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과의 협상이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구체적인 진전이 없다’고 반박하고 외교부가 수습에 나서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처럼 국내언론과 인터뷰하지 않는 박 대통령이 외신을 통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일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내언론과 인터뷰한 적이 없다. 그러나 외신과는 여러 차례 인터뷰를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CNN’, ‘블룸버그통신’, 중국의 ‘CCTV’, 러시아의 ‘이타르타스통신’, 인도네시아의 ‘KOMPAS’, 인도의 ‘DDTV’, 프랑스의 ‘르 피가로’, 영국 ‘BBC 등등.  

국내언론에서 등장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생각은 외신을 통해 알려진다. 박 대통령은 2013년 9월 러시아 방문 중 러시아 국영 통신사 ‘이타르타스 통신’과 인터뷰에서 “남과 북이 서로 신뢰를 쌓아나가게 되고 또 비핵화가 진전이 된다면 북한의 인프라에 지원하려 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같은 해 10월 인도네시아 국빈 방문 중 인도네시아 언론 ‘KOMPAS’와 인터뷰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한 목소리로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나오도록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외신을 통해 북한이 변화해야 남북관계가 진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

   
▲ 2014년 5월 28일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박 대통령은 같은 해 11월 프랑스 방문 중 프랑스 언론 ‘르 피가르’와 인터뷰에서 “남북관계 발전이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이라며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인터뷰는 박 대통령이 2013년 5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가진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 “지금 당장 그렇게까지 해서(정상회담이) 무슨 효과가 있겠냐”는 발언과 비교되며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태도가 변화한 것 아니냐는 여러 추측을 낳았다. 

지난해 5월 박 대통령은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 실험을 하면 6자회담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교착상태에 있는 6자회담이 완전히 무력화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또한 같은 해 7월 박 대통령은 중국 CCTV와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에 대해 “국가 간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한국 언론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대북정책과 한미‧한일관계 등 박 대통령의 각종 외교 구상을 알기 위해서는 외신을 봐야한다. 

박 대통령의 외신 선호에는 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이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은 논란이 될 만한 정치쟁점에 대해 말을 아끼다 한참 지나서 한 마디 던지거나, 정치평론가인 것처럼 ‘유체이탈’식 화법을 쓴다. 국정원 대선개입 때 침묵하다 뒤늦게 “책임을 물을 것이 있다면 물을 것”이라고 말하거나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물러나자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고 밝힌 것 등이 대표 사례다.

관련 기사 : <말을 적게 할수록 유리한 박근혜 침묵의 정치>

반면 박 대통령은 외교에 있어서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잦은 해외순방이 대표 사례다.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의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이원집정부제에서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고, 대통령은 외교‧국방만 담당한다. 외교나 국방은 내치와 달리 ‘전문성’을 인정받는 분야로, 정책 결정과정에서 반대세력의 반대나 여론의 영향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박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는 해외 순방 시기에 집중된다.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박 대통령은 순방을 가기 전에 해당 국가의 주요 언론과 미리 인터뷰를 한다”며 “해당 국가에 도착하는 날이나 이튿날이면 인터뷰 스크립트가 나오는데, 한국 기자들은 이를 받아보고 쓸 이야기가 있으면 쓴다”고 전했다. 즉 박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는 박 대통령의 외교활동 중 하나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외신과 인터뷰는 박 대통령 입장에서 정치적 부담이 적다. 외신은 민감한 국내정치적 사안들이 아니라 외교문제에 집중해 질문을 던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순방을 앞두고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상황이기에 외신들도 박 대통령과 인터뷰에서 순방의 목표나 해당 국가와 한국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 외신기자는 해외순방 때만 외신과 인터뷰할 뿐 평소에는 소통이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순방갈 때 해당 국가의 주요매체하고 인터뷰할 뿐이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전 정부에 비해 우리(외신 기자)하고 소통이 거의 없다”며 “1년에 한 번 하는 전체 기자회견에서도 내신에 비해 외신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국내언론을 기피하는 데에는 “특종도 낙종도 없다”는 언론관도 담겨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 들어 정보를 특정 언론에 흘려 여론을 파악하는 행동도 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언론에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혼란’이라고 여기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에 기인한다고 전한다. 

지난 2013년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윤창중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인수위 출범 전후로 낙종도 특종도 없다”는 말을 남겼다. 인수위는 ‘오보를 막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언론에 이야기가 새나가는 것을 꺼리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담겼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초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기자들이 걱정 많은 거 아는데요. 제가 (특정 언론사를) 낙종(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지난번 비대위는 어떤 촉새가 나불거려 가지고”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 박근혜 정부 들어서 보수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온 보수언론에도 청와대발 기사가 잘 나오지 않고 있고, 인사가 있기 전 쏟아져 나오는 예상, 하마평 기사도 많이 줄었다. 청와대는 오보와 쓸데없는 혼란이 줄었다고 판단할지 모르지만, 박근혜 정부의 ‘불통’을 상징하는 현상이다.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안 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자들이 불만이 많다. 그런데 인터뷰를 안 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제기하진 않는다”며 “우리 언론의 특성상 어느 한 군데랑 하면 따른 데서 난리가 나지 않겠나. 그래서 사실 시도를 안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