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인 1995년 5월, 김중배(81) 언론광장 대표는 고 강원용 목사와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와 함께 미디어오늘 창간특집 좌담을 열었다. 당시 그는 “미디어오늘은 언론에 대해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시범도 보여줘야 한다. 올바른 모범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큰 비판은 없다”고 했다. 

그에게 미디어오늘 20년에 대한 채점을 부탁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25일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신학림 미디어오늘 편집인이 대담을 진행했다. 꼬깃꼬깃한 그의 원고에는 쉽게 알아보기 힘든 필체로 쓰인 노(老) 기자의 생각이 담겨 있었다. 

미디어오늘, ‘핏대’ 정신 지향했던 언론

신학림 : “1995년 5월 17일 미디어오늘 창간호에 강원용 목사, 최장집 교수와 특별대담을 하셨다. 미디어오늘 20주년을 바라보는 감회를 듣고 싶다.”

김중배 : “미디어오늘 창간 시기는 내가 동아일보를 그만두고 한겨레신문 갔다가 백수로 살 때다. 권영길 언론노조위원장이 미디어비평지를 창간하고 싶다고 했는데, 창간될 때까지 조금씩 내 나름의 의견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디어오늘이 처한 어려운 여건을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과분한 요구나 기대를 하는 것은 절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웃음) 미디어오늘과 육체적으로 함께 하진 않지만 함께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 원로 언론인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오른쪽)가 지난 25일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신학림 미디어오늘 편집인과 미디어오늘 20주년 특별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 김도연 기자)
 

창간호에서 김 대표는 언론 비평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에만 저널리즘 비평지를 찾아볼 수 없고, 권력화한 언론을 견제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기제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게 20년 전의 기억을 물었다. 

김중배 : “고인이 된 강원용 목사가 많이 그립다. 그에게는 여러 별칭이 있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던 것은 ‘핏대’였다. 강 목사는 세상의 불의나 반민주 현실에 대해 늘 핏대 올리는 어른이었다. 물론 핏대만으로 세상 어려움이 풀리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어려움을 풀기 위해선 핏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미디어오늘은 핏대 정신을 쭉 지향했던 언론이다. 앞으로도 지녀야 할 가치라고 본다. 핏대를 출발점으로 해서 한국 언론 문제가 하나하나 풀려가는 역사를 만들기 바란다.”

신학림 : “창간호 대담을 보면 1995년이 아니라 2015년 한국 언론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언론을 다뤄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고 막막하다.”

김중배 : “20년 전 유럽이나 이런 쪽으로 보면 보수, 중도, 진보 언론이 균형을 이뤘다. 반면, 한국 현대사가 본질적인 변혁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언론 지형은 한 쪽으로 쏠려 있었다. 지금도 대동소이하나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안타까운 건 더욱 비인간화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중도와 진보가 힘을 잃고 보수가 압도해가는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계화라는 구호와 함께 등장한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가 굉장히 거칠고 사납게 세상을 압도해 왔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비판과 견제, 개혁 논의와 정책이 더러 꿈틀거리고 있으나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다.”

신학림 : “비인간화하고 있다는 말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김중배 : “신자유주의의 자유가 한 쪽에는 압도적으로 부여돼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억압과 착취가 확대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지 않나. ‘닭장에 이리나 늑대를 넣어 놓고 병아리들하고 같이 살라’고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평화, 공존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세상 모습 아닌가. 언론이 이러한 뿌리를 응시하지 않으면 가지나 이파리를 제대로 보기 어렵다. 그래서 사회를 지배하는 언론의 작태 가운데에서도 행위의 주체인 언론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제되는 언론사에 종사하면서 종래의 언론 풍경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반민주, 반정의적인 언론 행위를 과감하게 자행하는 이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가 신학림 미디어오늘 편집인의 질문에 고심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80년 광주, 절대 공동체의 전범(典範)

