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번째 생일날, 전교조는 '노조 아님'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선고를 받았다. 헌법재판소가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것. 재판관 8명이 합헌 결정을 내렸고 김이수 재판관만 반대 의견을 냈다. 교원노조법 제2조는 해직 교사 등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할 경우 노조로 인정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전교조에는 9명의 해직교사가 조합원으로 있다. 전교조 조합원은 6만여명이다. 0.015%의 수준이다. 

헌재의 판결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면 교원이 아닌 사람들이 전교조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노조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해친다. 게다가 교원이 아닌 사람이 노조를 통해 정부를 상대로 임용, 지위 등에 관해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실익도 없다. 따라서 조합원을 재직 중인 교원으로 한정하는 것은 교원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국민 전체의 공공이익에 기여한다.”

다만 헌재는 교원노조법 제2조의 인정이 곧 ‘노조아님 통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조합원 자격 제한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해도 설립신고를 마치고 정당하게 활동 중인 전교조의 법상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 항상 적법한 것은 아니”라며 “정부는 여러상황을 종합해 법외노조 여부를 판단하여야 하고 법원은 이에 대해 적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한 부분이다. 공을 다시 2심 재판부로 넘긴 것인데 최고의 사법기관의 판단치고는 조금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다. 헌재 판단에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보았다. 

 

   
▲ 전교조가 지난 28일 헌법재판소 판결 직후, 헌재 앞에서 26번째 창립일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1. 9명의 해고자, 실제로 노조 자주성을 침해했나? 
헌재 다수 재판관은 “교원이 아닌 사람들이 전교조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노조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해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교원노조법은 교원노조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제3조)을 이미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직교사가 조합원에 포함된다고 해서 전교조가 정치화되거나 이로 인해 교육의 공공성이나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가 저해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게다가 노조법 제2조 4호 단서 조항에는 형식적 요건과 실질적 요건이 있다. 형식설은 해고자가 단 1명이라도 노조에 가입·활동하는 경우 노조아님 통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질설은 해고자의 인해 노조의 자주성이 ‘실질적으로’ 훼손될 때 노조아님 통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고자 9명이 전교조의 자주성을 침해한다고 판단할 근거가 없다면 실질적 요건에서는 노조아님을 통보할 수 없게 된다. 헌재 판단은 형식적 요건에만 기반했다. 

2.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왜이래?
문제는 정부가 ‘갑자기’ 교원노조법 제2조를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설립 당시인 1999년부터 부당해고된 교원의 조합원 자격 유지를 정한 규약을 두고 있었다. 정부가 해직교사의 조합원 자격에 대해 지적한 건 지난 2009년 6월 이후부터였다. 당시 전교조 교사들은 정부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정부는 2010년 3월, 전교조 해당 규약에 대한 시정을 명령했다. 

이런 상황은 역설적으로 교원노조법 제2조가 노조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이수 재판관은 “전교조 조합원 중 단 1명이라도 교원노조법 제2조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포함돼 있을 경우 사법 기관이 노조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행정 조치라 할 수 있는 법외노조를 통보할 수 있는 이상, 해당 조항이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전교조 탄압을 위해 악용될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전교조 사무실. 사진=민중의 소리
 

3. 해고자끼리 다른 노조 만들라고?
다수 재판관은 교원아닌 사람들끼리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해직교사의 조합원 자격 박탈이 전교조의 단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노동조합법 제2조에 따르면 일시적으로 실업 상태에 있거나 구직 중인 사람도 노동3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따라서 다수 재판관은 해직교사나 예비교사가 “노동조합법에 따라 노조를 설립하거나 그에 가입하는 데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고 밝혔다. 교원노조가 아닌 다른 노조를 만들라는 이야기다. 

이는 현실적이지 않다. 교원노조는 다른 노조와 다르게 정부 등과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진다. 조직 역시 타노조와는 달리 시. 도 단위 또는 전국단위로만 조직이 가능하다. 교원노조 그 자체로 산업별, 직종별, 지역별 노조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예비교사나 해직교사로만 구성된 노조는 정부 등을 상대로 단체교섭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들이 다른 노조, 가령 금속노조나 언론노조에 가입하는 것도 이상하다. 

4. 24년 지났는데 왜 안 변하나
1991년 헌재는 1500여명에 달하는 전교조 조합원의 해고를 정당화했다. 헌법 제31조 6항(교원지위법정주의)이 헌법 제33조 1항(노동3권)에 우선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교원의 지위를 우선시한다면서 전교조를 불법화하는 논리를 제공했다는 게 당시 헌재 판결에 대한 평가다. 24년이 지난 지금도 헌재 판결의 근거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석 전교조 법률지원실장은 “헌재는 지금도 ‘현직 교원들만 정부로부터 다양한 보장을 받고 있다는 교원의 특수성을 내세워 해직교사는 조합원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치는데 결국 교원의 지위를 우선시하면서 6만 조합원의 노동권을 박탈하는 셈”이라며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법 어디에도 교원의 지위가 노동 3권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 

 

   
▲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고용노동부가 해직 교원들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전교조의 규약을 문제 삼아 법외노조로 통보한 근거인 교원노조법 제 2조에 대해서 판결을 위해 헌법재판관들이 앉아 있다.사진=민중의소리
 

5. OECD국가 어디에도 없는 기준
한국과 같은 기준을 가진 나라는 얼마나 될까. 일단 OECD 가입국 중에는 ‘없다’. 실제 OECD과 국제노동기구(ILO)는 전교조 법외노조화와 관련해 한국에 수차례 권고 등을 했다. 국제기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헌재도 이런 사실을 알았다. 헌재 다수 재판관은 “하지만 이런 국제기구의 권고를 위헌심사의 척도로 삼을 수는 없고 국제기구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교원노조법 제2조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한국의 바뀐 태도다. 한국 정부는 OECD에 가입하기 위해 ‘교사와 공무원의 노조 활동 보장’을 약속한 바 있다. ILO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정부가 가입된 ILO의 핵심 협약 중 하나가 "노동자는 사전인가를 받지 아니하고 스스로 선택해 단체를 설립하고 그 단체의 규약을 따를 것만을 조건으로 그 단체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다. 

이를 정부가 비준하게 되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비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하고 있다. 국제기구에 가입했다는 것은 협약을 지키겠다는 기본 전제가 있다고 봐야하는데 비준을 안 했기 때문에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헌재의 이번 판단은 정부의 이런 무책임한 태도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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