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메르스 관련 검역에서 사실상 손을 놓기 한달 전 세계보건기구 WHO가 메르스 감염의 급증을 경고하며 회원국들에게 검역 강화를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디어오늘은 최근 새누리당 이종진(보건복지위)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질병관리본부의 ‘건강상태질문서 징구현황’에서 질병관리본부가 2014년 6월 11일자로 중동호흡기 증후군을 자진신고제로 전환하여 건강상태질문서 징구를 사실상 중단했음을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따라 2015년 1월부터 메르스 첫 발병 하루 전인 5월 19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항공편으로 입국한 9039명 가운데 건강상태질문서 징구가 단 1건에 불과할 정도로 중동 지역 입국자들에 대한 검역은 사실상 중단됐다.

그런데 미디어오늘이 확인 결과, 보건복지부가 메르스에 대한 검역활동을 사실상 중단하기 한 달 전, WHO가 회원국들에게 감염예방과 검역을 강화하라고 권고한 사실이 드러나 보건복지부가 WHO의 권고를 무시해 사실상 메르스 방역에 손을 놨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메르스에 대한 감염예방과 검역 강화를 권고한 WHO의 문서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WHO의 2014년 5월 14일 권고문(WHO statement on the Fifth Meeting of the IHR Emergency Committee concerning MERS-CoV)에 따르면, WHO는 메르스에 대한 감염 예방과 검역에서의 시스템적 취약함 그리고 국가간 전염의 가능성이 급증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회원국들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했다. 그 조치란 국가가 나서서 메르스 감염예방과 검역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또한 WHO는 지방의 모든 보건 시설들에서 감염예방과 검역의 강화를 수행할 것과 정책결정자들과 보건 전문가들 뿐 아니라 공중에게 메르스의 위험성을 알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WHO의 이 권고는 당시 사우디에서만 한달 남짓한 기간에 메르스 환자가 3배 이상 증가하고 레바논과 미국 등지로 감염이 확산되면서 나온 것이었다. WHO는 메르스가 아직까지 세계공중보건위기상황(PHEIC)은 아니라면서도, 현재까지의 정보를 바탕으로 중동호흡기증후군으로 인한 공중보건학적 심각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WHO 회원국인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역시 WHO의 권고에 대해 “해외 중동호흡기증후군 발생 동향과 국가별 대응상황 등을 예의주시하면서, 국내 환자발생 상황에 대비해 공항, 항만을 통한 입국 검역을 강화하고, 의료기관의 환자발생 감시체계를 지속적으로 가동”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이로부터 한달도 지나지 않은 6월 11일, 메르스에 대한 건강상태질문서 징구를 ‘자진신고제’로 전환했다. 

이 때 질병관리본부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검역강화 조치’라는 제하의 공문을 하달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지역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지속 발생으로 인한 국내 유입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전국 국립검역소장은 중동호흡기 증후근이 유행하고 있는 지역으로의 입출국자에 대한 검역조사 및 홍보를 다음과 같이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실제로는 중동 지역 입국자들에 대한 검역의 핵심적인 수단인 건강상태질문서 징구를 자진신고제로 바꿨다. 

검역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입국자들은 고열이나 피로감을 장기간의 여행에 따른 몸살 감기 정도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진신고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검역관이 입국자 개개인에게 ‘건강상태질문서’를 징구하는 것도 자진신고제가 실효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 건강상태질문서 징구를 자진신고제로 전환한 질병관리본부의 6월 10일자 공문
 

질병관리본부가 건강상태질문서 징구에서 ‘자진신고제’로 전환한 6월 11일 이후 건강상태 질문서 징구는 사실상 중단됐다. 본지가 보도한대로 2015년 1월 이후 사우디 1건, 아랍에미리트 17건, 카타르 6건 등이다. 건강상태질문서 징구가 실시됐던 2013년을 보면 사우디 입국자 1만4319명 중 1만1740건, 아랍에미리트 16만6538건, 카타르 6만1113건과 크게 대조적이다. 

질병관리본부 검역지원과 관계자는 “메르스는 솔직히 계속 (환자가)나오는 게 아니라 4,5,6월 등 나오는 시기가 있다. 에볼라가 늘어나니까 메르스는 다시 있을때 총력을 다하자 이런 거였다”며 “만약 에볼라가 들어왔으면 어쩔 것이냐”고 항변했다.

그렇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4월에 들어서도 메르스 자진신고제를 다시 건강상태질문서 징구로 전환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메르스가 급속히 확산되게 된 원인으로 질병관리본부의 검역 방치가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첫 감염자는 입국 후 병원 4곳을 전전하게 됐고 수십명의 2차 감염자가 발생했다. 만일 질병관리본부가 메르스에 대한 ‘관심’ 단계에서 규정된 검역활동과 입국자 홍보만 했더라면 한국이 사우디에 이어 메르스 최다 발병국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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