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이 무너졌다. 언론계 곳곳에서 심심찮게 제기되는 지적이다. 무너진 공영방송의 지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시사 프로그램이다. 정·재계 권력 핵심을 겨냥해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던 KBS와 MBC의 시사 프로그램은 이명박 정부 이후 속속 폐지됐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종합편성채널 류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이다. 깊이 있는 분석 대신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말 잔치’만 남았다. 이명박 정부 이후 사라진 KBS와 MBC의 시사 프로그램과 후속 프로그램의 계보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성역없는 비판과 촌철살인, ‘시사투나잇’ 빈 자리는 컸다

[KBS의 현재] 라인업 회의도 유명무실, PD 자율성 축소, 경영진 논조 충실히 구현

정·재계 권력 비판에 성역이 없었던 KBS 시사 프로그램들이 지난 10여년 간 속속 폐지됐다. 새로 론칭된 시사 프로그램은 종합편성채널 따라하기라는 비난을 받는 등 공영방송이 눈길을 끄는 시사프로그램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KBS 15~17대 사장으로 취임한 정연주 전 사장(2003년 4월~2008년 8월)은 <시사중심>(2005년 12월1일)과 <시사기획 쌈>(2006년 11월20일), <시사투나잇>(2003년 11월3일), <미디어포커스>(2003년 6월28일), <황정민의 인터뷰>(2003년 6월23일) 등의 시사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정 전 사장이 론칭한 시사 프로그램은 실험성이 강했다. <시사기획 쌈>은 기자들이 만드는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출발했고 <시사중심>은 월~금까지 낮 시간대(13시)에 편성돼 인터넷 뉴스 속보 및 여성 맞춤형 뉴스를 생산했다. <황정민~>은 시사성 높은 인물과 명사 인터뷰에 초점을 맞춘 10분짜리 프로그램이었다. <시사중심>과 <황정민~> 두 프로그램은 정 전 사장 임기 내에 폐지됐다.

<미디어포커스>는 정권에 부역했던 자사를 혹독하게 비판한 ‘KBS, KBS를 말한다’ 편으로 첫 전파를 탔다. 건전한 비평을 목적으로 한 매체 비평 프로그램이었다.

인기 시사 프로그램도 탄생했다. <시사투나잇>은 정부와 정치권, 재계 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 비판과 촌철살인 풍자로 주목을 받았다. <시사투나잇>의 2008년 5~10월 평균 시청률은 4.3%, 점유율은 12.2%로  KBS1의 동시간대 프로그램(3.3%, 8.6%)보다 주목도가 높았다. 광고 판매도 원활해 2007년 연간 순수익은 67억 원에 달했다.

이어 취임한 18대 이병순 사장(2008년 8월~2009년 11월)은 시사프로그램 폐지에 앞장섰던 인물로 꼽힌다. 이 사장은 정 전 사장 시절 정치·경제 권력을 비판한 <시사투나잇>과 <미디어포커스>를 전격 폐지했다.

<시사투나잇>은 ‘헤딩라인뉴스- 시사미술전’ 등에서 명화를 패러디한 작품을 방송했다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의 ‘편파성’ 논란에 시달렸다. 이 전 사장은 외부의 편파성 논란을 검증 없이 수용해 <시사투나잇> 폐지를 결정했다. 이 전 사장은 <미디어포커스> 역시 2008년 11월 15일 폐지했다.

   

▲ 정재계에 대한 성역 없는 비판과 사회적 약자 보호를 내세웠던 KBS 대표 시사 프로그램 <시사투나잇>은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이 제기한 편파 의혹에 시달리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취임한 이병순 전 사장에 의해 2008년 11월 폐지됐다. 사진=KBS 홈페이지

 

 

이후 이 전 사장은 <시사투나잇>을 대신해 <시사360>을 편성했으나 오래 못가 또 다시 폐지해버렸다. <미디어포커스>를 폐지하고 <미디어비평>이란 새 프로그램을 론칭했는데 현재는 <미디어 인사이드>로 이름이 바뀌어 한 달에 3회 방송되고 있다.

김인규 사장(19대·2009년 11월~2012년 11월)은 정 전 사장이 신설했던 <시사기획 쌈>(2009.12)을 폐지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사실상 새로운 시사 프로그램은 길환영 전 사장(2012년 11월~2014년 6월) 선보인 <시사진단>(2014.4.7)이 유일하다.

