 ‘국민’을 무엇으로 알고 있기에 저런 말을 무람없이 할까를 짚고 싶어서다. 박근혜가 믿는 국민은 서울의 특정 지역과 영남에서 살고 있는 ‘국민’일 성싶다. 서울의 특정지역을 거론하고 싶진 않다. 그 지역 사람들 대다수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박근혜를 지지하는 ‘합리적 선택’을 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남 사람들, 그 대다수인 민중은 어떤가. 삶이 나아지고 있는가?

다 알다시피 박근혜의 국무회의 발언은 동향의 후배 정치인이자 새누리당 원내 대표 유승민을 밟아버리겠다는 의도다. 대구가 지역구인 유승민은 한껏 몸을 낮췄다. “대통령이 국정을 헌신적으로 이끌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여당으로서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라며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하다. 대통령께서 마음을 풀고 열어주길 기대한다”고도 했다. 왕조시대의 문법이다. 물론, 박근혜는 마음을 전혀 풀지 않았다.

정말이지 선입견 없이 성찰해볼 일이다. 유승민은 원내대표가 된 뒤 국회 연설에서 경제민주화가 지지부진한 사실을 지적했다. 창조경제가 ‘경제 성장 해법이라고 자부할 수 없다’는 말도 했다. 유승민의 그 언행이 박근혜에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로 다가왔을 법하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정색을 하며 묻고 싶다. 정치인 박근혜는 ‘경제민주화’에 나설 뜻이 조금이라도 있었는가? 후보 시절에 사위 요란하게 내건 ‘경제 민주화’ 공약은 한낱 ‘국민 기만극’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의 전임자 이명박이 언죽번죽 공언했듯이 선거 기간에 무슨 말을 못하느냐는 수준의 정치적 술수였는가.

만일 당시 자신의 대선공약에 실낱이라도 진정성이 있었다면 자신의 가장 대표적 약속인 ‘경제 민주화’를 애면글면 다시 의제로 설정해가려는 여당 원내대표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옳은 상황 아닌가. 그럼에도 살천스레 몰아세우는 박근혜의 언행은 그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충분히 증언해준다.

박근혜는 국민 대다수가 정치인을 불신하는 현상을 십분 이용해 여당 원내대표를 쫓아내는데 온 힘을 쓰고 있다. 민생이 아닌 법안을 ‘경제 살리기’라고 우겨대는 언행은 또 어떤가. 진정 민생을 걱정한다면 유승민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 섟에 그를 표로 심판해달라고 대구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메르스 대응 부실로 서민경제를 한 달 넘게 망가뜨려놓고 있는 국정 최고책임자가 사과는커녕 청와대에 앉아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골몰하는 정쟁은 얼마나 살풍경인가.

   
▲ 손석춘 언론인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정치인 박근혜에게 청와대 집무실에 걸려 있을 거울을 들여다보길 충심으로 권한다. 만일 최소한의 신의라도 그가 지니고 있다면, 그 거울에 또렷하게 보일 얼굴은 분명하다. 배신자다. 그의 어법을 한번 더 빌려 묻자. 국민은 그 배신자를 어떻게 심판해야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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