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전화하셨어요? 잘 모르겠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10일 미주중앙일보 기자가 수화기너머로 말했다. 한국언론은 미주중앙일보발 기사로 희대의 ‘입학사기’ 오보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시작은 미주중앙일보 워싱턴DC에서 6월2일 송고한 기사 <미 최고대학들이 주목한 한인 천재소녀…TJ 김정윤 양, 하버드·스탠퍼드 두 곳서 동시 입학 특별 제안>에서 출발했다. 

해당 기사를 쓴 객원기자 전영완씨는 교육전문 컨설턴트다. 수년전부터 미국에서 아이비리그 등 대학진학칼럼을 써왔다. 대학입학관련 정보에 밝은 전씨는 김정윤(18)양이 하버드‧스탠포드 동시입학 제안을 받았다고 최초 보도했다. 김 양은 버지니아 토마스 제퍼슨 과학고 12학년이며 영어이름은 새라 김이다. 미주중앙일보는 이미 2014년 12월19일 기사에서 “김정윤 양이 하버드대의 제한적 조기 전형에 지원해 합격통지를 받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주중앙일보는 김 양의 성적까지 구체적으로 공개하며 “하버드와 스탠퍼드는 합의하에 김 양으로 하여금 스스로 졸업할 대학을 결정토록하기 위해 스탠퍼드에서 1~2년, 하버드에서 2~3년 동안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보도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기사에는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로부터 김 양이 직접 전화를 받았다는 일화도 덧붙여있었다. 이 정도면 미국 현지 언론도 다룰법한 사건이었다. 

   
미주중앙일보 6월2일자 보도.
 

학벌중심사회 한국에서 ‘천재소녀’의 등장은 화제였다. 김 양의 아버지 김정욱씨가 중앙일보 워싱턴특파원 출신이란 사실까지 더해지며 김 양의 ‘신상’에 대한 믿음은 강해졌다. 미주중앙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뉴시스·연합뉴스 등 통신사가 앞 다퉈 김 양을 ‘한인천재소녀’로 소개했다. 5일 CBS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한 김정윤 양은 “저는 아마 하버드 졸업장을 받을 것 같다”며 합격 사실을 기정사실화했다. JTBC 등 방송에서도 김 양의 합격소식을 ‘미담’으로 소개했다.
   
당장 당사자 본인의 인터뷰까지 나온 마당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김 양의 기사에 “자랑스럽고 고맙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김 양의 합격 사실이 거짓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자 채널A가 9일 <박정훈의 뉴스TOP10>에서 의혹을 반박했다. 채널A는 김정윤 양 가족과 인터뷰를 통해 “하버드 입학은 보통 애들하고 정식절차가 달랐다. 하버드와 스탠퍼드가 합의를 해서 연락을 해왔다”고 해명했으며, “질투 때문에 생기는 의혹”이라고 보도했다.

   
▲ 김정윤 양의 합격을 둘러싼 의혹을 반박하는 채널A 9일자 보도 화면 갈무리.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경향신문은 애나 코웬호번 하버드대 공보팀장과 인터뷰를 통해 10일 “김정윤 양이 갖고 있는 하버드 합격증은 위조된 것”이라고 단독 보도했다. 코웬호번 팀장은 김 양의 아버지인 김정욱 넥슨 전무가 경향신문에 제공한 합격증을 보내 진위 위부를 묻자 이 같이 밝혔다. 코웬호번 팀장은 “한국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달리 스탠퍼드대에 2년 간 수학한 뒤 하버드대에서 공부를 마치고 어느 한 쪽으로부터 졸업장을 받는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전이었다. 스탠퍼드대 리사 라핀 대외홍보담당 또한 경향신문을 통해 “김양 측이 공개한 스탠퍼드 합격증은 위조됐다”고 밝혔다. 제대로 된 검증 한 번 없이 미담을 쏟아내기 바빴던 한국 언론의 망신스러운 순간이었다. SBS는 이날 “현지거주 학부모들은 하버드와 스탠포드 두 대학 동시 입학이 거짓말이 아니냐는 의문을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강하게 제기해 왔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워싱턴 한인 커뮤니티에는 “한국미디어의 팩트체킹 능력은 최악”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렇다면 첫 보도였던 미주중앙일보의 기사는 거짓일까. 중앙일보측은 10일 오보논란에 대해 “미주중앙일보에 확인하라”고 밝혔다. 미주중앙일보 워싱턴DC 편집국과는 통화연결이 이뤄지지 않았다. 김 양의 아버지 김정욱 씨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학교 교수들과 수십 차례에 걸쳐 연락을 해왔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며 “가족들을 만나 사실 관계를 파악한 뒤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김정윤 양의 하버드·스탠퍼드 대 동시 합격 소식을 전한 JTBC 보도 화면 갈무리.
 

10일 언론보도를 통해 김 양이 갖고 있던 합격통지서는 위조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김 양 가족이 유학 브로커로부터 사기를 당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김정욱 선배는 워싱턴특파원을 마치고 공부 잘하는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회사를 옮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미주중앙일보의 첫 보도내용이 꽤나 구체적이어서 김 양이 피해자인지, 또는 미주중앙일보 기자가 소설을 쓴 것인지는 현재로선 단정할 수 없다.

한편 이번 사건은 온라인커뮤니티에서 보도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며 언론에 등장했다. 김양은 지난해 MIT에서 주최한 제 4회 ‘프라임스 미국(PRIMES USA)’이라는 연구 프로그램에 그래프 이론에 대한 논문을 냈는데, 미주중앙일보는 “이 연구에 대한 김양의 수학적 증명이 완성되면 전 세계는 또 한 번의 거대한 컴퓨터 혁명을 맞게 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해당 논문이 별 볼 일 없으며 표절의혹마저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등장에 환호했던 언론은 머쓱해졌다. 김 양의 하버드 입학을 강력히 원했다는 인물로 소개된 하버드대 조셉 다니엘 해리스 교수는 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김 양에게 건네진 의혹의 합격증은 가짜”라고 밝혔다. 하지만 채널A 보도에서 동일 인물인 해리스 교수는 “김 양이 2019년부터 하버드 수업을 듣게 되고 내년부터 1~2년간 스탠퍼드에서 공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채널A의 해당 방송은 현재 삭제돼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 채널A 관계자는 “방송직후인 어제 밤(9일) 사실 확인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며 “오늘 상세한 속보가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언론이 만든 ‘천재소녀’의 최후는 김 양 가족의 추가적인 해명과 미주중앙일보 측의 입장이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언론이 쏟아낸 다량의 ‘홍보성 기사’는 이미 씁쓸한 최후를 맛봤다. 한편 미디어오늘은 해당 기사를 최초로 작성한 전영완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현재까지 회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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