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갓난아이를 살해하고 택배로 가족에게 보낸 여성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그냥 엽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했으나 후속 보도를 보니 착잡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여성은 만삭까지 식당 일을 했지만 고시텔 월세 25만원을 내지 못할 만큼 어려웠다고 한다. 혼자 고시텔 안에서 아이를 낳고 6일간 아이와 함께 지내던 이 여성은 우는 아이의 입을 막다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었지만 헤어진 남편과 이혼 절차를 밟지 않아 기초생활수급 및 한부모 지원대상 조차 되지 않았다.

각종 복지지원에 대한 소개만 읽으면 우리나라에 이런 복지도 있었나, 다양하게 준비가 잘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소득보장부터 의료, 교육, 해산장제급여까지 함께 제공하는 기초생활보장법이 있고, 긴급복지지원법은 월세부터 병원비, 난방비까지 보조한다. 재난적 의료비 지출에 대한 지원도 있고 한부모 지원도 있으며 일자리도 알선해준다. 이름도 멋지다. ‘서울형 기초생활보장제’, ‘무한돌봄’, ‘희망온돌’, ‘취업성공패키지’ 등. 이 제도를 실제 신청하지 않는 이들이 보기에 한국의 복지제도는 꽤나 화려하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복지제도를 신청해본 사람들은 ‘너무 까다롭다’고 입을 모은다. 선정기준은 낮고, 세세한 자격기준에 완전히 맞지 않으면 지원받을 수 없으며, 지원받더라도 그 수준이 너무 적거나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복지신청자에 대한 혐오를 마주치기도 한다.

   
CC0.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무관합니다.
 

지난 달 빈곤사회연대로 상담전화를 걸었던 한 여성은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신청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며, 도움 받을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다. 이 분의 남편은 알콜성 간질환으로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는데 간병 때문에 일을 나갈 수 없고, 병원비는 계속 나가다보니 살던 집 보증금까지 빼야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신청문의에 대한 지자체의 대답은 단호했다. ‘만성질환은 특히 알콜 같은 것은 지원하지 않는다’,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는 분이 신청할게 아니다’는 것이었다.

긴급복지지원제도의 취지는 긴급한 상황에 빠진 이들이 더 극심한 가난에 빠져들지 않도록 지원하는데 있다. 이러한 취지를 생각한다면 이 여성은 긴급복지지원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긴급복지지원제도는 만성질환으로 인한 병원비 지원은 하지 않고 있다. 제도의 문제와 별개로 ‘특히 알콜’ 운운한 것은 순전히 담당자의 선택이었는데, 이는 신청자에게 깊은 수치심을 주었다. 긴급복지지원제도는 부양의무자기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도움 받으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긴급복지지원제도에 대해 복지부는 신청 후 이틀 안에 지원받을 수 있으며 ‘선지원’이 원칙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구두 거절은 빈번히 일어난다. 복지부 홍보만 보고 전화를 걸었던 이 분은 지원은커녕 깊은 수치심과 좌절만 얻었다.

빈곤층에 대한 복지제도는 무엇보다 신청자의 필요에 따라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빈곤이라는 것 자체가 자력구제가 어려워진 상황을 뜻한다면 이에 대한 지원이 적절히 빠르게 이뤄져야만 해결 역시 빠르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는 신청자의 필요에 대해 듣거나 대응하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두꺼운 지침에 나열된 지원대상에 포함 되는가 포함되지 않는가를 판단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투여되고, 전담공무원들은 지침 이상의 구제행위를 할 만한 권위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부정수급을 색출’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시와 ‘복지 예산 3조 절감’이 필요하다는 전 국무총리의 신호는 실제 부정수급자를 색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복지 수급자를 감시 대상, 도덕적 해이자로 인식하게 할 뿐이다.

기사를 보면 영아 살해를 저지른 여성에게 지적장애 판정이 된 바는 없으나 의사능력이 떨어졌다는 묘사가 있다. 오랫동안 빈곤에 노출되고 불안정한 상황을 전전한 이들이 겪는 전형적인 심리상태인 것 같다. 위험에 직면해 근심에 휩싸이다 보면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이것이 오랫동안 지속되다보면 판단이나 절제를 할 만한 마음의 근력을 잃어버린다. 흔히 가난한 이들이 무절제하고 우발적이며 현명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는 본질이 아니라 가난에 오랫동안 노출된 이들이 겪는 현상이다.

과연 그녀는 단 한 번도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았을까. 한부모 지원을 알아보니 아직 이혼 상태가 아니라 거절당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했으나 근로능력이 있다고 거절당하고, 일자리를 알아보려 했으나 임신 중이라 거절당하고, 하루의 끼니와 잠자리를 하루 종일 걱정하다보니 조금 더 나은 내일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이제 7월이면 개정된 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된다. ‘낮은 선정기준과 보장수준’ 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미결한 채 시작되는 개정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시작도 하기 전에 ‘복지 구조조정’ 이라는 정부의 강력한 주문에 부딪혔다. 복지제도는 신청자의 필요가 아니라 강화된 자격심사의 범주에 들어오는 이들만을 끌어안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과연 개정된 기초생활보장법은 송파 세 모녀를, 엄마에게 살해 된 영아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희망적이지 않다. 있어봤자 신청도 못 하거나 받아봤자 도움도 안 되는 복지가 아니라, 튼튼하고 실효성 있는 복지가 빈곤층에게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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