이 프로그램은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취재보다는 참석 패널의 해석을 중심으로 시사 현안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종합편성채널의 시사 토크 프로그램을 따라했다는 비아냥을 듣는다.

역대 사장들은 KBS 내 시사 프로그램 제작 방식도 바꿔놓았다.  KBS는 통상 두 차례 회의를 거쳐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책임 프로듀서와 PD가 모여 방송 프로그램을 논의하는 라인업 회의와 여기서 결정된 아이템을 구체적으로 기획하는 구성회의다.

하지만 현재 라인업 회의는 명맥상 존재한다. 한 KBS PD는 “라인업 회의는 거의 유명무실해 졌다”며 “요즘은 ‘책임 프로듀서가 사람 잡으러 다닌다’고 할 정도”라고 전했다. 라인업 회의에서는 자유롭게 PD들의 아이템 공유 및 논의가 이뤄지던 분위기가 사라졌다. 대신 책임 프로듀서가 PD를 일일이 만나면서 아이템을 논의하고 방송을 편성한다. 이 과정에서 PD의 자율성은 축소되고 경영진의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평가다. 

또 한 가지는 탐사보도팀 축소다. 정 전 사장은 2005년 4월 보도본부 직속으로 26명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탐사보도팀을 편성했다. 당시 탐사보도팀은 ‘헌법재판관의 임대소득 탈세’, ‘최초보고: 해양투기 17년, 바다는 경고한다’, ‘고위공직자, 그들의 재산을 검증한다’, ‘김앤장을 말한다’ 등 취재 대상에 대한 성역 없이 사안을 파고들었다. 국내 보도상을 휩쓸었으며 국내 최초로 전미탐사보도협회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김인규 전 사장은 탐사보도팀을 시사제작국 탐사제작부 내 한 팀으로 직제를 개편했으며 현재 인원은 팀장 포함 6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탐사보도팀은 지난해 ‘우리 회장님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재벌 3세 경영능력 평가’ 등 한국 사회에 또 다른 성역이 돼버린 재벌 권력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KBS 내부에서는 “정작 문제인 정치 권력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지 못해 재벌 권력만 비판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지난해 길 전 사장의 잔여 임기를 물려받은 조대현 사장은 교양문화국이 제안한 새로운 시사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KBS PD협회는 기획제작국 준비안이 반려된 데 안타까워하면서도 기존 프로그램 제작에 힘을 쏟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조 사장의 임기 만료가 가까워진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시사 프로그램 신설이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에서 나온 결과다.

   
KBS 시사 프로그램 변천사. ⓒ미디어오늘 김유리 기자.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김유리 기자 yu100@mediatoday.co.kr

 

“이제는 말할 수 없다” ‘반쪽 방송’ MBC의 눈물

[MBC의 현재] 교양국 풍비박산, 존재감 없는 PD수첩, 영광의 시대 가고 정권 홍보 창구로 전락

지난해 MBC 교양국이 폐지됐다. 언론계는 물론 국회를 포함한 정치권, 노동계까지 사회적 분노가 들끓었다. MBC 교양국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이와 같은 반발이 일었던 것일까. 과거를 되돌아보면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시청자는 , <100분토론>, <시사매거진2580> 등으로 MBC를 기억한다. 한때 이 프로그램들은 자본과 권력의 감시자였고 사회적 약자의 버팀목이자 정직한 목격자, 담론 재생산 창구였다. MBC 역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프로그램들은 2000년대 초중반 절정에 달했다. 시청자에 친숙한 , <2580>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시사 프로그램들이 MBC 시대를 빛냈다.

공영방송에서 볼셰비키 혁명, 즉 사회주의 혁명을 다룬다면? 지금과 같은 시국에서는 권력의 검열 이전에 언론인 스스로 재갈을 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MBC는 지난 2006년 <세계를 뒤흔든 순간>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러시아 혁명이 남긴 유산을 조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이달의 PD상’도 수상했지만 시청률 등 투자 대비 수익률에서 참담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실패는 자산이 된다.