신학림 : “지난 18일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격정적인 날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살아남은 후배 언론인들은 5·18 민주화운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김중배 : “꼭 언론인이라고 국한할 필요가 있나. 5·18은 국내 민주화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아랍의 봄에도 일정한 파급을 끼쳤다는 견해도 있고. 광주 시민들이 당초 의도했던 것은 아니겠으나 5월 19일 이후 항쟁 기간 획기적으로 사람 사는 세상의 모범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회학자는 광주에 대해 ‘절대 공동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절대 공동체에서 시민들은 위대한 인간임을 확인하고 서로 축복하고 모든 사회적 속박과 절대 해방을 경험했다. 모든 시민들은 이 순간 이젠 죽어도 좋다는 극도의 환희를 느꼈고 투쟁은 축제로 변했다.’ 통절의 역사, 아픔의 역사이지만 죽음의 시대의 주검들 위에서 피어난 절대 공동체의 전범(典範)이 5·18이다.”

김 대표가 언급한 학자는 사회학자 최정운 서울대 교수다. 그는 1999년 5·18 진상을 과학적·체계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보고서 <오월의 사회과학>을 펴냈다. 최 교수는 “그날 시민들이 죽음을 넘어 싸운 것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였고 그들은 절대 공동체를 이루어 위대한 인간임을 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김중배 : “광주는 민주적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돼야 하며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전범(典範)이다. 거기에는 자유가 있었다. 광주 시민들은 평등했다. 영웅이나 지도자가 나와서 선동하고 주도하는 항쟁이 아니었다. 그리스의 고대 민주 정치에서 연원한 민주주의 근원, 다시 말하면 민중의 ‘자기 통치’, 이것이 단기간이나마 실현됐다. 생존의 처절함, 무고한 민중의 학살, 군부 독재의 잔학사, 그것을 잊어서도 안 되지만 절대 공동체의 전범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거기서 찾아볼 수 있다. 체험하지 못한 직접 민주주의의 원형이다.” 

신학림 : “선생님은 지난 16일 광주에서 열린 ‘5·18과 언론’이라는 심포지엄에서 5·18과 언론을 생각할 때 ‘35년 전 광주는 밀실이자 봉쇄된 동굴이었다’고 말씀하셨다.” 

김중배 : “(외부자, 언론에서 보면) 광주는 명박산성, 근혜산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장벽에 갇힌 밀실이었다. 특히 언론의 관점에서 보면. 그럼에도 시공간과 인간까지 ‘3간’(間)이 차단된 철벽 안에서 언론 행위는 존재했다. 소통도 하고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했다. ‘투사회보’와 ‘민주시민회보’, 민주화 운동의 내용을 담은 팜플렛, 예술인들의 포스터와 연극, 학생들의 외신 인터뷰 등 언론 행위가 있었다. 5·18 항쟁에서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절대 공동체의 전범을 보았다면, 언론 종사자 시각에선 철저히 차단된  밀실에서 다시 언론이 피어나는 모습을 짚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언론의 원형 아닌가.”

신학림 : “5·18 항쟁을 기념하면서도 언론이 당시 기록을 너무 소홀히 한 게 아닌가 반성한다.”

김중배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기록물 중에도 밀실 언론 공간에서 언론 행위를 했던 기자들의 기록이 있다. 물론 해직기자협회에서 단행한 제작거부 투쟁, 언론인의 저항도 충분히 깊게 논의, 연구돼야 한다고 보지만 광주에서 원초적 모형으로서의 언론 행위와 기존 언론인의 기록이 어떻게 행해졌는지 깊이 봤으면 좋겠다. 미디어오늘이 나서주길 바란다.(웃음)”

신학림 : “여전히 광주를 폄하하는 이들과 언론이 있다.” (김 대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 의혹’을 주장하는 지만원씨를 비판했다).

김중배 : “명색이 평론가, 학자였다는 사람이 책에다 그런 주장을…. 인민군 몇 백 명이 항쟁을 촉발시키고 무사히 철수했다고 주장한다. 이번에 광주 5·18기념재단을 방문했을 때 그 얘기를 한번 꺼내봤다. 역시 광주를 깊이 생각하는 분들답게 비난 대신 한마디 하더라. ‘인민군 600명이 들어왔다면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비상계엄하에서 그들을 들어오게 한 전두환 군부의 국방안보는 무엇이냐’는 거다. 안전하게 철수했다는 데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국가의 안보는 무엇을 지향하는 것일까. 당시 복면을 두르고 저항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전사들이 바로 인민군이라고 주장하던데, 이에 명예훼손을 제기하려니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어서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광주 사람들이 복면했던 시민들을 찾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나라가 됐나. 인간이 사는 세상인가 싶어 괴롭다.” 

