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이 말은 2011년 안양의 월세방에서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 홀로 숨진 최고은 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에 있었다. 이 문장은 문화예술인들의 경제적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사회적 파장을 낳았고 이 때문에 일명 최고은법이라는 문화예술인법이 만들어졌다. 예술인복지재단이 만들어졌고 우여곡절 끝에 지원액도 100여원 마련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최근 배우 김운하, 판영진의 죽음이 연이어 알려지면서 문화예술인들의 처우 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았으며 문화예술인 복지법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더구나 예산 집행이 6월 현재까지 단 한건도 이뤄지지 않아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다른 지원정책과 중복되는 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애초에 이런 법률과 지원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특수한 예술가들의 정체성과 심리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의 가장 큰 모순은 문화예술인들을 단지 생계를 위해 활동을 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문화예술인 지원책에 대한 문제로 언급되는 것은 간과되는 노동자성, 보험부담액의 과중함, 까다로운 심사기준, 비현실적인 예술 활동 수입액 증명, 장르별 활동 입증의 한계, 예산액의 불안정성과 부족 등을 든다. 우선 예술가들은 단지 혼자 활동하는 것이 특정 업체에 소속되거나 일정한 관계를 맺고 문화예술 노동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동자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예술인지원을 위한 보험료부담도 문화예술인에게 부담을 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또한 특정 활동과 실적을 증명하는 것은 거꾸로 어느 정도 활동 입지를 갖춘 이들에게만 지원이 돌아갈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연간 120만원의 수입을 예술 활동을 통해 올려야 예술인 복지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쉽지 않다. 한 달에 10만원의 수입을 올리기 힘든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어떤 자료로 증명할 수 있을 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빈번하다. 또한 지원 장르도 편협하다. 요즘 예술은 복합적이고 혼종적인 장르나 작품 활동이 많은데, 지원 정책에서 요구하는 것은 단일하고 평면적이다. 더구나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액은 턱없이 적고 안정적인 보장도 어려운 점이 매번 지적된다. 물론 이런 지적들은 충분히 논할 가치가 있다.

여기에서 초점은 흔히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이 어려우니 이를 직접적인 수단, 즉 현금 지원 등을 마련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는 분명 의미도 있고 현실적인 조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왼쪽부터 배우 고(故) 김운하와 고(故) 판영진. (극단 신세계 제공, 판영진 미니홈피 캡처)
 

하지만 문화예술인들이 이러한 제도적인 지원 정책에 얼마나 응할 지는 불확실하다. 다른 일반 복지 수혜자들의 정체성과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인들은 작품 활동 그 자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많은 예술가들은 돈과는 분리되는 입지를 구축해서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 활동을 유지하려 한다.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예술 활동을 유지하려는 것은 예술가 정신과 그 작품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이 클수록 경제적인 어려움이 커진다. 심지어는 질병에 걸렸거나 굶주림에 있더라도 내색조차 하지 않고 활동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이들에게 지원정책은 무용지물이다.

왜 그럴까.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은 질병에 굶주림이 극이 달했을 때라야 비로소 ‘창피하지만 남은 밥이랑 김치를 좀 달라’고 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단어는 '창피하지만'이라는 단어이다. 거의 죽음에 이르렀을 때라야 창피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자신이 밥을 못 먹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직접적으로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메모였다.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닌 밥과 김치를 달라는 말이었다. 그들이 돈을 달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창피함이란 자존심과 밀접하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표현하거나 이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출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상황이 열악한 이들일수록 심화된다. 즉 이런 예술가들이 아무리 예술인복지지원책의 대상이 된다고 해도 돈을 받기 위해  제도적 절차를 밟는 일은 쉽지 않다. 배우 김운하의 경우에도 예술인 복지법에 따른 지원 대상이었지만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직접적인 현금지원 정책은 매우 불완전하다. 문화예술인들의 정체성과 특성을 크게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별적인 자격 조건에 따른 지원책은 필연적으로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문화예술인은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자격 조건에 따른 지원책은 그 절차적 과정이 문화예술가들의 정체성을 해치기 쉽고 정책집행자들은 제도적 실현의 엄정함을 구축하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특수성을 감안한 제도의 마련은 물론 정책기획과 실행이 필요하다.

문화예술인들은 시장에 내팽개쳐져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소수의 슈퍼스타 경제학을 강화하고, 다양한 문화예술계 종사자를 고사시킨다. 문화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프랑스처럼 정부의 공공적 지원이 더 포괄적이 직접적 이어야 한다. 이는 문화예술노동자들까지 공공적 영역으로 적극 포용해야 함을 의미한다.

일단 기초적인 예술인들의 데이터가 자동 축적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는 부작위의 합리화를 방지하는 것이다. 또한 수동적이 되기 쉬운 문화예술인들의 특징에 맞게 제도 설계를 하는 것이다. 우선 모든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 관련 행사 조직은 시행 프로젝트나 제작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을 의무적으로 문화예술인 데이터베이스에 의무 등록시키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들의 숫자와 활동내용을 객관화 하고, 그들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당연히 지원시스템에서 자동 평가될 수 있다.

또한 문화예술인들의 지원은 작품 활동을 매개로 이뤄지게 해야 한다. 진정 문화예술인들이 원하는 것은 작품 활동의 기회와 활동 공간의 확보이다. 사람들과 그것을 매개로 접촉하고 인정을 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적재적소에 맞는 작품 활동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의 경제적인 문제나 복지가 연계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작품 활동을 못하면, 그에 맞는 기회를 이어주는 일이 그들을 정말로 위하는 것이다. 해외 사례처럼 공공예술인 시스템에 등록을 해놓으면, 작품 활동의 기회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게 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될 때 까다로운 자격여부 판정 절차나 제도적 거리감에 따른 불편함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미진한 시행 때문에 예술인복지차원의 경제적인 차원의 직접적인 지원이 무용하다는 것은 절대 성립할 수 없으며, 문화예술인들의 정체성과 심리적 특성을 파악한 정책적 내실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문화예술가나 관련 산업이나 기업의 종사자의 처우와 복지제도는 그 해당 개개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나 정책적인 정교함이 필요하다. 그것은 고결한 생명성을 지키는 일일 뿐만 아니라 좀 더 다양하고 고양된 작품을 시민들이 향유하게 만드는 일이고 그것이 다시 문화재생산의 토대로 선순환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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