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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특정한 사건, 사실과 관계가 없다”

영화 <소수의견>은 이러한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이 자막은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가 ‘현실’임을 말해주는 가장 강력한 기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픽션이다. 진짜 실화가 아니라면 굳이 “실화가 아니다”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소수의견>은 2009년 1월 벌어진 ‘용산 참사’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강제 철거에 저항하며 맞선 철거민들, 그리고 경찰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철거민과 경찰의 죽음. 참사를 덮으려 대대적으로 홍보한 살인사건. 용산 참사를 아는 이들은 누구나 <소수의견>을 보며 5년 전의 끔찍했던 참사를 떠올릴 것이다.

<소수의견>에는 한 가지 요소가 더 있다. 바로 ‘의견’이다. <소수의견>은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고,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자세히 조명한다. 이 영화의 제목에 ‘참사’라는 말도, ‘국가 폭력’이라는 말도 들어가지 않는 이유다.

   
▲ <소수의견>의 변호사, 윤진원.
 

영화의 초점은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철거민 박재호는 처음에 의경을 죽인 살인자에 불과했다. 국가는 용역깡패가 그의 아들을 죽였고, 박재호는 경찰을 죽였다고 주장한다. “경찰이 아들을 죽였다”는 박재호의 외침은 정신 나간 살인자의 읊조림에 불과했다.

박재호 혼자만의 주장은 곧 ‘소수’의 의견으로 거듭난다. 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윤진원. 그리고 철거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기자 공수경. 그리고 윤진원의 부탁으로 국가를 상대로 100원 짜리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 장대석.

여러 차례의 국민참여재판과 쏟아지는 증거들 속에서 이들의 ‘소수의견’은 다수의견이 된다. 국민참여재판의 재판관들은 박재호의 정당방위를 인정한다. 판사는 국민참여재판의 다수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3년’을 선고한다. 빗발치는 야유 속에 퇴장하는 판사, 국가권력의 주장은 어느새 ‘소수의견’이 된다.

‘천만영화’ <변호인>과 비교하면 <소수의견>의 차이점이 명확해진다. <변호인>은 <소수의견>에 비해 히어로물에 가깝다. 먹고 살기에 바빴던 한 변호인이 국밥집 아주머니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한 재판에 뛰어들고,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헌법 제1조의 의미를 몸으로 깨닫는다.  그는 어느 새 민주투사가 되어 재판을 받는 처지가 되지만, 부산 지역의 수많은 변호사들이 그의 ‘변호인’을 자처한다.

<소수의견>의 등장인물들은 ‘히어로’가 아니다. 윤진원 변호사는 철거민의 변호를 맡는 정의로운 인물이지만, 변호를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 범죄자의 변호를 맡기도 한다. 장대석 변호사는 정 때문에 변호인을 자처하지만, 증언을 듣기 위해 증인에게 천만 원을 건네는 인물이다. 기자 공수경은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지만, 특종에 목마른 여타의 기자들과 다를 것 없는 기자다. 재판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무시하고 단독기사를 쓰기도 한다. 철거민 박재호는 국가권력과 맞서는 투사가 아니라, 유혹에 넘어가는 나약한 인간이다.

한 명의 히어로가 아니라 몇몇 나약한 인간들의 알량한 양심들이 모여 소수의견을 다수의견으로 만들었다. 검사에게도 까다로운 판사의 깐깐함, 검사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변호사협회 징계위원장의 자존심, 그리고 몇몇 증인들의 솔직한 고백이 소수의견을 다수의견으로 만들어낸다. 이들은 모두 많은 단점을 가진 인간들이었으나 이들의 작은 장점들이 하나로 모여들었다.

   
▲ 영화 <소수의견> 포스터.
 

<소수의견>의 포스터는 한 명이 아니라 주요 등장인물들 얼굴이 모두 균등하게 담겨 있다. 이러한 구성은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영화가 현실적인 점은 결국 ‘다수의견’이 소수의견을 이기지 못했다는 점이다. 박재호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징역3년을 받았다. 사건을 조작하려 한 검사는 옷을 벗었지만 로펌의 변호사로 들어갔다.

검사가 마지막에 윤진원에게 묻는다. “국가는 누군가의 희생과 누군가의 봉사로 돌아가는 거야. 박재호는 희생을 했고 나는 봉사를 했어. 근데 넌 뭘 했냐?” 윤진원은 대답하지 않는다. 이 질문이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쁜 놈’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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