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이름도 생소했던 이 ‘병명’을 지금은 전 국민이 다 알게 됐다. TV 뉴스를 켜기만 하면 메르스 얘기고, 신문도 메르스 기사로 넘쳐난다. 거의 도배 수준이다. 이런 현상은 메르스 최초 발병이후 20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보도량과 비례해서 메르스 감염자 수는 계속 늘어 어느새 100명을 훌쩍 넘었다. 감염자가 100명을 넘은 건 전 세계를 통틀어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뿐이다. 메르스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중동에서 자국민들에게 ‘한국 입국을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메르스의 급속한 확산, 불가항력이었을까.

한국에서의 메르스 확산보다 훨씬 심각한 사태가 지난해 발생했다. 아프리카를 휩쓸었던 에볼라 바이러스 얘기다. 에볼라와 메르스 모두 동물을 매개로 사람에게 전염되는 ‘수인성 질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바이러스 질환이라는 점 외에도 에볼라와 메르스는 공통점이 또 있다.

바로 ‘스치기만 해도 옮는다’ ‘걸리면 죽는다’는 식의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심이다. 이런 불안감과 공포심은 어디에서 왔을까.

10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 8일부터 12일까지 닷새간 열린 ‘세계과학기자대회’ 세션의 하나로 ‘에볼라 보도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 세션엔 지난해 에볼라가 창궐했던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을 현장 취재했던 기자들과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의사 등 수십 명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시에라리온 출신 우마루 포파나 기자다.

포파나 기자는 2014년 5월 25일, 시에라리온 최초 에볼라 확진 환자 발생 이후 끈질긴 취재를 통해 에볼라 사망자의 시신이 비인간적으로 매장되는 행태 등을 BBC나 로이터 등의 글로벌 매체에 보도해 정부와 국민의 변화를 이끌어낸 베테랑 기자다. 포파나 기자의 말이다.

“감염이 확산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취재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았다. 정부는 발병 초기 발병 사실 자체를 은폐하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결과는 시에라리온 전역에서 에볼라 감염자가 속출하며 수천 명이 숨졌다.

‘공무원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았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메르스 발병 초기 정부는 감염 지역과 병원 정보같은 핵심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혼란’과 명단공개 병원에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를 댔다. 결과는 일반 국민은 물론 전문가인 의사들까지 메르스에 무방비로 노출, 결과적으로 ‘혼란’ 정도가 아닌 메르스 급속 확산이라는 ‘재앙’을 초래했다.

“‘한국’과 ‘메르스’만 ‘시에라리온’과 ‘에볼라’로 바꾸면 똑같아 보인다.”

기자의 말이 아니다. 메르스 관련 외신 보도나 한국에서 발행되는 영자신문을 본 뒤 포파나 기자가 들었다는 느낌이다. 적어도 이번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서 우리나라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수준임을 세계과학기자들 앞에서 ‘공인’받은 것이다.

   

▲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8일 오전 대구국제공항 국내선 입국장에 발열 감지기가 설치돼 당국이 내국인의 발열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대구국제공항은 그동안 국제선 입국장에만 발열 감지기를 설치했지만 이날 국내선 청사로까지 운영을 확대했다. ⓒ 연합뉴스

 

 

캐나다 일간지 ‘토론토스타’의 의학전문기자 제니퍼 양의 발언도 인상적이었다. 양 기자는 당시 편집국의 감염 우려에도 시에라리온 현지 취재를 감행한 기자생활 6년차의 열혈 여기자다.

“편집국엔 방탄조끼도 있고 납치 됐을 때 대응 매뉴얼도 있지만 에볼라는 새로운 영역이었다. 하지만 위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었던 점이 오히려 취재에 나서게 된 이유다” 양 기자가 시에라리온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유다. 시에라리온 국민들의 에볼라 공포를 지켜본 양 기자의 말이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증폭시킨다 사람들이 제대로 된 올바른 정보를 얻게 되면 불필요한 과민 반응은 제어될 수 있다”

제대로 된 정보라... 메르스 확산 방지 대책이라며 친절하게 ‘낙타와의 접촉을 피하라’ ‘낙타 고기는 완전히 익혀서 먹어라’는 식의 ‘정보’를 제공했던 정부야 그렇다 치고, 언론은 어땠는가.

‘한 사람이 수십 명 감염, 메르스 슈퍼 전파자?’ ‘병원 내 감염 넘어 지역사회 감염 나오나?’ ‘응급실 외에서 첫 환자 발생, 4차 감염?‘ 식의 불안을 자극하는 기사나, ‘추가 감염자 몇 명 발생, 감염자 몇 명으로 늘어’ ‘임산부 감염 첫 확인’ 식의 ‘숫자’와 ‘처음’ 보도에 경쟁적으로 매몰됐던 것은 아닐까.  

‘숫자’와 관련해 세션에 참석했던 세계 최고의 과학 저널 ‘사이언스’ 필진 카이 쿠퍼슈미트는 “에볼라의 경우 올해 1월까지 최소 55만 명에서 최대 140만 명이 감염될 것이란 모델링이 있었다”며, 근거나 설명 없는 수치의 나열은 불안감과 공포감만 증폭시킨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엔 온갖 괴담과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바세린을 코에 바르면 메르스에 안걸린다’는 식의 황당한 얘기까지 ‘메르스 예방 대책’이라며 떠돌고 있다. 학교는 문을 닫고, 거리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래도 불안은 가시지 않아 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은 곳은 일단 피하고 본다.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심. “메르스 때문이 아니라 손님이 없어서 죽겠다”는 TV뉴스에서 본 어느 상인의 하소연은 그래서 그 절박함 때문에, 그 코믹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가 없다.

‘올바른 정보를 얻지 못하면 불안이 증폭된다’는 양 기자의 말이나 쿠퍼슈미트의 지적은 그래서, 시에라리온을 말하고 있지만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뼈아프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지부 윤주웅 홍보이사는 “초기에 패닉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경각심을 일으키기는 보도가 필요하다.”면서 “기자들이 정책과 여론에 영향을 줘야한다.”고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초기에 패닉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경각심을 일으키는 보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못했다’는 질책으로 들렸다. 역시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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