지만원씨와 일부 세력들은 지난해 발행한 ‘5·18 분석 최종보고서’와 대도시 순회강연, 인터넷 등을 통해 북한군이 광주시민을 선동해 폭동을 주도했고, 계엄군 철수 이후 홀연히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근거로 든 것은 복면 쓴 시민군 사진이었다. 광주시와 5·18 역사왜곡대책위원회는 왜곡과 폄하 주장에 대해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지난 3월부터 명예훼손 피해자 특정을 위해 ‘복면 시민군 찾기’ 활동을 벌여 왔다.

   
▲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는 25일 미디어오늘 창간20주년 특별 대담을 위해 200자 원고지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왔다. (사진=김도연 기자)
 

박근혜의 동굴 협소해진다

신학림 :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이 거꾸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어디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

김중배 :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이 이기적 유전자 설을 제시하지 않았나. 도킨스를 잘 읽어보면, 거기에 ‘밈’(Meme)이라는 게 있다. 이기적 유전자 충동 촉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다움의 요소. 그것이 진화의 동력이면서 결과이고, 다시 새로운 진화의 동인이 되는 역할을 한다. 20억 년, 30억 년 진화를 해온 우리의 인간성이 어떻게 말살됐는가. 도킨스 식으로 말하면, 이기적 유전자의 욕망은 한없이 분출하고 인간의 인간다움을 촉진시키는 밈이라는 요인은 한없이 억압됐다. 그 결과가 아닐까. 언론 종사자들 가운데서도 많은 이들이 권력욕에 완전히 함몰되고 그런 가치관을 체화했다. 그저 정권의 나팔만 불어대는 것이다. 공식적 제도적 언론으로서 그러한 행태가 이 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신학림 : “5월 18일 광주와 서울에서 광주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박근혜정부는 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판단을 여쭈고 싶다.”

김중배 :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세로서 민중항쟁의 기념곡이 됐고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정신분석학자 정혜신은 박근혜에 대해 ‘부성 콤플렉스’에 갇힌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런 것을 감안해도 비극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동굴의 우상을 깨고 모든 사람이 광장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하는 거다. 또 광장의 문을 열고 마주하는 게 언론의 소임인데 현재 언론은 어떠한가. 요즘 보면 소위 수구 언론도 이 문제(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에 대해서는 제법 다른 시각을 갖는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어떤 분’이 갇혀 있는 동굴이 점점 협소해지는 것 같다.(웃음)”

신학림 : “언제나 선생님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김중배 : “초중고 학생들을 상대로 한 어떤 조사를 보면, 이민을 생각해봤다는 비율이 40%에 달했다. 충격이었다. 모두가 다 이민을 갈 수 없지 않는가.(웃음) 결국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할 텐데, 이를 위해서도 민주주의가 전제돼야 한다. 복지도 민주주의가 전제돼야 하고, 평화도, 생태도 그렇다. 민주주의를 확장하다보면 불교적 개념과 맞닿아 있다. 차별 없이 만물에 민주주의가 적용되는 세상, 그런 것이 민주주의 꿈과 이상 아닌가. 민주주의에는 종점이 없다. 민주주의는 진행형일 뿐이지 종착점이 없다.”

신학림 : “지금도 인간성이 말살되고 사회적 약자들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 반면 저항의 목소리는 점차 줄어드는 느낌이다.”

김중배 : “박정희·전두환 군부 독재 시대의 언론은 오늘날보다 억압돼 있었다. 세월호에서 재확인된 ‘받아쓰기’ 관행이 더 횡행했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지금하고는 분명히 달랐다. 언론 종사자 내부에서는 언론인으로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자책이 있었다. 언론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있었다. 지배적인 공감대가 있었다. 상당히 많은 미디어 집단에서 그런 공감대가 무너졌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저항이 이뤄지고 있다. 쌍용자동차, 강정, 밀양 등. 서울 한복판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한다. 이러한 저항이 국부(局部)화한 데는 역시 공감대의 깊이나 폭에 변화가 있어서다. 콘크리트화하고 있는 30%대의 수구 세력이 현 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른 미디어가 하지 않거나 왜곡하는 사실을 모범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가장 치열한 비판이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언론이 스스로 ‘낙관의 단서’가 돼야 하고, 될 수 있다고도 본다.”

