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 피의자 변호사의 이메일 압수수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 유죄 판결이 난 ‘직파 여간첩 이씨 사건’ 에 대해 조작 의혹을 제기했던 박준영 변호사는 지난 27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이 현재 수사하고 있는 형사 소송 사건에 대한 자료를 얻는다는 명분으로 부적절한 이메일 압수수색을 했다” 고 증언했다. 
 
그는 경찰의 이번 이메일 압수수색으로 평소 의뢰인들과 나눴던 정보가 유출됐고, 현재 상고심에 올라와 있는 다른 간첩 사건 변호인단의 내부정보도 흘러나갔을 것으로 의심했다. 

박 변호사가 경찰이 자신의 이메일을 열어봤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은 5월 초.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가 그가 평소 이용했던 네이버 이메일 서비스를 통해 주고받은 내용을 두고 조사할 것이 있다며 그에게 출석 통보를 하면서다.  

이메일 압수수색은 일반 압수수색처럼 수사기관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진행된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통신제한조치를 하거나 통신사실확인자료 요청, 압수수색 영장 집행 등을 진행할 때 기소·불기소처분, 내사 종결 등으로 사건이 완료되면 경찰은 30일 이내에 당사자에게 이를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일 경우 경찰은 이메일 압수수색 시 사전통지를 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박 변호사가 압수수색 사실을 나중에 안 것도 이 때문이다. 

   
▲ ▲ 작년 7월 26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갈무리.
 

경찰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작년 7월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아가와 꼽새, 그리고 거짓말-여간첩 미스터리’ 편이다.

당시 SBS는 간첩으로 지목된 이씨(여)의 재판 과정을 검토하면서 검찰의 가혹행위 등으로 이씨가 허위로 자백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 과정에서 이씨가 포섭하려 했던 반북활동가 최씨의 국정원 수사보고서가 방송에 나왔고, 최씨는 방송 이후 자신의 이름이 공개돼 명예가 훼손됐다며 담당PD와 이씨의 변호를 맡았던 박 변호사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소속 장경욱 변호사를 고소했다.

작년 11월 서울경찰청은 위 세 사람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고, 그로부터 한 달 후 박 변호사만 1차 조사를 받았다. 

박·장 두 변호사가 받고 있는 혐의는 변호인이 수사기록을 사건 또는 소송준비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타인에게 제공하는 것을 금지한 형사소송법 226조 16항 위반이다.

박 변호사는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가 사문화된 법에 따른 것이고, 자신은 공익적 목적으로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법으로 변호인들이 조사받았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변호인이 잘못된 수사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증거기록을 언론사에 제공하는 일은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정당한 목적이나 이유가 있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법 이념”이라며 “수사 자료를 무분별하게 제공한 것이 아니고 국가공권력의 위법한 형 집행에 대해 호소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형식적으로는 위법일 수 있어도 실질적인 법 위반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작년 1차 조사에서 이미 자신이 방송국에 자료를 넘겨줬음을 인정했는데도 경찰이 불필요하게 자신의 이메일을 들여다봤으며, 현재 경찰이 수사하겠다고 나선 사건과 관련 없는 정보들이 새어나갔을 가능성에 대해 걱정했다.

박 변호사는 “내 이메일에는 수많은 의뢰인들로부터 오는 정보도 있고, 같은 사건을 다루는 변호인단끼리 나누는 정보도 있다”며 “엄연한 업무상 비밀을 들여다보는 것은 국가권력의 사생활 침해”라고 주장했다.

특히 박 변호사는 이번 압수수색으로 최근 민변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변론을 맡고 있는 ‘북한 보위부 간첩 홍씨 사건’ 에 대한 변호인단의 내부정보가 흘러나갔을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변호사들도 잘 모르는 형사소송법 조항을 찾아서 고소할 능력이 최씨에게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며 “공안 수사 기관이 간첩 사건을 다루는 나나 민변 소속 변호사들을 위축시키고 정보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그랬을 수도 있다” 고 최씨 고발의 배후에 검찰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 변호사와의 인터뷰 이후,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를 제작한 담당PD도 자신의 메일이 수색당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난 27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담당PD는 “이메일 계정에 이중보안 처리를 하면 다른 컴퓨터에서 로그인 했을 경우 휴대전화로 문자가 온다. 그러면 일련번호를 치고 (이메일에) 들어가야 하는데,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몇 차례 그런 문자가 왔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경찰이 들여다 본 것이 확실하다면 언론탄압으로 볼 수 있지만 누가 이메일을 본 지 모르겠어서 정황상 의심만 할 뿐”이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경찰은 박 변호사에 대한 이메일 압수수색이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장 변호사, 담당PD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 A경위는 지난 27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진술만 갖고는 재판에 설 수 없기 때문에 증거가 필요하다”며 “박 변호사가 진술을 했어도 나중에 번복을 하면 무죄가 되기 때문에 수사기관으로서 증거확보 차원에서 메일 압수수색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찰이 부적절한 이메일 압수수색을 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혐의에 관련된 이메일만 수색해서 증거로 올리게끔 법으로 정해져 있다”면서도 “어떤 메일이 혐의와 관련돼 있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이메일을 다 열어볼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담당 PD의 이메일을 열어봤는지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중인 사안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는 28일 있을 경찰 조사에서 이메일 압수수색에 관련해 경찰에 항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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