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동을 걸었다. 언론은 이번 양사의 합병을 삼성의 지배구조 승계 작업이라고 분석하면서 문제점을 짚기 보다는 엘리엇의 주주권 행사에 대해서만 유독 투기자본의 ‘공격’이라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엘리엇은 지난 4일 단 두 문장짜리의 보도자료를 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지분 7%(7.12%)를 보유하고 있고 앞서 5월 26일 발표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계획안이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보도자료에서 엘리엇은 투자전략에 대해 “주주가치 증대와 도덕적인 기업지배구조라는 바탕에 모든 주주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자”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엘리엇은 ‘적극적인 투자자’로서의 면모를 과감하게 보이고 있다. 엘리엇은 국민연금(9.98%)과 삼성물산 주요 주주들에게 이번 합병에 반대하는 서한을 보내며 동의를 구하고 나섰다. 

   
▲ 국민일보 경제 14면.
 

 

엘리엇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주요 언론은 8일 “엘리엇 포함 외국인 지분 33% 손잡으면 삼성물산 합병 위협”(중앙일보), “엘리엇, 추가지분 매입설… 표 대결 가나”(동아일보), “엘리엇, 국민연금 등에서 ‘삼성물산 합병 반대하라’ 요구”(조선일보), “삼성·엘리엇 ‘복잡해진 셈법’” (한국경제), “삼성 vs 엘리엇, 우군 확보 ‘운명의 이틀’”(매일경제) 등 제목의 분석 기사를 내놨다. 

기사들은 엘리엇이 제일모직-삼성물산 인수합병 국면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매일경제는 삼성물산과 엘리엇이 각각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도 엘리엇을 “단순 ‘먹튀’로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안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인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머니투데이는 엘리엇이 이사 파견 요구 등의 당연한 주주권리 행사를 “경영 간섭”이고 “노이즈”라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다뤘다. 

또 엘리엇의 이번 합병에 대한 반기를 드는 배경에 대해서는 ‘시세차익’을 노린다는 분석이 다수를 차지했다. 조선일보는 한범호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의 말을 인용, “삼성물산 공매도가 증가는 엘리엇이 과거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가격이 오르면 차익 실현에 나섰던 것과 같은 행태를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을 전했다.

   
▲ 동아일보 경제 별지 1면.
 

 

조선일보는 4~5일 공매도로 주가가 오르면서 엘리엇이 1457억원의 평가차익을 챙겼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뉴스는 “주총을 한달 앞둔 12일 이후 엘리엇의 주식 추가 매입은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지만 시세 차익 목적은 물론 주요 주주로서 목소리를 내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세계적 헤지펀드 주주행동주의 강화 중… 언론, 간과하지 말아야 

언론은 대부분 엘리엇을 ‘시세 차익’을 노린 ‘먹튀 자본’이라는 기본 프레임 위에 놓고 삼성물산의 대응 방향에 초점을 맞췄다. 정작 엘리엇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대해 제기한 문제에는 크게 집중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언론에 대한 삼성의 강한 영향력이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분석을 무디게 만드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장흥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은 “언론이 삼성 계열사 간 인수·합병에 대해 관전평을 쏟아내고 있지만 평가에는 미약한 부분이 있다”며 “삼성은 지배력 강화를 중심으로 기업 구조를 재배치하면서 소액 주주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못했는데 언론이 그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머니투데이 11면.
 

 

장 팀장은 “언론이 삼성의 경영권을 마치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전제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엘리엇의 당연한 주주권 행사를 ‘먹튀’로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특히 삼성에 대해서는 ‘투기자본과 삼성’, ‘외국 자본과 국내 기업’ 구도로 대립각을 세우는 경향이 있는데 삼성의 강한 언론 영향력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언론이 이미 ‘삼성의 흑기사’로 자처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엘리엇의 합병 비율 적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당연한데 언론이 이런 문제제기를 원천봉쇄하거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태도는 그동안 보수 언론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시장주의를 유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2의 소버린 사태가 난다고 하더라도 삼성의 방어적 장치와 엘리엇의 주주권 행사를 분리해 봐야하는데 언론이 삼성의 ‘흑기사’로 나서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구조를 방어하는 입장에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삼성물산이 외국계 투자자나 소액 주주 등에 합병 과정을 설명하지 않고 그들의 이익을 방치해 스스로 헤지펀드에 공격 ‘초대장’을 보낸 측면이 있다”며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뿐 아니라 국내 기관 투자자도 오래전부터 불만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는 이어 “보수 언론은 이런 사실관계를 빼놓고 엘리엇을 ‘경영 간섭’, ‘먹튀 자본’이라고 비난하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됐다. 어느 방향이 삼성그룹과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한국경제 8면.
 

김상조 교수는 엘리엇이 단순히 ‘먹튀’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제시했다. 최근 엘리엇과 같은 헤지펀드가 주주행동주의 입장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성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이런 점을 간과하고 엘리엇을 ‘SK-소버린 사태’처럼 단순 헤지펀드 관점에서 다루는 것은 상황에 대한 오판이라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언론이 세계적인 헤지펀드의 행동주의에 대한 평가 없이 구시대적으로 엘리엇을 ‘먹튀 자본’식으로 분석했다가는 우리나라 기업 지배 구조가 10년 이상 후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엘리엇 같은 헤지펀드의 약탈적 주주행동주의에 기대 삼성일가의 기업승계를 막아선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엘리엇이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보면 주식매수청구권이나 특별배당금 요청 등인데 모두 삼성물산의 근간을 내주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위원은 “삼성가의 지배구조가 편법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바로 잡자고 약탈적인 헤지펀드를 이용해 재벌을 망가뜨리는 방향으로 가서는 국민경제에 답이 없다”며 “헤지펀드의 약탈적 주주권 행사와 편법적인 기업 승계를 모두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에 투자한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삼성물산이 무너지면 국민연금의 주 재원인 연금 보험료가 사라지게 된다”며 “국민연금이 헤지펀드 편을 드는 것은 알량한 자본투자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민연금의 원천 재원인 기업 자체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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