   
▲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는 25일 미디어오늘과의 특별 대담에서 “5·18이 작위(국가권력)에 의한 학살이면, 세월호는 부작위에 의한 학살이라는 말이 나온다”며 “팽목항 앞 바다엔 정부가 없었다. 광주를 방불케 했다”고 밝혔다. (사진=김도연 기자)
 

팽목항과 광주에 국가는 없었다

신학림 : “5·18 항쟁의 아픔을 경험했던 선생님에게 지난해 세월호 참사는 남달랐을 것 같다. 참사 국면에서 언론을 어떻게 보셨나.”

김중배 :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수탈하는 경제 질서를 거부하고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유민아빠 손을 잡아주었다. 일부 ‘대량언론’(김 대표는 언론계에서 통용되는 ‘주류 언론’이라는 말 대신, 조중동을 ‘대량언론’이라고 불렀다)들은 교황의 행보에 대해 ‘파격’이라고 덧붙였다. 예수의 정신을 따르는 게 천주교와 기독교가 해야 하는 일이고, 교황은 ‘파격’이 아니라 ‘정격’이라고 말해야 한다. 세월호와 관련해 언론 얘기를 더하면, 한 출판 단지 옆에 가면 ○○아울렛이 있다. 거기에 거울 세 개가 있다. 한 거울 앞에 서면 키가 커지고, 옆 거울에 서면 난쟁이가 되고, 또 다른 거울에 서면 물구나무 선 꼴이 된다. 대량언론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는 언론만의 행태는 아니다. 권력의 행태, 일부 시민들의 행태이기도 하고.” 

신학림 : “세월호 국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철저하게 무능했다. 구조에 나서지도 않았고 박 대통령의 행방은 묘연했다.”

김중배 : “유가족에게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평생 남는다. 대통령이라면 유가족 죄책감의 반의 반이라도 느껴야 할 텐데…. 박근혜는 국회 연설을 하러 가면서 유가족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지나쳤다. 그런 죄책감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 거다. 전 세계 이세계인들이 세월호가 가라앉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몇 시간 동안 목격했다. 어떤 정치학자는 국가에 검은 구멍 두 개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무능이고 다른 하나는 무의지다. 세월호 참사는 검은 구멍 두 개가 일치한 결과였다. 무능할 뿐 아니라 안전에 대한 의지 자체가 없었던 사고였다.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국민적 합의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대통령 박근혜는 국가 대(大)개조를 해야 한다고 했다. 개조는커녕은 대 개악으로 가고 있다.”

신학림 : “5·18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참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 수 있나.”

김중배 : “5·18이 작위(국가권력)에 의한 학살이면, 세월호는 부작위에 의한 학살이라는 말이 나온다. 팽목항 앞 바다엔 정부가 없었다. 광주를 방불케 했다.” 

   
▲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의 표정과 눈빛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광주와 광화문을 오가며 언론인으로 살아간다. (사진=김도연 기자)
 

탈선의 자유 누리는 ‘대량언론’

신학림 : “선생님은 1991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직을 물러나면서 앞으로 정치권력보다 자본의 압력과 영향력이 언론과 언론인에게 더 큰 과제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중배 : “진부한 얘기가 돼 버렸다.(웃음) 시대상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정치·경제 권력이 분리될 수 없는, 분리되기 어려울 만큼 일체가 된 시대다. 요즘 시장 만능주의는 경제 부문을 넘어 전 사회에 뻗어 있다. ‘시장사회’라는 말이 나온다. 사회 자체가 시장화한 거다. 아이를 더 낳게 하기 위해 돈을 지원하는 등 만사를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잖아. 세월호 참사에서 통감해야 하는 것은 이 시대 자본주의 본질이 재난 자본주의에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재난이 발생하고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산업’이 생기지 않나. 언딘 등이 재난 자본주의 산업 아닌가. 사고가 나지 않으면 굶어죽는 산업이 등장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이를 장려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재난대응도 방위산업처럼 효자산업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현재 가속화하고 있는 자본주의 자체가 재난이다.”

