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아시아투데이 전 논설위원이 쓴 <촌지>(지식공방)라는 책을 봤다. 제목 그대로 기자들이 받아먹거나 뜯어먹는 추악한 촌지 실태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지방 출장과 해외 취재를 빙자한 호화 술판과 성매매에 이르기까지 인간이길 포기한 기자(棄者)의 적나라한 맨살을 드러낸다.

기자의 이런 고백이나 고발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김 전 위원이 일선에서 일하던 시절과 지금의 언론 환경은 많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촌지’에 관한 한 그때보다 훨씬 맑아졌다고 본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언론계의 구습이 있다. ‘연감 강매’다. 출입처 취재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가장 광범위한 피해자를 양산한다. 구습이라 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사기나 공갈이다.

업계에선 다 아는 일이지만 신문사의 연감은 행정기관이나 단체, 학교, 기업의 각종 현황·통계 자료를 이것저것 짜깁기하여 만든다. 애초 자기들이 생산한 저작물이 아니다. 거기에다 자료를 제공한 기관·단체·학교·기업의 광고를 붙여 1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다.

문제는 그 이후다. 공공기관 자료를 자기 저작물로 둔갑시켜 그만한 광고수익을 남겼으면 그 책은 무료로 배포하는 게 최소한의 염치라도 보이는 일이다. 되레 고가의 가격을 매겨 팔아먹는다. 19만 9000원 짜리도 있고, 그보다 훨씬 비싼 것도 있다. 방식도 고압적이다. 출입기자들을 동원해 각 출입처에 수십 권씩 떠안기거나, 판매대행업체를 통해 일방적으로 택배를 보낸 후 기자를 사칭하며 전화를 걸어 입금하라는 식이다. 이런 피해자는 내 주변에도 널렸다. 식당이나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중소기업주, 관변단체나 직능단체는 물론 시민단체도 울며 겨자 먹기로 연감을 산다.

신문사만 이런 게 아니다. 기자들도 모르는 ○○기자클럽, △△기자연맹, ××기자연대 같은 언론단체들도 이런 식으로 책을 판다. 한국조사기자협회처럼 실제 현직 기자들이 가입해 활동 중인 곳도 ‘연감부’라는 걸 만들어 그런 짓을 한다. 이 단체는 매년 <기자가 본 남극 그리고 북극>, <기자가 본 대한민국 땅 독도>와 같은 책을 만들어 일단 택배로 보낸 후 전화로 입금 요청을 한다. 그 연감부가 판매대행업체인지 실제 조사기자협회 소속부서인지 질의해 봤지만 끝내 답을 받지 못했다.

이런 단체들은 심지어 남의 신문사 기자를 사칭하기도 한다. 우리 신문에 맛집으로 소개됐던 한 식당 업주는 경남도민일보 기자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신문에 나온 뒤 효과는 좀 있느냐”고 천연덕스럽게 생색을 내더란다. 보내온 책은 <세계테마기행 유럽편 Ⅰ, Ⅱ>이었는데, 택배 상자에는 ‘사단법인 한국기자연대’라는 단체명이 인쇄돼 있었고, 택배 운송장의 보낸이 이름은 ‘도민’, 주소는 ‘한국기자클럽’이었다. 또 황당하게도 책 발행처는 ‘한국신문방송기자연맹’이었다.

이건 작은 문제가 아니다. 피해자들이 너무 많다. 그렇게 당해본 사람은 모든 언론을 싸잡아 사기꾼 또는 공갈꾼으로 본다. 언론 전체의 신뢰가 걸린 문제다.

   
▲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출판미디어국장
 

언론노조나 기자협회가 나서야 한다. 그런 짓을 하고 있는 신문사나 단체가 자정에 나설 리는 만무하다. 노조와 협회가 ‘언론사 및 언론단체 책 강매 신고센터’를 열고 사례를 수집해 공개하는 한편 경찰에 고발하는 작업을 병행한다면 오래지 않아 근절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게만 된다면 노조와 협회에 대한 국민의 사랑은 물론 언론 전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소속 지부나 지회가 자기 회사의 그런 짓을 묵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급단체가 나서서 그런 활동을 하는 게 부담스러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론노조와 기자협회마저 그걸 끊어내지 못한다면 언론을 빙자한 사기꾼과 공갈꾼을 역시 방조·묵인하는 결과가 된다. 초창기 전교조가 촌지 근절 운동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듯이 우리 내부 문제부터 도려내 진정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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