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관지원자에 대한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면담이 큰 문제가 되었다. 법관의 자격은 무엇인가. 일단 사법연수원이나 법학전문대학원을 수료한 사람 중에 성적이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헌법은 법관의 자격을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제101조 3항), 법원조직법 제41조 3항은 ‘판사는 인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고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받아 대법원장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자격은 변호사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10년 이상 일 것을 요구하며, 현재는 과도기적으로 그 미만의 사람도 선발하고 있다. 반대로 법관이 될 수 없는 사람을 규정하고 있다. 즉, 다른 법령에 따라 공무원으로 임용하지 못하는 사람,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 탄핵으로 파면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은 법관이 될 수 없다(제43조)

이러한 법관의 자격을 판단하기에 앞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바로 헌법상 재판의 독립성 보장이다. 우리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명시하고, 사법부 독립을 엄격히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재판을 경험한 국민들은 재판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았다. 정치편파적인 판결을 한다. 젊은 판사들이 세상물정을 모른다. 판사가 막말을 한다. 국민은 재판을 신뢰하지 못하고, 재판은 법관 그들만의 세계가 되었다. 대법원 사건이 폭주하여 대법관 1명이 처리하는 사건의 수가 천문학적이라고 불평하면서도, 정작 대법관을 증원하자고 주장하면 전면 반대하는 게 현실이다. 그 동안 사법부는 사법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하고, 경력직 법관을 선발하기로 했다.

   
 
 

특히 경력직 법관선발은 대국민 사법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상당시간 연구되어 시행된 제도다. 이처럼 법조일원화는 오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제도는 사법신뢰제고와 정의실현, 재판의 독립이라는 중대한 헌법적 가치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출발했다. 이번 사건으로 법조일원화의 길목을 최고 국가정보기관이 가로막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원 직원이 경력직 판사 지원자를 직접 면담하거나 별도의 정보수집을 통해 지원자의 ‘국가관’을 검증하는 절차를 한 것이다. 특히, 300여명의 어린 학생들을 희생시키고도 정부와 어른들은 아무런 구조활동의 성과를 내지 못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생각을 묻는 일종의 ‘사상검증’을 했다고 한다. 이 또한 헌법이 보장한 양심과 사상의 자유, 그 본질을 침해한 것이다. 해당 질문을 받은 법관지원자가 스스로의 양심에 기초한 답변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재판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는 대법원이 스스로 지원자 명단을 국정원에 넘겨주고 신원조회를 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에 있다. 법조일원화의 목표, 즉 경력직 법조인을 판사로 임용하려는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 법조경험이 풍부한 법조인을 판사로 임용하여 그 사람의 법조경험을 잘 살리고,  승복할 수 있는 판결을 하여 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줄이고 사법정의를 실현하자는데 있지 않는가. 그런데 대법원이 제도의 본질을 스스로 외면하고 재판의 독립성을 포기하면서까지 국가정보기관에 법관 지원자의 사상검증을 요청한 사실에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놀라움을 금할 길 없다.
 
이 사건에 대해 국정원과 대법원의 해명은 이러한 신원조회가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 제54조 제1항 및 법원인사규칙에 근거하여 시행된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해명을 냈다. 국정원 신원조사의 목적은 ‘국가보안을 위한 국가에 대한 충성심·성실성‧신뢰성 조사’이다. 법관의 자격은 헌법과 법률이 규정하고 있고, 그 자격 어디에도 충성심‧성실성‧신뢰성은 없다. 충성심‧성실성‧신뢰성은 매우 추상적이고 자의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이에 대한 판단을 국가 최고정보기관이 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리고 누구를 위한 충성심인지 묻고 싶다.

국정원이 법조인에 대한 정보수집, 즉 개인사찰을 통해 축적한 자료를 토대로 자신이 정한 기준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스스로 정한 기준에 의해 법관 지원자의 충성심‧성실성‧신뢰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그 사람은 법관으로 임용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헌법이 정한 법관의 자격을 법률이 아닌 국정원이 정하는 셈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판사 지원자에게 ‘세월호 사건에 대한 견해나 노조 활동에 대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물어보았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충섬심의 기준이 현 정권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심각해도 너무 심각한 상황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의해 선발되어야 한다. 헌법과 법률 그 어디에도 법관의 자격에 관하여 ‘충성심’을 요건으로 하고 있지 않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무엇인가? 현정부에 비판적인지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국정원의 기준에 들지 않으면 법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정한 기준을 통과한 사람만이 법관이 되는 이 무시무시한 ‘초헌법적’인 현실 앞에 우리 헌법과 사법부의 독립은 대단히 무력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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