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지 일주일째인 지난달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보건복지부에 한 가지를 주문했다. “복지부와 농식품부, 식약처는 식품안전, 보건, 방역과 관련해서 꼼꼼하게 정비하기 바란다.” 여름이 시작된다며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태풍, 폭우 등 자연재해와 여름철 안전사고 등을 대비하자며 꺼낸 말이다. 

이어 박 대통령은 사고의 예방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훈련에서의 땀 한 방울이 전쟁에서 피 한방울이다. 사고가 났다하면 물론 수습해야하지만 힘도 많이 들고 이미 많은 사람이 희생된 후이다. 미리 현장도 챙기고 사고 없이 올해를 나는 그런 해를 만들어 보겠다 결심하면 사고가 나더라도 줄어들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만 보면 보건복지부 관련 안전 이슈가 아무것도 없는 듯 해보였다. 아니 대한민국에 아무런 일도 벌어지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각 부서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보겠다는 결심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날은 세 번째 감염자를 간호하던 딸이 네 번째 감염자로 확인된 날이다. 

   
▲ 지난달 27일인 '문화가 있는 날' 박근혜 대통령은 예술의 전당을 찾아 허영만 화백의 전시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대통령은 동요하지 않았다. 다음날인 5월 27일 오후 박 대통령은 예술의 전당을 찾아 허영만 화백의 전시를 감상했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4월  문화가 있는 날은 세월호 참사 1주기 날부터 있었던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다녀온 직후 건강이 좋지 않아 문화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5월 28일.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질병관리본부장이 주관해오던 메르스대책본부를 보건복지부 차관이 총괄하도록 개편했다. 메르스 2차 감염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날도 메르스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메르스 감염자가 없는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내외가 한국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대통령 공식일정이다. 

5월 20일 
오전 서울디지털포럼 2015 개막식
오전 '쉐이카 모자'카타르 모후 접견
오후 '이리나 보코바'유네스코 사무총장 접견
오후 '반기문'유엔 사무총장 접견

5월 21일 
오후 '믹타(MIKTA)'외교장관 접견

5월 22일
오전 충남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
오후 충남지역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산학연 오찬
오후 천안 고용복지플러스센터 현장방문

5월 26일 
오전 제22회 국무회의
오후 나카오 타케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 접견

5월 27일 
오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소기업인과의 대화
오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소기업인과의 오찬
오후 문화가 있는 날 행사(아홉 번째)

5월 28일 
오전 '카리모프'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내외 국빈방문 공식환영식
오전 방명록 서명 및 기념촬영
오전 단독 정상회담
오전 확대 정상회담
오후 협정서명식
오후 美 하원의원 대표단 접견

5월 29일 
오전 제22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무인 이동체 및 엔지니어링 산업발전 전략보고회

미국은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메르스 환자로 확진되거나 의심되면 접촉을 통했든 공기를 통했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하도록 권하고 있다. 매뉴얼에 따라 환자 관리법이나 병실 공기 관리까지 이루어진다. 영국도 감염병이 발생하면 지역거점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환자를 상담하고 지역거점 공공병원은 물론 감염격리병실과 감염격리병동까지 갖춰놓았다.  

하지만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는 그렇지 못했다. 지난 1일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을 향해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보름동안 미 하원의원 대표단, 중국 상무부장, 스위스 외교장관 등 7번 해외인사를 만났고, 두 번 창조경제관련 일정을 소화하는 등 바쁘게 보내고 있었는데도 신문·방송에 메르스로 도배가 됐다. 

   
▲ 영화 <감기>의 한 장면.
 

호흡기로 감염되는 전염병이 순식간에 퍼지자 도시 폐쇄 조치까지 내려지면서 격리된 사람들이 혼란을 겪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감기>가 SNS상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에서 격리자들을 향해 폭격을 시도하자 한국의 대통령(차인표 분)이 나서 국민들을 지키겠다며 수도방위사령부에 전투기를 요격하라며 맞선다.

폭격을 막은 대통령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정부는 그 어떤 경우에도 국민 여러분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모든 진압작전을 중단시켰습니다. 이제부터 안심해도 됩니다. 지금 그 자리에 계시면 구조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영화에서 대통령이 가만히 있어달라고 하자 국민들은 안도한다. 

박 대통령도 지난 3일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 영화 <감기>에 나오는 대통령과 비슷한 얘기를 꺼냈다.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계신다. 더 이상 확산이 안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겠다”, “오늘 회의가 끝난 뒤 지금의 문제점과 진원지, 발생 및 경로를 철저하게 처음부터 분석해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지 보름, 감염자 중 사망자가 두 명이나 나온 뒤에 박 대통령이 꺼낸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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