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맞은편 남대문 경찰서에서 이상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남대문 경찰서 정문 앞 장애인 이동 통로에 수십 명이 24시간 줄을 선 모습이 일주일 동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줄을 선 주인공은 기독교 관련 단체 인사와 퀴어문화축제 관계자들이다. 

이들이 서로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24시간 한 공간에 줄을 선 이유는 오는 6월 28일 열리는 퀴어문화축제 행사 장소와 진행 문제 때문이다. 

문화제가 열리기 한달 전인 5월 28일 자정까지 먼저 집회 장소를 신고하기 위한 것인데 남대문 경찰서가 지난 21일 "6월 28일 집회 신고와 관련해 남대문 경찰서를 내방한 민원인들은 경찰서 우측에 있는 경사로 통로에 대기해 순번에 따라 집회신고를 접수하겠다"고 일방 통보하면서 양측의 신경전이 시작됐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측은 기독교 단체들이 행사를 방해하고 퍼레이드 행진을 막기 위한 의도로 먼저 집회 신고를 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측은 그동안 남대문 경찰서는 집회 신고를 줄을 세워놓고 대기 순번에 따라 접수를 받지 않았지만 기독교 단체와 협의해 행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집회 신고 순번 접수를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퀴어문화축제 관계자들은 남대문 경찰서의 집회 신고 순번 접수 방침에 따라 지난 21일부터 일주일동안 노숙을 해가며 집회 신고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나라사랑 자녀사랑연대, 송파은혜교회 등 기독교 단체 인사들도 마찬가지로 24시간 교대로 줄을 지키고 있다.

남대문 경찰서 앞 장애인 이동통로에는 양측 수십 명이 줄을 서 가득차 있고 줄 제일 앞쪽에 의자 3개가 놓여진 곳에선 자리를 빼기지 않기 위해 신경전이 치열한 모습이다.

지난해 퀴어문화축제도 행사를 진행하는 쪽과 기독교 단체들과 충돌로 퍼레이드가 무산될 뻔했다.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은 신촌 명물거리에서 행사를 개최하고 연세대 방향과 신촌역으로 퍼레이드를 벌였지만 기독교 단체들이 해당 길목에 집회 신고를 하면서 퍼레이드를 막는 사태가 벌어졌다. 오는 6월 열리는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도 기독교 단체들이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길목에 집회 신고를 해서 행사를 막으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 퀴어문화축제 측의 주장이다. 

오는 6월 28일 서울시 측은 퀴어문화제 행사 장소로 서울시청 이용을 승인했지만 다른 단체들이 서울광장 주변 집회신고를 할 경우 집회를 이유로 들어 퍼레이드 진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측은 오는 6월 13일 대학로에서도 행사를 개최하려고 했지만 대학로 주변 집회 신고 관할지역인 혜화경찰서에서 기독교 단체 인사들이 집회 신고 한달 전인 5월 13일 이전에 혜화경찰서에서 24시간 텐트까지 설치하고 줄을 기다려 집회 신고를 한 바 있다.

남대문 경찰서 앞에서도 기독교 단체들은 퀴어문화축제 행사 방해 목적의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찰서 앞에는 "동성애는 저주 받아야 한다", “동성애는 죄악이다. 척결하자”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퀴어문화축제 측은 기독교 단체의 조직적인 행사 방해 행위가 경찰의 일방적인 집회 신고 순번 방침 통지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해 민원실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남대문경찰서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 퀴어문화축제 트위터 사진
 

하지만 경찰은 항의서한 전달 대표자 4명을 경찰서 밖으로 끌어냈다. 평화로운 행사 개최 보장을 요구하고 이를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공권력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경찰은 서장이 부재 중이라며 면담을 막은 것이다. 

경찰서에서 집회 신고를 둘러싼 신경전은 기업과 노동조합 측 사이에서 빈번히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성소수자 행사 퍼레이드 예상 장소에 기독교 단체들이 집회 신고를 하고 나선 것은 지난해부터 노골화됐다.

퀴어문화축제 행사 방해 행위는 국제적으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주한 EU 대표부와 프랑스, 영국 등 10개 대사관은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성소수자의 인권 존중 확산을 위해 한국정부 및 시민사회와 함께 일하고자 한다"며 "서울에서 개최되는 대한민국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함으로써 한국의 노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날 프랑스 대사관 참사관이 남대문 경찰서를 방문해 퀴어문화축제 행사 방해 행위에 대한 항의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기독교단 도교교구 북지구 청년부도 "여러분을 괴롭히는 그리스도교 보수파와 같은 퀴어 퍼레이드에 가해지는 부당한 방해에 강하게 항의하는 동시에 여러분들의 저항에 지지를 표명한다"며 "성서 어디에 성소수자를 차별하라고 씌어져 있느냐, ‘동성애는 죄이다’라고 하는 말도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만들어낸 잘못된 가치관"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강명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퀴어축제문화제는 사회에 다양한 구성원 중 성소수자들이 사회에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라며 "존재를 알림으로서 인권 보편적인 가치를 인식할 수 있고 사회 인식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인데 이를 막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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