언론노조 MBC본부장인 조능희 PD는 “러시아 혁명 편은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만큼 논란이 일었다”며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라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지 아니면 더욱 대중성을 지향해야 할지 구성원의 토론과 논의가 심도 있게 이뤄졌다. 시청률은 기대에 못 미쳤으나 제작에 참여했던 이들이 훗날 ‘눈물’ 시리즈를 만드는 등 평가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시도와 실패가 MBC가 자랑하는 콘텐츠 기반이 됐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현대사의 비극을 방영했던 <이제는 말할 수 있다>(1999년 09월12일~2005년 06월26일), <2010 MBC 현대사 연속기획>(2010년 03월26일~2010년 11월24일)은 한국 사회가 어떤 질곡을 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뿐만 아니라 MBC는 세계화가 빚어내는 빈곤의 문제, 전쟁·테러, 계급 간 갈등 등에도 천착했다. (2005년 04월29일~2010년 10월29일)는 송일준·정길화·이채훈 등 영광의 시대를 이끈 PD들이 만든 국제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는 5년간 방영됐다가 2010년 김재철 사장 시기 폐지됐다. 당시에도 “시사 교양 프로그램과 PD에 대한 탄압”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 <불만제로 UP> 등도 시사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던 프로그램이었다.

   

▲ 2005년부터 방영된 MBC 시사프로그램 W는 송일준·정길화·이채훈 등 영광의 시대를 이끈 PD들이 만든 국제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5년간 방영됐다가 2010년 김재철 사장 시기 폐지됐다. 사진=MBC 홈페이지

 

 

기자들이 제작하는 시사 프로그램도 반향을 일으켰다. 송기원·최일구 기자 등이 만들었던 <후 플러스>(2006년 06월29일~2010년 10월07일)는 일회성 보도에 가려진 진실을 집중취재로 파헤쳤다.

효성그룹 비자금 논란을 파헤쳐 기자상을 받고 자본 권력 정점에 있는 삼성이 경찰과 어떻게 유착돼 있는지 심층 보도를 하는 등 권력의 추한 민낯을 드러내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이 역시 김재철 사장 시기 폐지됐다.

<신강균의 사실은>(2001년 01월28일~2004년 12월17일)은 이상호라는 발군의 기자가 활약했던 무대였다.

현재 MBC에는 내세울 만한 시사 프로그램이 사라졌다는 것이 내부 구성원들의 평가다. , <100분토론>, <시선집중> 등 MBC 간판 시사 프로그램이 외압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구성원의 제작 자율성도 이명박·박근혜 정권 7년 동안 크게 위축된 상태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이후 시사 프로그램은 편향성 논란에 시달렸다. 개그맨을 진행자로 내세워 시사·이슈와 함께 생활 이야기 등을 가볍게 풀어냈던 <컬투의 베란다쇼>(2013년 03월18일~2014년 02월28일)는 시사 프로그램의 새로운 형식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여권 정치인의 거짓말을 소재로 다룬 편에 대해 해당 부서 국장이 담당 PD에게 ‘정치편향성’을 이유로 경위서 작성을 요구하고 정치 풍자 아이템에 대해 불방 지시를 내려 논란이 일었다.

왕상한 서강대학교 교수가 진행하는 <이슈를 말한다>(2014.5~)는 패널이 정부·여당 편향으로 구성돼 있어 집권 여당과 정부의 홍보 창구로 전락했다는 노조의 비판에 직면했다.

MBC의 한 PD는 “MBC 시사 프로그램의 특징은 시민의 두 가지 측면, 정부·정치 권력 앞에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시민, 자본 권력 앞에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시민의 관점에서 기획되고 제작돼 왔다는 점”이라며 “현재 MBC는 이러한 두 축이 모두 무너져 버린 상태”라고 비판했다.

MBC PD들은 교양국 폐지가 위축되는 MBC시사 프로그램의 위기를 보여주는 방증 사례라고 꼽는다.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은 지난해 교양국 폐지 논란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재밌게 전달하는 것이 트렌드”라며 “정보와 예능이 접목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공영방송은 무게 중심이 잡혔을 때 건강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현재 MBC는 보도·시사 기능이 없는 반쪽짜리 방송”이라며 “예능·드라마가 일정 부분 시사의 영역까지 담당하고 있어 구성원들이 말 못할 고민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MBC 시사 프로그램 변천사.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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