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얕은 재미’를 추구하며 누리꾼들과 전문 기자들이 창작한 콘텐츠를 무단으로 수집·전재해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뉴스 큐레이션(curation) 매체를 새로운 저널리즘 모델로 볼 수 있을까?

28일 오후 문화연대가 주최로 서강대 가브리엘관에서 열린 ‘제1차 디지털 생태계 진단포럼-피키캐스트와 뉴스큐레이션’에선 어뷰징(동일기사 반복전송)과 같은 뉴스콘텐츠 복제문화가 팽배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저널리즘의 위상을 더욱 위협하는 뉴스 큐레이션 확산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포럼 주제 발표에서 오늘날 보편적 뉴스 제작과 유통 현실이 돼 가고 있는 피키캐스트와 같은 뉴스 큐레이션 행위는 대단히 퇴행적인 복제문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피키캐스트는 콘텐츠의 대상이 되는 세계로부터의 취재 과정 등을 거의 생략한 채 타인의 복제물을 그대로 가져와 기계적으로 매시업(mash up·복제된 뉴스들의 큐레이팅)하고 큐레이팅해 목전의 이익을 취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안타깝게도 피키캐스트와 비슷한 뉴스 큐레이션 업체들이 몇 년 안에 주류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면서 지금보다 더 뉴스 저널리즘의 정치적 연성화를 주도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피키캐스트(장윤석 대표)는 지난 2013년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사업을 시작한 후 현재 모바일 서비스 기업인 옐로모바일에 10억(지분 20%)에 인수돼 콘텐츠와 뉴미디업 사업 부문의 중간지주 회사로 자리 잡았다.  

피키캐스트는 지난해 1월 모바일 앱 출시 후 1년 만에 누적 다운로드 600만 건을 돌파했고, 하루 평균 앱 방문자 수도 120만 명에 달한다. 아울러 피키캐스트는 주요 수익원인 ‘네이티브 광고’(기사형 광고) 등을 통해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이 532억 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 피키캐스트 공식페이스북 커버사진
 

이날 토론자로 나온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박사는 이 같은 피키캐스트의 성공 요인에 대해 “대중의 시장성은 ‘우주의 더 얕은 재미’에 존재하고 대중의 소비와 미디어의 공급이 맞아떨어져 피키캐스트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어뷰징과 실검(실시간 검색어) 콘텐츠에 대한 소비가 늘자 언론사들이 옳든 그르든 달려든 것처럼 얕은 재미를 보려는 인류의 지속적인 소비 욕구가 공급자의 이해와 결합돼 시장이 형성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광석 교수는 근본적으로 복제 문화를 통한 창작 행위의 필연성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제대로 된 뉴스 편집자 혹은 큐레이터라면 다른 창작 영역과 달리 뉴스 생산의 사실성과 책임성을 강조하는 이유로 타자로부터의 모사(베끼기)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재추적하는 과정을 따로 수행하는 것이 맞다”며 “뉴스 편집자와 큐레이터가 만약 이와 같은 사실 확인 과정을 망각한다면 복제 과정의 진실성이 깨지게 된다”고 말했다.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씨는 “저작권에는 재산권적 측면만 있는 게 아닌 창작자의 시간과 노력이 담긴 인격권도 있다”며 “피키캐스트가 전세계의 모든 콘텐츠를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창작자의 시간과 노력을 적극적으로 뺏는 것임에도 이들은 가져오는 콘텐츠 생산자에 대한 눈곱만큼의 고려도 없이 인격권을 말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노씨는 이어 “조직적이고 유기적으로 활동하며 미디어 시장에서 승리하고 소비자가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누가 봐도 명백한 도둑질 소매치기를 묵인한다면 이는 시장에 순응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며 “피키캐스트의 행위는 법 이전의 상식의 문제로 우리는 그들에게 최소한의 상식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규 블로터미디어랩 랩장은 피키캐스트가 콘텐츠 복제 문화의 풍성한 토대 위에서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실제로 자신들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으며 수익을 만들어 내는 구조를 ‘공유지의 비극’에 비유하며 공정한 태도와 룰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랩장은 “피키캐스트 스스로 수많은 복제 속에서 성장 동력을 찾았다면 이제는 먼저 자기들이 만든 결과물의 라이센스를 개방하는 사회적 증여 부분에 대해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디지털 공유지의 혜택을 입었으면 사회적 증여 쪽으로 강하게 철학을 바꿀 이유가 있고, 미국의 허핑턴포스트나 버즈피드가 어느 정도 성장 곡선이 만들어진 후 탐사보도에 투자한 것처럼 저널리즘 행위를 적극적으로 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광석 교수는 뉴스 콘텐츠 이윤 모델의 사회적 대안으로 “사적 행위를 주로 삼는 뉴스 큐레이션 업체를 넘어서서 대안적이고 커뮤니티 기반의 뉴스 큐레이션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며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이용자들에게 ‘우주의 깊은 재미’를 줄 수 있는 콘텐츠 매시업 능력을 갖춘 대안적 뉴스 플랫폼이 없다면 자본력을 충분히 지닌 포털사업자들이 그 공백을 차지하려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