낙관의 단서, 도처에 있다

신학림 : “80세가 넘는 연세인데도 언론인으로서, 시민운동 지도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비결이 있다면 말씀해 달라.”

김중배 : “참여연대 대표를 MBC 가기 전까지 7년 정도 했다. 참여연대와 언론개혁시민연대 운동을 같이 하던 때다. 언론인들의 민주언론 운동만으로 민주언론이 달성되기 어렵다. 시민들의 지지를 충분히 확보해야 함은 물론이다. 또 민주주의의 토대가 없으면 민주언론이 실현될 수 없다. 민주주의가 아닌데 민주언론이 가능할 수 있겠나. 아까 예를 들었지만, 닭장 안에 병아리와 늑대를 넣어 놓고 경쟁을 하라면 어떻게 되겠나. 지금 언론이 그렇다. 한 쪽에서는 자유언론을 만끽하고 있다. 탈선, 방종, 횡포에 가까운 자유언론을 하고 있잖나. 반면 MBC 후배들, 정말 가슴 아프다. 과잉과 과소의 언론 지형을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되겠지.”

신학림 : “언론을 바로 세워서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접근은 옳지만 그것만으로는 현 지형이 개선되기 어렵다는 말씀인 것 같다.”

김중배 : “나는 신문기자 쉽게 해먹었는데 앞으로 당신들은 어려운 신문기자, 통섭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신문기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될 것 같다.(웃음) 단순히 언론의 영역을 넘어 우리에게 어떤 국가가 필요할까.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종합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신학림 : “언론, 정치 그리고 미래에 관해 진보와 보수 모두 걱정을 하고 있다.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어디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나가야 할지…”

김중배 : “낙관의 단서는 도처에 있다. 횡포한 시장사회의 광풍, 탁류 속에서도 세월호 아이들을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촛불을 밝히고 눈물을 흘리는 시민들. 6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서명을 했다. 거기에 희망이 있다. 민주주의 궁극이 불교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고 했는데, 생명 세포 속에 있는 에너지 근원인 미토콘트리아는 인간과는 관계없는 미생물에서 온 것이다. 언론이라는 것을 무제한으로 확장하는 게 무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사람하고만 말하는 건 아니다. 좋은 경치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울컥하고 눈물이 나잖나. 그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게 언론 아닌가. 저널리즘적인 교과서에 너무 구애되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인식을 공유하면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웃음)”

   
▲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 (사진= 김도연 기자)
 

◇ 김중배는 누구인가

김중배 언론광장 공동대표는 돈과 권력과 말이 몸으로 부딪치는 접경지대에서 치열하게 사회비평을 하고자 몸으로 노력한 언론계의 원로다.

1957년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민국일보를 거쳐 1963년부터 동아일보에서 일했다. 동아일보 사회부장과 논설위원을 거쳐 1991년 편집국장에 취임했으나 이듬해 자본의 언론 통제에 항거하며 사표를 냈다. 1993년 한겨레신문 사장, 2001년에는 문화방송 사장을 지냈고 참여연대와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광장 대표로 시민운동과 언론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시절인 1987년 5월, 박종철군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숨졌을 때 언론은 일제히 침묵했으나 김중배 대표는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저 죽음을 응시해 주기 바란다”고 썼다. “이제 거짓의 하늘은 사라져야 한다, 거짓의 땅도 파헤쳐져야 한다”는 그의 글은 넥타이 부대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한국 언론 역사 최고의 명 칼럼으로 꼽히는 글이었다.

김중배 대표는 1991년 9월 사주의 편집권 개입에 맞서 이른바 ‘김중배 선언’을 남기고 동아일보를 떠나 언론 운동가의 길을 걸어왔다. 동아일보가 급격히 무너진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선생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영합하는 언론권력의 폐해를 고발하고 비판하면서 “이제 언론도 제약의 무덤 속에서 헤쳐 나와야 한다”고 외쳐왔다.

그는 여전히 현역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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